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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가해)

성모신심에 대한 끝없는 논쟁

작성자카타리나 S.|작성시간26.06.14|조회수3 목록 댓글 0

성모신심에 대한 끝없는 논쟁

어떤 형제님의 질문입니다. 성모님께 너무 메달리면 예수님이 상대적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런 의문은 저도 한 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주체가 예수님인데 예수님은 가려지고 성모님만 너무 부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이시겠지요! 그럼 맥락이라면 저도 형제님과 전적으로 동감과 동의를 표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신심의 주체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만약 성모신심이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 관계를 악화시킨다면 분명 잘못된 신심입니다. 성모신심이 그런 것이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성모신심의 확산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안해 하지 마십시오!

일반인의 세상사에서도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그런 관계가 다른 어떤 가족관계를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자식에게는 전적인 헌신을 보입니다. 이것이 모성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모님의 신심도 온전히 예수성심께 지향되어 있습니다.

성모님처럼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 성모님처럼 예수님의 수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 그리고 우리도 성모님처럼 그런 영광을 누리는 것! 한마디로 성모님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모신심의 모든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역사상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른 가장 훌륭한 동역자! 예수님의 뜻을 가장 잘 헤아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온전히 지킨 사람이 누구였겠습니까? 성모님아니였습니까?
성서에 중요부분에는 어김없이 성모님이 등장합니다.

성모님의 마니피캇을 보십시오! 가나안 혼인잔치를 보십시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함께한 골고타 언덕의 성모님과 예수님의 유언을 들으십시오! 성모님은 성서에 가려진 것이 아닙니다. 성모신심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결코 빈약한 것이 아닙니다. 빈약하다면 주님의 그 깊을 뜻을 헤아리지 못한 내 가슴이 빈약한 것입니다.

성모신심은 또한 교회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체험에서 성장하고 틀이 잡힌 것입니다. 어느 일순간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합시다라고 인위적으로 포장을 하여 그냥 성모님아라고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서론이 너무 장황해졌지만 마지막으로 교황님의 고백을 시작으로 답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교황요한바오로 2세의 체험담으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교황님도 역시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셨답니다!

"제 자신의 사제 성소의 기원에 대해 말씀 드리면서 성모님의 도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가정에서 그리고 바도비체 본당에서 성모님께 대한 전통적인 신심을 배웠습니다. 우리 본당에는 영원한 도움이신 성모님께 봉헌된 작은 성당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저희 학교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 그 성당을 방문해서 잠시 기도하곤 했지요. 오후에 수업이 끝난 다음에도 많은 학생들이 그곳으로 가서 복되신 동정녀께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바도비체의 언덕 위에는 성 라파엘 칼리노프스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깊은 가르멜 수도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도비체 주민들은 종종 무리 지어 그곳에 가서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가르멜 산의 동정녀가 그려진 스카풀라 목걸이를 착용하는 신심이 널리 퍼져 있었지요. 저도 스카풀라를 받아서 열 살 때부터 착용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그 스카풀라를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도비체 본당과 가르멜 수도원의 성당은 제 어린 시절로부터 중?고등학교 시기를 거치는 청소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제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

저의 사제 성소의 씨앗은 더욱 자랐는데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얀 티라노프스키 신부님의 도움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대한 신심에 전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께서 저희를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신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분의 어머니께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때 성모님께 대한 신심에 한가지 의혹이 떠올랐는데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너무나 커지면 혹시 그리스도께 마땅히 바쳐야 할 흠숭이 흐려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의 「복되신 동정녀께 드리는 참다운 신심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서 저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시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성모님의 신비 가운데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가 쓴 이 책은 화려한 문체의 복고풍이었기에 조금은 황당한 구석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기본 신학적 진실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뛰어난 신학자였습니다. 그분의 성모님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삼위일체의 신비와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어 오신 육화의 신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은총과 신비』,
심종혁 역(서울: 김영사, 1997), 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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