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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가해)

㉥ 마태 13,24-43 Weeds Among the Wheat

작성자카타리나 S.|작성시간26.06.16|조회수1 목록 댓글 0

선인과 죄인이 공존하는 교회
죄인도 품은 지상교회, 끊임없이 회개해야

신약성경 27권 중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성경은 네 개의 복음서다. 복음서 중 분량이 가장 긴 마태오복음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주제별로 엮어 놓았다. 5~7장엔 산상 설교를, 8~9장은 열 가지 기적 사화를, 10장은 파견 설교를, 13장은 비유 설교를, 18장은 공동체 설교를, 24~25장은 종말심판 설교를 모아 엮었다.

비유설교를 담은 13장은 모두 일곱 가지 비유말씀을 들려준다. 이들 비유는 하늘나라에 관한 것으로 씨 뿌리는 사람, 밀과 가라지, 겨자씨, 누룩, 밭에 묻힌 보물, 진주, 그물의 비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계시다가 온 하늘나라에 관하여, 그러나 사람들은 가본 적이 없어 생소한 그 나라에 관하여 비유를 들어 가르쳐주셨다. 필자는 오늘 좋은 씨앗을 뿌린 밭에 갑자기 생겨난 가라지(독보리)의 비유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비유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비유가 왜 양성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즉 비유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으로 힘을 얻은 사도들은 사방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이른바 교회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 공동체가 놀랍게 성장하였으니, 이는 곧 하느님 나라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런데 선하고 거룩해야 할 공동체 안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공동체는 예수님의 비유말씀에서 이 문제에 관한 해답을 찾게 된다.

좋은 말씀의 씨앗이 믿음의 공동체라는 텃밭에 뿌려져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에 잡초 같은 가라지가 생겨났으니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다. 파종과 수확이라는 시간의 간격 속에 아무도 모르게 함께 자라난 가라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복음은 비유를 통해 교회는 선인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죄인과 공존하는 공동체임을 가르치고 있다. 교회는 거룩하지만 교회 구성원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교회가 거룩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자체가 거룩하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구성원은 아무도 스스로 거룩하다 말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에 관한 교의신학은 세 가지 종류의 교회를 말한다. 순례하는 지상여정의 교회(지상교회), 개선한 천상의 교회(천상교회), 단련받는 정화의 교회(연옥교회)이다. 종말에 이르러 완성되기 전까지 교회는 이 세 가지 교회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각각의 교회는 상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독립적이지만, 신비적 관점에서는 하나이며 서로 밀접하게 교류한다.

지상교회 안에는 늘 죄인들을 선인들로부터 가려내어 단죄하고 격리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그러나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교회가 선인뿐 아니라 죄인과 함께 성장하여 간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좋은 말씀의 씨앗이 사람 마음의 텃밭에 뿌려져 자라나는 동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찾아온다. 사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누구나 공평하게 기회를 갖는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이런 기회는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으며, 앗아갈 수도 없다.

교회가 섣부른 선별과 제거작업을 위해 칼을 들이댄다면 자칫 선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 밭주인의 뜻이다. 밀과 가라지를 선별하는 작업은 그렇다하더라도, 우리들 중 누가 있어 선인과 죄인을 정확히 구별하겠는가? 아무도 없다. 선인과 죄인의 구별은 절대적으로 하느님의 종말심판에 맡겨져 있다. 그때까지의 시간은 하느님께서 주신 씨앗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요, 인내와 관용의 시간이다. 교회는 그저 그 품에 죄인들을 품고 있으므로 거룩하면서도 항상 정화되어야 하겠기에 끊임없이 회개와 쇄신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2011 천주교 몰운대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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