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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 La Porte de l'Enfer 1880-1917

작성자카타리나 S.|작성시간26.06.22|조회수1 목록 댓글 0

지옥의 문은 프랑스의 미술가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상이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제1부 인페르노의 한 장면을 묘사한다. 높이는 6미터, 너비는 4미터, 깊이는 1미터이며 180개 인물을 포함한다. 인물상은 높이가 15센티미터에서 최대 1미터에 이를 정도이다.
오귀스트 로댕, 지옥의 문, 1880-1917,
오르세 미술관 소장

프랑스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에 전시된 '지옥의 문' 석고 원형. 이 원형을 이용해 청동 작품을 제작한다.

오귀스트 로댕의 '지옥의 문' 진품은 석고 원형 1점을 포함해 전 세계에 총 8개만 존재한다. 로댕의 청동 작품은 원형을 바탕으로 후대에 주조된 에디션(Edition) 개념이므로, 번호가 매겨진 7개의 청동상 모두 공식 진품으로 인정받는다.

진품(청동 에디션 7점)
제1호: 프랑스 파리 로댕 미술관
제2호: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제3호: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제4호: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캔터 아트센터
제5호: 스위스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제6호: 미국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제7호: 대한민국 서울 로댕미술관
(현재의 호암미술관 소장, 전시 장소는 변동 가능)
제8호: 멕시코 소우마야 미술관

세계 각지에 전시된 로댕의 '지옥의 문'.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일본 국립서양미술관,
멕시코 소우마야미술관, 미국 스탠퍼드대학 소유품

작품은 1880년 당시 프랑스 미술부 차관인 에드몽 투르케에 의해 주문됐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삼고 단테가 지옥에서 만난 180여 명의 인물을 표현했다. 독립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생각하는 사람><키스>도 이 ‘문'의 일부였는데, 다만 '지옥의 문' 자체를 하나의 앙상블로는 완성시키지 않았다. 로댕은 사망 전에야 이 작업들을 청동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했고, 다시 10년이 지난 후에나 미국 미술관의 요청에 의해 청동 작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주문을 받던 당시 로댕은 마흔 살이었다. 파리의 조각 거장으로 손꼽힌지는 5년쯤 되었을 때였지만, 정부의 기대가 워낙 크다보니 작업은 로댕에게도 부담이었다.
그러던 중 1883년, 고뇌에 빠진 로댕 앞에 19살의 천재 소녀,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이 등장한다. 클로델은 당시, 로댕의 동료 조각가였던 알프레드 부셰의 제자였다. 부셰가 공모전에 당선되며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데리고 있던 제자를 동료인 로댕에게 맡겼다.
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부셰는 클로델을 인정했다. 부셰는 로댕에게 보기 드문 여성 조각가이지만,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재원”이라고 강조하며 특별히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로댕은 카미유의 조각 실력을 보고, 부셰의 말을 바로 납득했다.
클로델의 조각 실력을 확인 후 로댕은 즉시 클로델을 본인의 골칫덩어리였던 <지옥의 문> 작업에 투입한다. 그렇게 스무 살의 어린 클로델은 로댕의 작품에 조수로, 이윽고 실력을 인정받아 협업자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이 협업은 꽤 길게 이어졌다. 로댕이 죽을 때까지 이 지옥의 문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댕은 끝없이 작품 속 인물을 재배치하고, 재제작했다. 작품은 미완성의 상태로 37년간이나 수정됐다. 로댕과 카미유의 협업도 같은 기간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 기간 동안 이들은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게 된다.

로댕은 클로델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클로델은 조각 실력도 좋은 데다가 성실했고 외모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이들은 거의 매일 작업실에 출근해서 작업했다. 로댕은 작업실 밖에서도 클로델과 함께하며 사교계 파티나, 미술 행사가 있는 자리에 클로델을 데리고 갔다.

이 시기 로댕의 마음은 복잡했다. 실력 있는 제자의 가능성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스승의 마음과 동시에 이성적으로 끌리는 애정어린 마음을 품고 있었다.

마지막 진품은 멕시코 재벌 소유 미술관으로

로댕은 찰흙이나 석고까지만 직접 작업했다. 찰흙으로 원하는 모양을 빚고 만족할 경지에 이르면, 이후에는 공방의 장인들에게 '마스터(대가)의 원형 작품'을 대리석이나 석고, 청동 등으로 복사본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여러 재료를 이용한 작업 중에서 청동 주조는 가장 고난이도다. '지옥의 문'은 높이 6.35m, 폭 3.98m, 무게 7톤으로 청동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주조에는 고도의 기술과 상당한 자금이 들기에 세계 각지의 ‘지옥의 문’은 긴 시간차를 두고 제작된다.

기관용으로는 마지막(8번째) 진품 '지옥의 문'이 전시된 멕시코 소재 소우마야 미술관의 전경.

로댕은 죽기 전 자신의 전 재산을 나라에 기부하기로 프랑스 정부와 합의했다. 집과 작업실, 판매되지 않은 작품과 개인 소장품뿐 아니라 사후에도 작품을 계속 캐스팅할(뜰) 권리도 부여했다. 그가 만든 석고 원형에서 가져온 주형을 이용해 공인된 작품을 만들고 생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값어치를 매긴다.

프랑스는 법으로 로댕의 청동 작품 수를 제한했다. 기관(public)이 주문할 경우 8개, 개인(private)이 주문할 경우 4개까지다. 지식 재산권 코드 R 122-3 조항은 예술가의 사본을 포함하여 총 12개까지를 예술 원본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한다. 기관 주문 시 1/8에서 8/8까지 8개, 개인 주문시 I/IV~IV/IV 4개, 총 12개의 작품만 인정되는 것이다. 또한 작가·스튜디오의 서명과 도장이 찍힌 진품서가 발급되는데, 작가와 컬렉터를 보호하는 사실확인 문서다.

첫번째 청동 ‘지옥의 문’은 1926년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의 요청으로 제작됐다. 이어 1928년 프랑스 로댕미술관, 1930년 일본 도쿄, 1949년 스위스 취리히를 위해 주조됐다. 이후 5~7번째 작품은 1978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1992년 일본 시즈오카현립미술관, 1994년 한국 삼성문화재단이 주문했다. 한동안 기관용으로 인정되는 마지막 8번째 '지옥의 문'을 누가 가져갈지가 관심사였는데, 9년에 걸친 협상 끝에 2021년 멕시코 재벌 카를로스 슬림이 건립한 소우마야(Soumaya) 미술관에 가기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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