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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전 예배 설교

평안하기를 빌라(6월 14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작성자[참빛세상] 페트라|작성시간26.06.12|조회수9 목록 댓글 0

평안하기를 빌라(614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마태복음 10:1-15(신약 15)

 

2024. 4. 24 인제대학교 병원 백병원 원보에 이런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병들어 가는 현대인들의 정신건강,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현대사회에서는 최첨단의 기술과 빠른 정보 전달 속도, 그리고 경쟁과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는 사회환경 등으로 인해 현대인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신건강의 문제는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21년 실시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이 27.8%였다. 평생에 한번 임상적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이 10명 중 3명에 가깝다는 이야기이며, 이는 가족이나 친구, 심지어 나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사회살기 좋은 것은 환경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있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행복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인구의 10명 중 3명은 정신적은 질환을 겪은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풍족해 보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참된 평안이 메말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질병의 두려움, 경제적인 염려, 관계의 깨어짐 속에서 많은 영혼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세상으로 파송하시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단순히 교훈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는 놀라운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적과 기사, 고치고 살리고 쫓아내는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서 찢겨지고 상한 영혼과 육체,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샬롬)’을 회복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파송하시는 장면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 곧 평안(שָׁלוֹם / 샬롬)을 온 세상에 흘려보내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통해서 전하고, 가르치고,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전하고 고치라고 말씀하시면서 전하고 고치는 사역의 핵심을 평안을 비는 것이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은 평안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평안을 빌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제목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권능을 주셔서 보내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부르심에서 시작하여 파송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는 장면을 보면

 

먼저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1-4절을 보면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10: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10: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10:4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님은 먼저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부르사는 헬라어 προσκαλέσάμενος(프로스칼레사메노스)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의 뜻은 자신에게로 가까이 불러들임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파송하시기 전에 먼저 가까이 불러서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제자를 삼으셨다는 것은 먼저 제자들과 교제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제라는 표현은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와 관계를 맺고 교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우리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의미보다는 믿음으로 서로 교제하는 공동체가 되는 곳입니다. 초대교회는 교제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교제하는 신앙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제는 헬라어 κοινωνία에서 유래한 단어로, 친교, 공동 참여, 교제, 공유, 합동, 기부 등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코이노니아는 단순한 사교적 친목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삶과 신앙을 나누고 함께 참여하는 관계를 강조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코이노니아는 두 가지 주요 의미가 있는데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친밀한 관계로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통해 신앙적 연대를 형성합니다.

 

성도 간의 교제와 나눔을 통해서 믿음을 공유하고, 경험과 자원을 나누며, 서로를 돕는 공동체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먼저 코이노니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두 제자의 이름을 보면, 세리 마태, 열심 당원 시몬처럼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신비입니다. 인간적 기준으로는 공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권능은 헬라어 ξουσία(엑수시아)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단순한 힘(δύναμις,뒤나미스)과 구별되어, ‘위임된 권위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 자신의 권위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권능입니다. 여기서 모든이란 단어가 두 번 반복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질병도, 마음의 상처도, 영적 억눌림도, 모두 예수님의 권능 앞에 항복합니다.

 

우리에게도 권능을 주셨습니다.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6절을 보면

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10: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님은 처음 파송에서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에게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어떤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제외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이 유대인에게 먼저 전해진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롬 1:16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먼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눈을 돌려야 합니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직장 동료들이 복음을 먼저 전해야 할 대상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능은 우리 자신의 성공과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내 주변에서 잃어버린 양은 누구인지 생각하고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2.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하라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선포해야 할 핵심 메시지에 대해서 7절에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리고 오늘 우리가 전해야 할 핵심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국은 헬라어로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βασιλεία τν ορανν)’입니다. 가까이 왔다는 헬라어 γγικεν (엥기켄)으로 완료시제입니다. 이미 도래하여 현재에도 가까이 있다는 뜻입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먼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금 이 땅에 임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장소로서의 천국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지금 이 땅, 우리 삶 가운데 임재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고 지금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했으며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완전하게 임함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고, 기적을 경험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전하라고 하시면서

고치고, 살리고, 쫓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보면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 즉 임하고 있다고 전하라고 하시면서 네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

 

이것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영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실제로 하나님 나라가 임한 증거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삶에 실제로 임한 증거로 전인적인 구원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몸과 영혼, 관계와 사회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회복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해서 말씀하셨습니다.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과 삶을 치유하고 고침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다시 보면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거저는 헬라어 δωρεάν(도레안)으로, 선물로서, 아무 대가 없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복음 사역의 근본 원리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죄 사함을 받았고(3:24), 값없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나눌 때도 대가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조건 없이, 차별 없이, 기대 없이 주는 것이 복음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지쳐서 전도와 봉사를 멈추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는 이만큼 주었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올 때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채워주시고 갚아주시고 풍성하게 주신다는 것을 믿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사랑을 베풀고, 나눔을 실천함으로 주어진 직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10절을 보면

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금도 은도 동도 전대도 두 벌 옷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 전대(돈지갑)나 두 벌 옷이나 신을 가지지 말라고 하신 것은 무소유를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친히 채우시겠다는 강력한 약속입니다.

 

주님은 복음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사역을 위한 물질적 준비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신앙의 원칙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과 가정에 하나님의 다스리심, 즉 천국이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영적으로 구원할 뿐 아니라, 몸의 연약함을 치료하고 삶의 저주를 끊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거저 받은 구원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이웃에게 흘려보냅시다. 물질에 얽매여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성도의 삶과 건강과 물질은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책임지십니다.

 

3. 평안하기를 빌라

오늘 말씀의 결론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느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합당한 자를 찾아 거기 머물며(11),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1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합당한 자를 찾아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1절을 보면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여기서 합당한 자는 헬라어 ξιος(악시오스), 무게에 걸맞은, 값어치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마음을 가진 사람, 복음을 향해 열린 사람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 뿌리기 전에 먼저 밭을 살피듯, 성령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신 마음 밭을 분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합당한 자를 찾는다는 것은 천국 메시지에 영적으로 호의를 가지고 있는 자로서 복음 전파자들을 친절히 맞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있으며 복음을 받아들일 만한 순결한 영혼을 갖춘 자를 말합니다.

 

이와 더불어 윤리적으로도 타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자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사역자들은 자기가 머문 그곳을 기점으로 그 온 동네를 복음화시켜야 했기 때문에 경건하며 건강한 생활을 하는 자들의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합당한 자를 찾아서 그 집에 거하라고 말씀하시고 평안하기를 빌라고 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평안하기를 빌라는 헬라어로 σπάσασθε ατήν(아스파사스데 아우텐)으로, 그 집에 인사하라, 평안을 선포하라입니다. 이 단어안엔느 평안이란 말이 들어 있지 않지만 당시 유대인의 인사말은 샬롬(Shalom, שָׁלוֹם)’이었습니다.

 

원래 단어의 의미로만 보면 그 집에 인사하라는 뜻인데 당시 유대인들의 인사가 샬롬 즉 평안이기 때문에 평안을 빌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샬롬은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상태를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어 영혼과 육신, 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완전하고 충만하며 질서 잡힌 축복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라고 하신 이유는 가정에 잃어버린 평안을 찾아주기 위함입니다. 귀신이 떠나가야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육신의 질병이 고쳐져야 가정에 평안이 회복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첫마디는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였습니다. 평안은 복음이고 예수님의 사역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메시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합당하면 평안이 임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절을 보면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가 빌어준 평안은 공중에 흩어지지 않습니다. 그 집이 합당하면 평안이 임하고, 합당하지 않으면 그 평안이 전한 자에게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행위 자체가 복음 전하는 자에게도 복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평안을 빌어주는 사람이 될 때, 우리 자신도 평안의 사람이 됩니다.

 

14-15절은 거절에 대한 경고입니다.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주를 퍼붓는 것이 아닙니다.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당신들의 결정의 책임은 당신들에게 있습니다.’는 선언이며, 복음 전하는 자가 결과의 짐을 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자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어 사람들이 억눌림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즉, 평안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곧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14:17)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평안하기를 빌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 사역의 목적이자 방법이자 결과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영혼과 몸과 삶을 샬롬으로 인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먼저 예수님에게로 가까이 부르시고, 그 다음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우리가 파송 받은 이유는 샬롬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병든 세상을 고치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어둠에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여, 하나님의 평안을 흘려보내는 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발걸음마다, 우리 입술에는 "샬롬" 평안을 전하는 인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에게, 우리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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