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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전 예배 설교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6월 21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작성자[참빛세상] 페트라|작성시간26.06.19|조회수17 목록 댓글 0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621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시편 86:1017(구약 866)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장애가 있는데도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벤저민 프랭클린이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은 혹시 일하는 석공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있습니까? 석공은 아마 똑같은 자리를 백 번은 족히 두드릴 것입니다. 갈라질 징조가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백한 번째 망치로 내려치면 돌은 갑자기 두 조각으로 갈라집니다. 이는 한 번의 망치질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마지막 한 번이 있기 전까지 내리쳤던 백 번의 망치질 때문입니다.”

 

백 번의 망치질은 실패가 아닙니다. 다만 과정일 뿐입니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고 합니다. 실패하는 이유는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시편 86편은 다윗이 고통 중의 드리는 기도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다윗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오직 주님만을 의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주님만 바라보기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이 주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날 이렇게 예배드리기 위해서 주님 전에 나오는 것은 우리의 눈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향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서 하나님에게도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드리는 것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바쁘게 지내면서 보았던 세상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예배 드리기 원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많은 고난 속에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오늘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중심으로 해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다윗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는데 다윗은 세 번에 걸쳐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첫째, ‘내게 은혜를 베푸사 응답하소서 환난 중에 은혜를 구하면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옵소서. 라고 간구합니다.

 

둘째,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찬송하겠나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감사의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셋째, ‘내게 은혜를 베푸사 힘을 주소서절망의 상황에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힘을 주셔서 절망에서 나를 구원해 주소서 라고 노래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이런 내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은혜를 베푸사 내게 응답하소서

다윗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가난함과 궁핍함을 고백하며 응답을 촉구합니다.

 

다윗은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1-2절을 보면

86: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86: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다윗이 자신을 가난하고 궁핍한사람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은 물질적 가난이 아닌 영적안 자세 곧 믿음의 자세입니다. 히브리어로 'עָנִי וְאֶבְיוֹן (아니 베에브욘)'은 스스로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겸손한 영혼을 뜻합니다.

 

가난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עָנִי (아니)인데 이 단어는 가난한 자, 낮아진 자. 겸손하게 엎드린 영혼.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신앙 자세로 세상에서 나를 도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을 향해 도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이자, 의지할 곳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적 자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궁핍한 자''에비욘(אֶבְיוֹן)'으로, 연약하고 힘없는 자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전적인 무능함과 연약함을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한 다음에 자신이 '경건한 자'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종'이리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이 자신의 행위나 능력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영혼을 지키사 나는 경건하오니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을 구원하소서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86:2)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경건하다'는 히브리어 '하사이드(חָסִיד)'는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자, 혹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여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3-5절을 보면

86: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86: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86: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고통 중에 있음을 토로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기쁘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여 나는 종일토록 주께 부르짖으리이다 주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86:4).

 

'기쁘게 하소서'라는 히브리어 '사마흐(שָׂמַח)'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슬픔과 절망에 잠겨 있음을 고백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영혼에 참된 기쁨과 평안을 주실 수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풍성하심이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인자함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비록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선하시고, 사죄하시기를 즐거워하시고 인자함이 풍성하신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다윗의 계속되는 기도는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소서라는 기도입니다. 6-7절을 보면

86: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86: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다윗은 자신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마치 죽음의 문턱에 선 것과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환난'을 뜻하는 히브리어 '차라(צורָה)'는 좁은 곳, 억압,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는 환난이 오면 기도한다고 하면서 다른 것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또 세상은 우리에게 환난의 상황에서 당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인맥, , 능력, 경험.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붙들고 있습니다.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에게 환난이 오고 고통이 오고 절망이 올 때 즉시 멈추고 하나님께 부를짖어야 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우리에게 응답하사 환란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2. 전심으로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리이다.

다윗의 기도는 간청으로 시작하여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성경적 기도의 순서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볼 때, 탄식은 찬양이 됩니다. 시편 86편 앞부분에서는 간절하게 기도했던 다윗은 찬양합니다.

 

다윗의 찬양을 보면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을 행하십니다.’ 810절을 보면

86: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86: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86: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다윗은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다'고 선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에는 바알, 아스다롯 등 수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모든 것과 여호와 하나님을 대조하면서. 오직 주만이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

 

기이한 일 נִפְלָאוֹת (니플라오트)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기이한 일들, 경이로운 행적이란 의미로 사람이 계획하거나 상상하지 못하는 하나님만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출애굽의 기적, 홍해 가르심, 광야의 만나가 모두 니플라오트 입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은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기이한 일을 행하십니다. 의사가 포기한 자리에서 주님의 일어나는 신유의 역사가 기이한 일들입니다. 망한 가정이 회복된 이야기, 깊은 중독에서 건져진 영혼들. 이 모두가 '니플라오트'입니다.

 

77:14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계속해서 다윗은 주의 도를 가르치사 경외하며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라고 고백합니다. 1112절을 보면

86: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86:12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이 구절에서 다윗은 세 가지를 구합니다.

첫째, '주의 도를 가르치소서.'

둘째, '진리 안에서 행하리이다.'

셋째,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이 세 구절은 배움과 실천과 예배의 통합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고 그 도를 따라 살기를 간구합니다. '진리'를 뜻하는 히브리어 '에메트(אֱמֶת)'는 견고함, 신실함, 참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도를 배우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며 영원히 찬양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주의 도를 배워 진리 안에서 일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다. '일심(전심)'은 나뉘지 않은 마음입니다. 찬양의 히브리어 '야다(יָדָה)'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전 인격적으로 찬양하며 감사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우리는 환경이 좋을 때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주의 도를 배우며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일심으로 라는 말과 함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헤드 레바비)' 라는 표현을 했는데 다윗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배 자리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오후 일정에 가 있는가 하면 내일 있을 일에 마음이 가 있다고 합니다. 찬송을 부르면서도 입술과 마음이 따로 놀 때가 있습니다.

 

이어서 전심으로(베콜 레바비, בְּכָל לְבָבִי)’ 11절에서 마음을 하나로 모아달라고 구하더니, 12절에서 그 응답으로 '전심으로'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온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결단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다윗이 찬양의 이유를 고백하는데 내 영혼을 스올에서 건지셨습니다.’ 고 고백했습니다. 13절을 보면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다윗은 과거 자신이 경험했던 구원을 회상합니다. '스올(שְׁאוֹל)'은 죽음의 세계, 절망의 심연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스올, 즉 죽음의 깊은 곳에서 건져내셨음을 고백합니다. 이는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며, 앞으로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헤매던 날들, 밧세바 사건 이후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무너졌던 날들. 그러나 주님은 그를 그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리셨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하는 것은 '회상의 찬양'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어떻게 건져 주셨는가를 기억하는 것이 현재의 찬양이 됩니다. 우리도 각자의 '스올에서 건짐 받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다시 찬양할 수 있습니다.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은혜를 베푸사 주의 종에게 힘을 주소서

찬양의 절정을 지나 다윗의 시선은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눈이 여전히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힘을 구하는 다윈은 먼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15절을 보면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4절에서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자신을 핍박한다고 고백한 다윗은 15절을 '그러나(וְאַתָּה, 베아타)'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표현한 것은 신앙의 역전입니다.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으로 시작할 때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란 표현은 절망적 상황 앞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시선을 돌리는 신앙의 전환점입니다.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여기서 '인자'는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입니다. 이는 언약에 기초한 변함없는 사랑,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맹렬한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헤세드'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אֶרֶךְ אַפַּיִם, 에렉 아파임)''코가 길다'는 뜻입니다. 히브리 문화에서 코를 벌름거리는 것은 분노의 표현입니다. '코가 길다'는 것은 그 분노가 오래 참아진다는, 즉 오래 참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복되는 실패와 불신앙 앞에서도 금방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더디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몇 번이고 같은 죄를 반복하고, 또다시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이어서 다윗은 주의 종에게 힘을 주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16절을 보면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다윗은 이제 가장 구체적이고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주의 종에게 힘을 주소서.' 히브리어로 'עָזֶּךָ לְעַבְדֶּךָ (우제하 레아브데하)''당신의 힘을 당신의 종에게'로 번역됩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연약하여 쉽게 지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불과 같이 임하실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오즈()'를 얻게 됩니다. 성령 세례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매일매일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입니다.

 

때로 '나는 더 이상 못 하겠다'는 한계에 부딪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하나님의 힘을 구하기에 가장 좋은 때 입니다. 우리가 비워질 때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우리가 무릎 꿇을 때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리고 내게 힘을 주소서 이 고백의 간구가 우리의 고백과 간구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17절을 보면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마지막 절에서 다윗은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라고 구합니다. '표적(אוֹת, 오트)'은 단순한 기적이 아닙니다. 표적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증거'이자 '표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증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표적의 목적은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이것은 원수에 대한 복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세상에 보이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내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가 불신자들로 하여금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구나' 를 깨닫게 하는 것이 표적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가 자신의 삶에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증거로 나타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선포하게 해 달라는 선교적 기도입니다.

 

다윗의 마지막 고백을 보면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셨나이다' 이것은 과거형입니다. 아직 기도가 응답 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미 과거형으로 고백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실 것을 미리 고백하는 믿음의 선포입니다.

 

다윗은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은혜를 베푸사 응답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은혜를 베푸사 응답하시기에 전심으로 찬송하겠나이다.

은혜를 베푸사 힘을 주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실 때, 하네니(חָנֵּנִי)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라는 다윗의 기도를 입술에 달고 살아갑시다. 출근길에, 가사일을 하며, 자녀를 대하며, 어려운 결정 앞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오래 참으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응답하시고, 찬송하게 하시고, 힘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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