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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예배 설교

영적 예배1(2026년 6월 7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작성자[참빛세상] 페트라|작성시간26.06.06|조회수25 목록 댓글 0

영적 예배1(202667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성경 : 로마서 12:1-13(신약 257)

 

[나에게 힘을 주소서]

 

지치고 힘든 일에

부딪힐 때마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소서.

 

남 탓으로 세상 탓으로

원망하지 않게 하소서.

오로지 나의 실수로

인정하게 하소서.

 

나에게 힘을 주소서.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나를 신뢰하는 믿음의 기도로

헤쳐 나갈 수 있게 하소서.

사랑으로 믿음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강한

자신감을 주소서.

 

가치 없는 걱정을 물리칠 수 있는

현명함을 주소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나를 더 신뢰하고 나를 더

사랑하여 나날이

만족해하는

내가 되게 하소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서

걱정하는 어리석은 내가 아니라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지혜로운

내가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단단한

삶을 살아가게 나에게

강한 힘을 주소서.

 

- ‘고마워요 내 사랑-

 

바울 사도는 유대인 구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계속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 바울이 12장에 와서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적 예배1”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앞으로 3주간 같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입니다. 구약 시대는 예배가 아닌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오순절 날 성령이 오신 다음 우리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우리를 위한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찬양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라면

두 번째 목적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는 예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즐겁고 은혜를 받는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본질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면 은혜는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예배에 대해서 말하시면서 우리가 드릴 예배는 영적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예배의 핵심은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23-24절을 보면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1. 우리 몸을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몸을 드리라는 말은 전 인격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삶을 예배로 드린다는 뜻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예배 시간에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근거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 주신 모든 자비하심에 근거한 것입니다.

 

자비하심이란 말씀은 불쌍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그 모든 자비로 인해서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얼마나 덧입고 사는 가를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신 모든 자비하심을 기억할 때 하나님께 우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 나를 위해 승천하시고 때가 되면 다시 오시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하심 곧 자비에 근거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억하고 그 모든 자비하심을 기억하면서 우리 몸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대해서 히브리서 11:5-6절을 보면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인정을 받았다고 말씀하면서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삶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제물은 죽여서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나는 이미 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내 삶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미 드려진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렸다는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살아가고 내가 원하는 길로 가려고 합니다. 나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렸다면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삶입니다.

 

우리 몸을 즉 우리의 인격과 삶 전체를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과 내 삶을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나를 쳐서 복종시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라고 말씀했는데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렸다면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드린 거룩한 산 제물이기 때문에 이 세대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은 크게 두 자기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이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풍습을 따라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현대 교회는 세대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의 문화와 풍습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회를 혼란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세상의 풍습을 따라가지 않고 오직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본받지 말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순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세대의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사탄인데 사탄에게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탄에게 순종하고 사탄의 문화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분석을 한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성장하는 교회와 많은 성도들이 떠나가는 교회에 대한 분석을 했는데 편안하고 예배드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누구나 익숙한 분위기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는 성도들이 떠나는데 전통을 고집하면서 지루하게 느껴지는 예배와 힘든 훈련을 하는 교회들이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와 세상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교회는 세상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익숙한 환경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 분의 주장입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서 마음으로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고 늘 옛날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날마다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성령님께서 나를 변화시켜 주시도록 성령님께 나를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2절을 다시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세 가지가 전제되고 있습니다.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하시고의 헬라어는 아가도스인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특별하게 주신 말씀을 기준으로 규정되는 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의 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의 개념을 교회 안에서(9), 사회 속에서(21) 그리고 국가에 대한 관계 속에서 (13:3ff.)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곳에서나 선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데 빛이 된다는 말은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란 말은 우리가 우리의 존재 목적을 이루어 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삶을 통해서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온전하신 뜻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온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3절을 보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지혜롭게 생각해야 하는데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이란 말의 의미는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다.’,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다.’ 라는 뜻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교만함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응답을 받고 기적을 행하고 능력이 나타나면 그 때부터 자신이 하나님인 것으로 착각을 해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하게 되는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 스스로 분에 넘치거나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항상 주님이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눠주신 것을 은사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감사함으로 받고 그 받은 은사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작은 은사를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내 믿음을 보시고 나에게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내 믿음의 분량을 생각도 하지 않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 믿음을 생각하고 내 믿음의 분량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시도록 나를 드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일하시고 나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내 믿음의 그릇이 작은데 그 작은 그릇에 아무리 많은 것을 부어주셔도 그 작은 그릇만큼만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크고 많은 은사를 받기 원한다면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크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분량 즉 그릇은 작은데 많은 것을 받기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내 크고 놀라운 역사를 기대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크게 하고 우리 믿음의 그릇을 크게 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선지생도 아내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엘리사는 빈 그릇을 준비하라고 했고 여인이 준비한 그릇에 기름을 채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그릇만큼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지혜롭게 생각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믿음의 분량을 알고 내가 준비한 만큼 채워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릇을 크게 하고 믿음의 분량을 크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큰 은사와 능력과 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오늘은 여기까지 살펴보고 다음 주에 계속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 예배를 드리는 성도로서 우리의 삶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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