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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예배 설교

영적 예배(2)(2026년 6월 14일 수요 예배 설교)

작성자[참빛세상] 페트라|작성시간26.06.13|조회수27 목록 댓글 0

영적 예배(2)(2026614일 수요 예배 설교)

성경 : 로마서 12:1-13(신약 257)

 

지난주에는 본문의 말씀으로 영적 예배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내용은 영적 예배는 몸을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난주에는 3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았고 오늘은 4절부터 계속해서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에 대해서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영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살펴보면

 

1. 우리는 한 몸의 지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주권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있는 지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한 사람의 몸이 아닌 그리스도에게 속한 지체이고 교회에 속한 지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교회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삶의 문제를 가장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질문할 때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우리가 한 몸의 지체라는 말씀은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4절을 보면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우리 몸은 많은 지체들이 모여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체란 말은 우리 몸에 있는 여러 기관들을 말하는 것으로 위에서 눈과 코와 입과 귀가 있고 손가락과 손이 있고 발가락과 발이 있으면 무릎이 있고 발목이 있고 수많은 지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몸에 눈만 있거나 코만 있거나 귀만 있다면 그 몸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우리 몸에 있는 각 지체들은 그 나름대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몸을 이루고 있는 많은 지체들이 있듯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교회를 이루는 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각 작은 지체입니다. 그러나 지체인 우리가 한 몸을 위해서 서로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몸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각 지체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우리가 속한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몸에는 어느 한 지체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지체 심지어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지체입니다. 우리 몸에 있는 지체 중에 필요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체는 하는 일이 다릅니다. 4절을 다시 보면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우리 몸에 많은 지체들이 있는데 그 모든 지체들은 같은 기능 즉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의 역할은 보는 것이고, 귀의 역할은 듣는 것이고, 코의 역할을 숨을 쉬는 것이고, 입은 말을 하고 음식을 먹는 일을 합니다.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입이 눈의 역할을 하고, 귀도 눈의 역할을 하고, 코도 눈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 몸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내가 어떤 지체인가를 알고 내게 맡겨진 지체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모든 지체가 같은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 몸은 건강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과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 다른 지체의 기능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기능은 더 좋은 것이고 어떤 기능은 낮은 기능이고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지체는 하는 일이 다르듯 교회에서 직분도 다른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직분이 다르고 기능이 달라도 모두 같은 몸에 있는 지체이고 같은 교회를 섬기는 성도입니다.

 

고전 12:18-27절에 자세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12: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2: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12: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12: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12: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12: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12: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지체와 직분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높고 낮음의 차이가 아니라 기능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직분의 기능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하나 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가 되었습니다. 5절을 보면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고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쉬운 성경으로 보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 대해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인격체이고 다른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존재이지만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이 되어 하나의 몸을 이루고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각자가 하나의 지체들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지체가 되었지만 서로 기능이 다른 지체들이기에 서로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합력해야 합니다.

 

2.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는데 서로 다른 지체로서 다른 기능 즉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체라는 말과 기능이란 말과 관련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은 은사라는 단어입니다. 은사라는 말은 성령을 받은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은사라는 말은 은혜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은혜의 선물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여기 언급된 은사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은혜의 선물이란 관점에서 보면 은사를 개발되거나 성장하거나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사람들이 개발을 하고 발전을 시킨다는 것은 적당한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 즉 은혜의 선물을 주시는데 그것은 각기 다른 지체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위해서 즉 기능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용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포장을 뜯어보지도 않고 창고에 넣어둔다면 그 안에 보석이 들어 있다거나 귀중한 선물이 들어 있다거나 할 때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열거된 은사들을 보면

 

첫째, 예언의 은사입니다. 6절을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첫 번째로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언은 앞으로 되어 질 일을 미리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앞으로 되어 질 일에 대해서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예언의 은사를 사용할 때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인간은 자신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언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를 잘못 사용하면 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예언의 은사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예언의 은사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믿음의 분수대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수대로 라는 말은 믿음의 크기대로 또는 믿음에 비례해서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예언을 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믿음에 따라서 해야 합니다. 즉 세속적인 형태의 예언이 아닌 철저하게 신앙적으로 성격적인 방법으로 예언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를 잘 알고 그에 따라서 예언을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메말라 있거나 성령님이 임재하지 않으시는 가운데서 억지로 예언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운데 성령이 주시는 말씀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경에 근거한 예언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입니다.

 

둘째, 섬기는 일입니다. 7절에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바울 사도는 섬기는 일을 은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섬기는 것은 은사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섬김이란 말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섬김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과 종류가 있지만 여기서 섬김은 교회 안에서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또는 교회가 정상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직분은 모두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섬김은 직분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교회에는 섬김을 받는 직분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섬김을 받을 사람은 초신 자와 어린아이와 학생들과 장애인들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그 외에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직분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직분은 교회를 위한 기능이고 또한 그런 기능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서 잘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직분은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섬김의 은사를 주셨다면 섬김의 은사를 잘 사용해야 하는데 섬김의 은사는 섬김으로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7절을 다시 보면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가르침은 지식과 관련해서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조화롭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를 형성케 하고 훈계를 통해서 성도들의 삶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의 근본적인 목적은 나를 닮은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 위로하는 은사입니다. 8절을 보면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위로하는 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칼레오 παρακαλέω 인데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청하다. 권면하다. 요청하다. 위로하다. 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로하는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권면해서 믿음의 길로 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주님께 초청하는 것도 위로의 영역에 들어가고 처음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을 권면해서 즉 연약한 믿음을 잘 권면하고 격려해서 열심 있는 성도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또한 위로한다는 말은 상처받은 성도나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를 말씀으로 위로해 주고, 중보기도로 힘을 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또한 주님은 우리를 품어 주시고 안아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성도들이 위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위로의 은사를 받은 성도는 주님의 마음으로 위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위로 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특별히 위로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함으로 우리를 섬기셨듯이 우리도 겸손함으로 섬기는 위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위로 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을 때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형식적이지 않고 진정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진정한 위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볼 때 위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진정으로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위로의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다섯째, 구제하는 은사입니다. 8절을 다시 보면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구제하는 것도 은사입니다. 초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구제 사역 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제 사역도 은사가 없으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구제하는 은사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개인적인 구제의 은사입니다. 개인적으로 가난한 사람, 장애인, 혼자 된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구제하는 은사를 말하는 것으로 구제하는 은사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교회의 구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당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와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구제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구제하는 일을 사도들이 감당했는데 성도들은 많아지고 할 일이 많은데 구제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역과 구제를 분리하기 위해서 집사님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집사님들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 구제의 일을 맡기고 사도들은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구제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구제를 하는데 있어서 성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실함이란 말은 순수한 마음으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구제할 때 사람들을 가리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구제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실함은 후하게 라는 뜻도 있습니다. 구제할 때 인색하게 하지 말고 후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구제 사역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아깝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서 인색한 구제를 하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제를 할 때 후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나머지는 다음 주에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주님과 교회의 지체가 되어 한 몸이신 그리스도와 교회를 건강하게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잘 섬기고 받은 은사를 통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해서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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