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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예배 설교

영적 예배(3)(6월 21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작성자[참빛세상] 페트라|작성시간26.06.20|조회수33 목록 댓글 0

영적 예배(3)(621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성경 : 로마서 12:1-13(신약 257)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가 산책하던 중 동네 골목에서 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우유배달을 하는 소년이었는데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우유병을 통째로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그 소년은 깨진 우유를 배상해야 한다는 걱정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랑케는 울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얘야, 걱정하지 말아라. 지금은 내가 돈을 안 가져와서 줄 수 없다만 내일 이 시간에 이곳에서 만나 내가 대신 배상해주마."

 

소년과의 약속 후 집으로 돌아온 랑케는 한 자선사업가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게 됩니다. 편지 내용은 역사학 연구비로 거액을 후원하고 싶으니 내일 당장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랑케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순간 우유배달 소년과의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그 자선 사업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먼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소년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랑케는 망설임 없이 자선사업가에게 다른 중요한 약속이 있어 만날 수 없다며 편지를 보냈습니다. 랑케는 금전적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소년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랑케의 편지를 받은 자선사업가는 순간 상당히 불쾌했지만 전후 사정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랑케를 신뢰하게 되었고, 그에게 처음 제안했던 후원금 액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후원금을 보냈다 합니다.

 

랑케에게는 역사학 연구보다 한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어느 것보다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눈앞의 커다란 이익을 저버리면서까지 약속을 소중히 지켰기에 소년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선 사업가는 랑케의 더욱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작은 약속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따뜻한 세상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출처ᆢ - 따뜻한 하루

 

지난 2주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적 예배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우리가 드리는 영적 예배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고 또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난주에는 두 번째 시간으로 한 몸 된 지체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나누었는데 우리가 한 몸에 있는 각 지체라고 할 때,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한 지체는 기능이 다르다는 것과 한 몸에 있는 다른 지체들이 서로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한 몸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한 몸의 지체라는 개념에서 우리는 각자 받은 은사가 있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은사는 은혜로 받은 선물이란 뜻으로서 한 몸의 지체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셨는데 분문에 기록된 은사의 목록 중에서 5가지 은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은사 목록은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위로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본문에 기록된 은사 목록 중에 남은 은사에 대해서 살펴보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본문에 기록된 은사 목록은 총 7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5가지는 지난주에 살펴보았고 오늘은 나머지 두 가지 은사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여섯째, 다스리는 은사입니다. 8절을 보면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여기서 다스리는의 헬라어 프로이스테미선두에 서다.’, ‘통치하다.’, ‘지도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다스린다는 말은 두 가지로 사용되고 있는데

첫 번째는 교회에서 다스리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전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교회에서 다스리는 은사는 주로 장로님들이나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은사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목회자들도 장로로 부르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 2, 3서에서 장로인 나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에서 목회자들도 장로라고 불려지는 경우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장로님들은 초대교회의 장로님들과는 다른 직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다스리는 은사는 가정에서 다스리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딤전 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딤전 3:4절은 감독 즉 목회자와 장로의 자격을 말하면서 가정을 잘 다르시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12절은 집사의 자격에서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다스리는 자감독(목회자)과 장로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넓은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어쨌든 본문에서의 문맥을 볼 때 교회에서 성도들을 지도하고 통솔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에 대한 표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스리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특히 영적인 지도자들은 부지런하지 않고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목회자와 장로님, 권사님들은 다른 직분자들보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하지 않고는 다스리는 은사를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일곱째, 긍휼을 베푸는 은사입니다. 8절을 다시 보면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긍휼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면 긍휼을 베푸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레에오인데 이 단어는 인간이 베푼 자비를 나타낸 경우는 바울 서신 중 본문에만 유일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자비를 말할 때 사용했습니다. 본절의 '긍휼'은 일반적 의미의 '긍휼'을 말하는 것으로 병든 자와 환난 중에 있는 자, 무력한 자, 노인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분이 긍휼을 베푸는 직임인 구제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긍휼을 베푸는 은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은사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은사가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완악한 마음을 가질 때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기보다 정죄하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나의 완고한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고 나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긍휼히 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즐거움으로 이 일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곳에 도움을 주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 즐거움으로 나아가서 위로와 용기를 주라는 것입니다.

 

궂은일을 마지못하여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자세로 긍휼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성실함으로’, ‘부지런함으로’, ‘즐거움으로하는 것이 은사를 받은 성도의 올바른 섬김과 헌신의 자세입니다.

 

우리에게 은사를 주심은 주님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각 지체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지체로서의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인 은사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9가지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신 다음에 12장 마지막 절에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13장에서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기 때문에 사랑이 더 좋은 은사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특별히 신약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은 은사라기보다는 모든 성도는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사랑의 원자탄의 손양원 목사님이나 우리가 다녀온 문준경 전도사님 같은 분들의 사랑은 은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사적 사랑은 아니더라고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대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오늘 몸과 지체에 대한 말씀하시면서 은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은사들은 결론적으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면서

 

사랑엔 거짓이 없습니다. 9절을 보면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하나님의 사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거짓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사랑이나 입으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9절을 다시 보면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악이 아닌 선을 추구하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악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악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악한 방법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오직 선을 추구하고 선을 따르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먼저 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여기서 형제를 사랑하고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족은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 혈육의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먼저 혈육의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우애라는 말도 형제자매간의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자매는 서로 사랑하고 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형제자매간의 우애는 내가 먼저 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형제자매의 사랑을 위해서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여기서 형제자매는 넓은 의미에서 같은 신앙공동체를 말합니다.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믿음으로 만난 사람들은 혈육보다 더 깊은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존경하기도 먼저 해야 합니다. 존경한다는 말은 서로 인정하고 높여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가족 간에도 서로 인정하고 높여주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인정해 주고 높여주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부족해도 내가 보기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아도 우리는 서로를 인정해 주고 높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사랑의 가족이 되고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먼저 하는 성도가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12절을 보면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소망의 헬라어 표현 엘피스는 일시적으로 더 좋은 것을 바라는 헬라적인 개념보다는 확실한 소망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개념입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소망 중에종말의 때에 확실하게 성취될 일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확실하게 성취될 비전을 기다리며 라는 의미입니다.

 

즐거워하며종말론적 설레임이란 의미입니다.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며 갖는 기대감과 즐거움을 의미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비전이 확실하게 성취될 것을 믿기 때문에 비전이 성취될 것을 기대하면 갖는 즐거움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소망이 있는 사람이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사람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것이 분 명하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환난 중에 참는 사람입니다. 12절을 다시 보면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환난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이 세상에 받게 되는 모든 고난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난 속에서도 참을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의 선교 유적지를 돌아보고 문준경 전도사님의 사역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분이 겪었던 환난과 핍박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참고 인내하며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고 인내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12절을 다시 보면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기도하지 않으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으로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핍박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환난을 주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마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쓰는 것은 사랑을 위해서 이고 기도를 힘쓰는 것은 마음에 있는 미움과 악을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사랑은 내 것을 나눔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것을 나누지 않고 말로만 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대접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대접하는 일을 힘쓰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서로 어려운 성도의 필요와 궁핍을 도와줄 뿐 아니라, 어려움에 함께 동참하라는 권면입니다.

 

당시의 로마 제국은 식민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토지를 몰수하는 등 많은 재정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귀족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다 성도들은 신앙에 대한 박해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성도 간의 곤경을 도우며 동참하는 것은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위안과 격려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라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또한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말은 손님이나 이방인, 즉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으로 손님을 환대하라는 말입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성도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잘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성도들은 나그네를 푸대접하거나 내쫓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색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손님 대접도 풍성하게 하는 성도가 되고 손님 대접하는 것을 즐겁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로 교회를 세우고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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