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2026년 6월 10일 수요일 설교)
성경 : 에스겔 16:1-14, 60-63(구약 1170)
바벨론의 포로가 된 에스겔은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상기하면서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줄곧 죄악으로 대응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한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6장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이스라엘 왕국으로 성장하기 까지 계속 주어졌던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하는 전반부(1-14)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이유와 방법 등을 제시하는 후반부(15-63)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는 앞, 뒤의 문맥을 상반되게 구성함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배반에 얼마나 크게 진노하셨는가를 극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심판의 타당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6장의 전체적인 내용은 죄악에 대한 고발과 심판 예고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심판의 선포 속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가서 보면 영원한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62절에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라고 말씀 하심으로서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63절이나 되는 긴 내용으로 구성된 말씀 중에서 1-14절과 60-63절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떠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그곳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16장은 성경 전체에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본문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하나의 비유적인 이야기로 들려주십니다.
버려진 어린 아이가 사랑받고, 아름다워지고, 영화로운 존재가 되었다가 스스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언약으로 그를 다시 품으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타락에 대해서 영적 간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신부로서 살아야 할 선택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과 영적으로 간음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실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영원히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 관계가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자신들이 행한 죄악으로 인해서 부끄러워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타락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향해서 그래도 너희를 버리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면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으로 다시 용서하시고 다시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버려진 존재
3-7절 까지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버려진 땅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버려진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생 성분의 문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이 말은 예루살렘이 가나안 땅이며 아모리 사람들과 헷 사람에게 속해 있다는 말인데 본래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땅에 속해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이방인의 땅인 여부스를 점령해서 예루살렘으로 부르게 됩니다.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은 가나안의 이방 민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물리치라 하셨던 바로 그 민족들입니다. 여기서 네 근본을 문제라고 하신 것은 혈통적 의미라기보다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의 신들을 섬겼을 때, 그들의 영적 뿌리는 가나안의 우상 숭배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로운 출생 성분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 버려진 땅이라고 묘사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철저하게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영적으로 이방인들의 자녀라고 말씀하시면 너희들이 버려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믿는 혈통이 아니라 우상 숭배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의 원래 신분은 버려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원하지 않는 출생이었다는 의미입니다. 4절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고대 근동의 관습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배꼽 줄을 끊고, 물로 씻기고, 소금을 발라 정결하게 하고, 포대기로 싸 주었습니다. 이것은 갓 태어난 아이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돌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어떤 돌봄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고대 근동 지역 사람들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원하지 않는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그 아이가 출생하면 이렇게 밖에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버려지는데 지금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버려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근본적인 처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어떤 자격도, 어떤 배경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상태입니다. 5절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돌보는커녕 불쌍히 여기는 사람도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버려진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들판에 버려진다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사형 선고와 같습니다. 짐승에게 먹히거나, 추위에 얼어 죽거나,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으면 그대로 죽음입니다.
“아무도 소중히 여기지 않음이었느니라.” 이 말씀이 우리 마음에 아프게 다가옵니다. 아무도 이 아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 아이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세상 누구도 이 아이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이 태어난 인간의 실존적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는 본래 하나님 앞에 이런 버려진 존재였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보면 이런 존재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런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돌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6절을 보면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하나님이 이 버려진 아이 곁을 지나가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살아있으라! 살아있으라!” 이말씀에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생명에게, 아무도 돌보지 않은 존재에게, 하나님이 친히 “살아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아있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데
수치를 가려 주셨습니다. 8절을 보면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이 옷으로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어 주시는 것입니다. 4-7절까지를 보면
16: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16:5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16: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16:7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이렇게 철저하게 버려져서 벌거벗은 채로 있다고 말씀하고 8절에서 하나님께서 옷으로 덮어 주셔서 벌거벗은 것을 가려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것을 덮어주신다는 말은 수치를 가려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인해서 수치가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얼마나 추악한 존재인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결한 세마포 옷으로 우리의 모든 추함을 덮어 주시고 의로운 자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수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드러낼 수 없는 상처, 말하기 부끄러운 죄, 감출 수밖에 없는 과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수치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수치를 친히 옷자락으로 덮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 덮어주시는 은혜입니다.
가려주신 하나님은 물로 씻어 주시고, 기름을 발라주십니다. 9절을 보면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태어나자마자 세상에 버려진 아이가 옷도 입지 않은 채로 광야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태어날 때의 피도 아직 씻겨지지 않았고 광야에서의 상처로 인해서 온몸이 피투성이인 상태인데 물로 그 몸에 묻은 피를 씻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더러움이 깨끗하게 씻겨주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들은 죄악과 함께 우리의 상처 받은 영혼과 육체의 치유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맑은 물과 같이 모든것을 깨끗하게 씻는 역사를 이루시는 보혈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죄악은 물론이고 우리의 모든 질병과 약함과 상처 받은 심령을 깨끗하게 씻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치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모든것이 깨끗하게 씻김을 받고 치유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깨끗하게 씻기고 나서 기름을 발라 주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 강림 후에 베드로 사도가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베드로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매 베드로 사도가 그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과 씻김을 받게 되고 그렇게 씻겨진 영혼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돌보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치유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깨끗하게 씻겨주시고 기름을 발라주고 영화를 입혀주셨습니다. 10-14절을 보면
16:10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16:11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16:12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16:13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16:14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들판에 버려져 피투성이로 뒹굴던 아이가 이제 면류관을 쓰고 왕비처럼 아름답게 되었습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모든 영화는 “내가 네게 입힌 영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은 이스라엘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입혀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영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우리가 구원받은 것, 이 모든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주신 영광입니다. 우리는 본래 들판에 버려진 존재였으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을 입혀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3. 언약 백성으로 삼아주셨다.
16장 중반부에서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입힌 여인이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입혀주신 영광을 가지고 이방의 신들 앞에 창녀처럼 몸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것을 우상 숭배에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인간의 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그냥 보고 계실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죄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예루살렘은 무너지며,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에게 임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심판 선언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심판을 넘어서 은혜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약하여 내게 속하게 하였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으로 돌아가서 보면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수치를 가려 주신 후에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단순히 도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언약을 맺으셨고 “너는 내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언약(בְּרִית, 베리트)은 히브리어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맹세를 동반한 구속력 있는 관계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걸고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버려진 존재에게 “너는 내 것이다.”라고 선언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이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60-61절을 보면
16:60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16:61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이것은 정말 놀라운 선언입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입혀주신 영광을 우상에게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것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기억하겠다.”
이스라엘이 잊었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뜨렸어도,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언약보다 더 강한 언약, 결코 깨어질 수 없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새 언약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새 언약은 율법 돌판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마음 판에 새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잔을 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에스겔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2-63절을 보면
16: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16:63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는 목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리라” 이 표현은 에스겔서 의 핵심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하나님의 회복도, 모두 하나의 목적인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리라” 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용서가 옵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회개하고, 그 후에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그 용서를 경험한 후에, 이스라엘은 비로소 “기억하고 부끄러워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경험한 사람이 진정한 부끄러움과 참된 회개에 이르게 됩니다.
그 결과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자기 의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자기 공로를 말하지 못합니다. 그저 감사와 경배만이 남을 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은혜의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본래 버려진 존재였습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돌보지 않으며, 들판에 피투성이로 버려진 아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곁을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아있으라!”
하나님은 우리의 수치를 덮어 주셨습니다. 피로 씻어 주시고 기름을 발라 주셨습니다. 영광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다.” 우리가 그 언약을 저버리고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 언약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심판 뒤에 은혜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 언약이 있습니다. 용서가 있습니다. 회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증언하는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삶의 자리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