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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예배 설교

새로운 가지(2026년 6월 17일 수요일 설교)

작성자[참빛세상] 페트라|작성시간26.06.17|조회수24 목록 댓글 0

새로운 가지(2026617일 수요일 설교)

성경 : 에스겔 17:1-24(구약 1174)

 

영국 더 햄 유니버시티와 세인트존스 칼리지가 영국 젊은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촌스럽다’, ‘시대에 뒤떨어졌다’, ‘지루하다고 대답했습니다.

 

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고 답했습니다. 62%가 탕자의 비유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으며, 40%는 동방박사가 예수님의 탄생 때 황금과 유향, 몰약을 가져온 데에서 비롯된 성탄 선물의 전통도 알지 못했습니다.

 

절반 가까이가 삼손과 들릴라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고, 3분의 1가량이 오병이어 기적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95%가 십계명을 거의 알지 못했고, 그중 16%는 십계명 가운데 단 하나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을 선박 이름으로 알고 있거나, 사자의 소굴에 던져져 살아남은 사람을 라이언 킹이라고 답한 젊은이도 있었습니다. 기독교 국가로 알려진 영국의 상황이 이렇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403598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 만이 사는 길이고 말씀을 의지하는 것만이 복된 삶의 길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16장에서 우리는 참으로 충격적이면서도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버려진 아이, 아무도 돌보지 않아 들판에 내던져진 아이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버려진 아이는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 곁에 지나가시다가 "살라" 하고 명하셨고, 때가 되어 친히 언약을 세우시고, 세마포를 입히시고, 패물을 달아주시며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음행하며 타락하였고, 하나님은 심판을 선고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16장의 마지막, 59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다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영원한 언약을 네게 세우리라."

 

심판 가운데서도 언약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16장의 결론이었습니다.

 

오늘 17장은 그 흐름 위에서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2절에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수수께끼는 חִידָה(히다), 비유는 מָשָׁל(마샬)입니다.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일 때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깊이 통찰하게 하는 예언적 비유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읽을 때 비유의 표면과, 그 비유가 가리키는 역사적 현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17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면

첫째(110), 독수리가 백향목 가지를 꺾어 옮기고, 또 다른 독수리를 향해 뻗어나가는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이것은 바벨론에 의해 끌려간 여호야긴 왕과, 바벨론의 그늘 아래 심겨졌다가 애굽에 손을 뻗은 시드기야 왕의 이야기입니다.

 

둘째(1121), 하나님은 이 비유를 직접 해설하시면서 언약을 배반한 시드기야에게 반드시 심판이 임할 것을 선언하십니다.

 

셋째(2224),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강대국이 옮겨 심은 가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꺾어 심으실 새로운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지는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겨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 온 들짐승과 새들이 거하는 아름다운 나무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 부분을 차례로 살피면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시고, 그러나 마침내 새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새 가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독수리가 옮겨 심은 백향목 가지

1-2절을 보면

17: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에서 수수께끼와 비유로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독수리(강대국)에 의해 옮겨 심겨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5)

17: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

17:4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인의 성읍에 두고

17:5 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비유는 큰 독수리로 시작합니다.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3) 이 독수리에 대해서 12절에서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 꼭대기를 꺾었다는 것은, 유다 왕국의 왕족 중에서 왕을 끌어냈다는 뜻입니다. 이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주전 597,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여호야긴 왕과 그 어머니, 왕실 신하들, 그리고 능숙한 장인들까지 바벨론으로 끌어갔습니다(왕하 24:1016).

 

5절을 보면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느부갓네살은 자기 입맛에 맞는 왕을 세웠습니다. 그가 바로 시드기야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시드기야는 바벨론이 심은 '포도나무'였습니다. 좋은 땅, 물 가에 심겨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비유에서 심겨진 것은 '백향목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고귀한 나무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달랐습니다.

 

역사 속에서 강대국들은 늘 자기들의 손으로 왕을 세우고 세계 질서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배후에서 역사를 운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아무리 큰 독수리처럼 강해 보여도, 그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백향목 가지인 줄 알았는데 포도나무 가지였다.고 말씀하십니다. 58절을 보면

17:5 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17: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

17: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17: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

 

6절을 공동 번역으로 보면 움이 돋고 보니, 그것은 포도나무였다. 뿌리를 땅에 박고 낮게 옆으로 퍼지며 덩굴은 그 독수리에게로 뻗었다. 포도덩굴이 되어 가지가 뻗으며 움이 돋았다.”

 

백향목인 줄 알았는데 자라고 보니 포도나무였다는 것입니다. 백향목을 위로 뻗어 올라가는데 이 포도나무는 땅에서 위를 향해 크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땅을 기어다니는 낮은 포도나무입니다. 바벨론의 통치 아래서 시드기야는 굴욕적인 복종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독립된 왕이 아니라 바벨론의 에 복종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7절에서 또 다른 독수리가 등장합니다.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이 두 번째 독수리는 애굽입니다.(15)

 

시드기야는 바벨론과의 언약 관계에 있으면서도 그 언약을 배반하고 애굽에 도움을 구하러 손을 뻗었습니다. 무엇을 바랬는지 8절은 말합니다.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 더 좋은 환경, 더 큰 세력, 자기를 더 높일 수 있는 강자를 찾아간 것입니다.

 

사람은 약속을 하고도, 더 유리해 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언약보다 이익을 앞세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세상의 도움을 먼저 찾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든 순간,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도움을 먼저 찾으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결국은 두둑에서 마르리라고 말씀합니다. 910절을 보면

17:9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열매를 따며 그 나무가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가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17:10 볼지어다 그것이 심어졌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에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9절과 10절은 선고입니다. "그것이 능히 번성하겠느냐 그 뻗은 뿌리가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것이 결실하겠느냐 시들지 아니하겠느냐." 대답은 명백합니다. 마릅니다. 뽑힙니다. 동풍이 불면 시들어 버립니다.

 

"두둑"은 심겨진 밭이랑을 뜻합니다. 좋은 땅에 심겨진 것처럼 보였지만, 바벨론도 아니고 애굽도 아닌, 두 강대국 사이에서 결국 그 포도나무는 말라 버릴 것입니다. 역사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주전 587,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고, 그의 아들들은 그의 눈앞에서 처형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힘에 기댄 모든 것은 결국 마른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번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뿌리가 세상에 내려져 있는 한, 그것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같은 시대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인간의 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떠난 자리에는 마름과 저주가 따릅니다.

 

2. 내 언약을 배반하면 죄를 머리에 돌리리라

하나님은 시드기야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려 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지켜 능히 서게 하려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을 보면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거늘

 

하나님은 비유의 의미를 직설적으로 풀어주십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과 조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맹세했습니다(대하 36:13 또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그의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였으나 그가 왕을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14절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이 유다를 낮추어 포도나무처럼 만들었지만,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이방 왕과 맺은 언약일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이기에 하나님은 시드기야가 그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히 수용하고 언약을 지켰더라면 유다는 멸망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약속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세상 속에서 맺은 약속, 직장과 가정에서의 작은 신의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이 걸려 있다면 목숨처럼 지켜내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결국 애굽의 도움을 구하므로 형통하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드기야는 15절에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세 번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형통하겠느냐? 피하겠느냐? 피하겠느냐? 모두 부정의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입니다. 형통하지 못합니다. 피하지 못합니다.

 

16절을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여기서 "내 삶을 두고"는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맹세하시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강한 형태의 맹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십니다. 언약을 배반하는 것을 하나님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17절에서는 애굽의 군사적 도움이 실질적으로 무익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애굽의 군대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강대국을 믿었지만, 그 강대국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기력합니다. 시드기야는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행하고 세상의 강대국에 손을 벌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행한 자가 어찌 피하겠느냐?" 하시며 결코 형통하지 못할 것을 선언하십니다. 애굽의 바로가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올지라도,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시드기야를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피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8절은 시드기야의 죄를 명확히 정리합니다. "그가 이미 손을 내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손으로 약속하고도"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시드기야는 알면서 배반했습니다. 모르고 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약속하고, 서명하고, 맹세하고 나서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죄는 더욱 무겁습니다.

 

1920절에서 하나님은 그 심판을 직접 내리십니다.

17:19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17:20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

 

시드기야가 배반한 맹세는 느부갓네살에게 한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내 맹세", "내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운 모든 약속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말, 우리의 약속, 우리의 계약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으십니다.

 

21절은 그 결과를 말합니다.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군대가 칼에 쓰러지고, 남은 자들은 사방에 흩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심판의 목적은 멸망이 아닙니다.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언약이 무엇인지, 배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난과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알게 하시고, 돌아오게 하시려 합니다.

 

3. 새 가지를 높고 우뚝한 곳에 심으리라

하나님은 17장에서 다시 희망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새 가지를 심으시는데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 아름답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극적인 전환을 이룹니다. 22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앞 부분에서는 "독수리"가 가지를 꺾어 심었습니다. 이것은 강대국이 역사를 만들어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22절에서 주어가 바뀝니다. "내가 심으리라." 하나님께서 친히 심으십니다. 강대국이 심은 것은 말라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으시는 것은 다릅니다.

 

"연한 가지"는 히브리어로 רַךְ(라크)인데 "부드럽다", "연약하다"는 뜻입니다. 강하고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연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사 53:2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런데 이 연한 가지가 23절에 보면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연한 가지가 자라 아름다운 백향목이 됩니다. 새들이 깃들이고, 그늘 아래 삽니다. 이 가지가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가장 연한 가지처럼 연약해 보였던 십자가의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백향목이 되셨습니다.

 

그 가지가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어,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게" 될 것입니다(2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아래서 열방의 모든 족속과 상처 입은 영혼들이 참된 안식과 치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온전한 복음의 능력입니다.

 

나님은 높이시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24절을 보면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낮추신다는 말은 바벨론도, 애굽도, 강대국도 하나님 앞에서는 낮아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낮은 나무를 높이신니다는 것은 버려진 아이 같던 이스라엘, 연한 가지 같은 메시아,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높이신다는 말씀입니다.

 

"푸른 나무를 말리고" 겉으로는 충만하고 번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 없이 서 있는 나무는 마르게 하십니다.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고" 이미 죽은 것 같은 마른 나무,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새 생명을 주십니다.

 

지금 우리는 때로 내가 "마른 나무" 같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 같고, 믿음이 메말라 가는 것 같고, 삶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른나무를 무성하게 하시고, 낮은 나무를 높이십니다. 이 역전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신다.’ 고 말씀합니다. 24절을 다시 보면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나 여호와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행했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십니다. 히브리어에서 동사의 완료형은 확실한 미래를 현재 완료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반드시 이룰 것이므로 이미 이룬 것처럼 말한다"는 것입니다.

 

17장 전체를 통해 하나님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새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오늘 우리는 눈앞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세상의 애굽을 향해 뿌리를 뻗으려는 것은 아닌지를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교만과 인본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심으신 새 가지, 영광스러운 백향목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 바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언약의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합시다.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날마다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신 그 전능하신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우리 참빛교회 위에 풍성한 생명의 열매로 맺혀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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