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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기도회 설교

성도의 삶의 터전(6월 12일 금요기도회 설교)

작성자[참빛세상] 페트라|작성시간26.06.12|조회수32 목록 댓글 0

성도의 삶의 터전(612일 금요기도회 설교)

본문 : 누가복음 6:17-26(신약 98)

 

집을 지을 때 중요한 것은 터전입니다. 집을 짓는데 모래 위에 집을 짓게 되면 강한 바람과 많은 비가 오면 무너지기 쉽지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은 건축 기술이 많이 발달을 해서 모래 위에 집을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축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집을 지을 때 어디에 지을 것인가는 중요합니다.

 

집을 짓는다거나 아니면 집을 살 때는 어떤 점을 고려하게 되는가 하면 내가 살아갈 삶의 터전인가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서 너무 먼 곳에 집을 짓거나 집을 사지는 않게 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생활 터전과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게 됩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과 상관없이 지금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일 즉 생활 터전에 삶의 터전을 준비하게 되고 머물고 살아가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농촌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학교도 문을 닫고 점점 빈집들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에서 인구 분산정책을 위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수도권에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 다시 지방의 도시나 시골로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새벽 기도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석촌사거리를 지날 때 출근 버스들이 여러 대 출근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새벽 6시부터 출근 버스를 타고 출발을 합니다. 한 때 세종 정부청사 출퇴근 버스를 없애겠다고 한 것 같은데 서울에 터전을 잡은 사람들이 이사를 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터전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 신앙의 영적 터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영적으로 많은 혼란을 겪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더 견고하게 우리의 삶의 터전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영적 삶의 터전인 성도의 터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터전 위에 우리의 믿음을 지켜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나의 삶의 터전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터전을 재물에 두기도 하고, 권력에 두기도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모래 위의 집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 누가복음 617-26절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수많은 무리 앞에서 선포하신 복과 화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성도가 어디에 삶의 터전을 두어야 하는지를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의 삶의 터전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성도의 삶의 터전은 주님 안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견고해집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살기 위해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예수님께서 산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 오셔서 평지에 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 오셔서 평지에 서시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다는데 유대 사방에서, 예루살렘에서, 두로와 시돈 해안 먼 곳에서까지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가까운 곳에서도 오고 먼 곳에서도 왔습니다.

 

성도의 삶의 첫 번째 터전은 바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그리고 내가 오는 자는 내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뿐만 아니라 언제나 주님께 나아와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세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한 해결책은 결코 영원하지 않고 또한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의 삶의 터전은 언제나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인은 73:28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금요 기도회 시간도 주님께 나아가는 귀한 걸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18절을 보면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17절에 병 고침을 받으려고주님께 나아왔다고 기록했는데 예수님은 병 고침을 받으려고 온 사람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육신의 질병을 가진 자들이 나음을 받고, 귀신 들려 괴로움을 당하던 자들도 회복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이 주님 안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주님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고침 받아야 할 영역이 있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 지쳐버린 영혼, 무너진 관계, 실패로 얼룩진 삶,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나아올 때 그 모든 것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이사야 61:1절을 보면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우리의 삶의 터전이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덧입어 살아가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주님께 나아온 자들에게는 능력이 임했습니다. 이 능력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의 삶의 터전이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 자신의 힘이 얼마나 부족한지 절감하게 됩니다.

 

금요 기도회의 자리는 그 주님의 능력을 덧입는 자리입니다. 한 주간의 수고로 지치고 연약해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와 새 힘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이사야 40:31절의 말씀처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라는 약속이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이루어지줄 믿습니다..

 

2. 성도의 삶의 터전은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세상의 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 나라의 참된 복을 선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20절을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 빈궁한 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더 깊은 의미로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삶의 터전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에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고, 내 지혜와 내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교만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러나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임합니다.

 

잠언 3:5-6절을 보면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우리 삶의 터전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친히 인도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주린 자, 지금 우는 자에게 복이 임합니다. 이것은 현재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잃지 않는 자들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은 세상의 것들보다 하나님을 더욱 갈망하는 것입니다. 시편 42:1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라고 고백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찾고 찾아야 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또는 눈물이 흐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눈물이 웃음이 되고, 우리의 영적 갈망이 은혜가 되고, 한숨이 찬송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금요 기도회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갈망하여 이 자리에 나온 저와 여러분을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성도는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2-23절을 보면

6: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우리가 다 경험했겠지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우리를 반드시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주님의 이름으로 인해 오해받고 미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뛰놀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3-4절을 보면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인내하는 삶이 우리 삶의 터전이 될 때, 하나님의 온전한 역사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3.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화 있을진저라는 경고의 말씀을 통해, 성도가 버려야 할 세속적인 가치관을 지적하십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물질보다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24절을 보면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 복에 대해 말씀하셨다면, 이제는 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부요한 자에게 화가 있는 이유는 그들이 이미 자신의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물질에서 위로와 만족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물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물질이 우리의 삶의 터전이 되고, 물질이 우리의 신이 될 때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사는 성도는 물질의 종이 아니라 물질의 청지기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하며, 하나님을 첫 번째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현재의 만족보다 영적인 만족을 누려야 합니다. 25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배부른 자, 지금 웃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현재의 육신적, 세상적 만족에 안주하여 영적인 목마름을 잃어버린 상태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으로 이미 배가 부르면 영적인 배고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세상의 웃음과 쾌락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사라집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사는 성도는 현재의 세상적 만족을 넘어서 영원한 영적 만족을 추구합니다.

 

요한복음 4:14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 갈증을 해결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 시간이 영적인 목마름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그 성령의 생수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이 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진리를 타협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1:10절에서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사는 성도는 사람의 인정과 칭찬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외면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듣는 것이 세상의 어떤 칭찬보다 귀합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여기에 삶의 터전을 두라고 손짓합니다. 재물, 명예, 권력, 쾌락,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반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금요 기도회의 밤이 우리의 삶의 터전을 다시 한번 주님 위에 단단히 세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창수가 나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주님 안에 삶의 터전을 두는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이 오직 주님 안에 있으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 되고,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이 세상을 이겨나가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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