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설핏해지고 스산한 저녁 공기가 우리의 목덜미를 적실 때,
문득 북받치는 서러움 때문에 울지 않아도 되었고, 어머니가 언제쯤 돌아올 것인가를 점치면서
아우와 입씨름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 초조한 시간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상표 딱지를 가지고 게임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꺽지 않는다> 김주영 소설 36쪽
이번에는 설핏해지다...설핏이란 단어를 건져봅니다.
이런 말은 자주 쓰시나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문장 속에서나, 대화 가운데 가끔 들을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해요.
사전에는 이렇게 설명해놓았습니다. 의미따라 한번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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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밖으로 나온 것은 가을의 짧은 나절의 해가 설핏 기운때였다. 출처 : 한승원, 해일
• 해가 한쪽으로 설핏 기울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몹시 무더웠다.
• 초가을의 해가 응달 뒷산 머리에 설핏 걸렸다. 출처 : 한승원, 해일
• 홍이 눈앞에 장이 모습이 설핏 지나갔다. 순간 홍이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출처 : 박경리, 토지
위에서처럼 부사로만 쓰이는 경우 이외에도 형용사로도 쓰입니다.
설핏하다처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의 향수의 앞부분입니다.(어진내가 매우 좋아하는 시)
이 시의 문맥 속에서 '해설피'는
어원적으로는 '해가 설핏하다' 에서 온 말이랍니다.
'설핏하다'는 "해가 져서 밝은 기운이 약하다"는 뜻.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이라는 싯구에서 해설피는
시의 문맥 상에서 해가 설핏한 분위기 즉 약간 어둡고 낮은 음색으로라는 뜻.
실제로 해가 설핏 기우는 정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헤프고 슬프게'라는 뜻도 아니랍니다.
'느리게 어슬프게'라고 해석하기도 하는군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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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책보는콩쥐 작성시간 09.07.31 저도 노래방가고 싶어요..데려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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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왜요? 작성시간 09.08.01 얼핏 설핏.... 거의 그렇게 쓰고 있나봐요. 어진내님은 여전히 공붓방에서 바쁘시고 ㅎㅎ 고맙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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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델 작성시간 09.08.02 설핏..제 가슴속에는 참 눈물겹고 아스라한 기억으로 떠오르는 단어인데요이..설핏..잠들어 깨어나 보면 아무도 없고..해가 설핏..기울고 나면 눈물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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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향목 작성시간 09.08.14 설핏..참 고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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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누가 작성시간 09.09.17 설핏, 해설피. 우리말의 매력입니다. 표현의 아름다움의 극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