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거위와 보낸 일년 <한문화>
저자/콘라트 로렌츠 Konrad Lorenz (1903~1989)
이 책을 지은 콘라트 로렌츠 박사는 오스트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현대 동물행동학의 선구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솔로몬의 반지><현대 문명이 범한 여덟 가지 죄악><공격성에 관하여> 등이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은바 있다. 그는 니콜라스 틴버겐, 칼 폰 프리쉬와 함께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는데, 이른바 ‘각인’ 행동의 매커니즘을 밝힘으로써 행동의 유전과 진화를 구명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수, 불던 행동학 연구소와 막스 플랑크 행동생리학 연구소 소장, 뮌헨 대학교수등을 역임했다.
사진/시빌레 칼라스와 클라우스 칼라스
콘라트 로렌츠 박사와 함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야생거위를 연구한 과학자 부부로, 야생 거위들의 생생한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야생거위의 사회는 놀랍도록 인간과 비슷한 가정생활을 영위한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목소리로 친밀함을 갖고 태어나 젖을 빨면서 엄마와 눈을 맞춰 특별한 결속력을 갖게 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야생거위도 알을 깨고 나와 각인된 사람을 엄마인냥 믿고 의지하는 특별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무엇보다 성장해 독립을 하고 있더라도 부모에게 충격적인 일(알을 잃어버리거나 새끼를 잃어버린)이 생겼을 경우 부모 곁으로 돌아와 같이 힘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했던 경우라도 배우자를 잃는 불행을 겪을 때 역시 부모 품으로 돌아와 의지를 한다는 점은 우리와 너무도 닮은 정서이다.
숫거위가 암거위 앞에서 힘과 용기를 과시하며 구애행동을 하는 ‘사랑의 인사’ 암거위는 수줍음에 외면을 몇 차례하다 차차 응답의 외침을 한다. 그 외침으로 ‘약혼’이 이루어지고 구혼의 성취감에 격정적으로 울부짖는 ‘승리의 함성’! 이 모든 것이 따뜻한 봄날 일어나는 일이다.
봄은 인간에게만 사랑의 계절이 아니라 야생에서 살아가는 거위에게도 사랑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일탈(외도 변심)을 꿈꾸는 암컷을 뺏기지 않으려 벌이는 노력은 마음이 아플 정도로 인간적이다. 하루종일 먹을 것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벌이는 신경전이 좋은 결말을 갖지 못했을 때 따라오는 상실감 당혹감 그리고 피폐함.
그리고 숫거위들이 짝짓기를 끝내고 환희의 표출로 '후희의식'을 한다는 흥미로운 점과 숫컷들 간의 동성애 관계에서 '사랑 없는 짝짓기'를 끝낸 숫컷은 동성애 관계인 숫컷에게 달음질쳐가 그들에게 '후희의식'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내내 너희들 생각만 했어'라는 식의...
알름계곡에서 머물러 지내는 거위들이 고의든 타의든 길을 잃어 헤매다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돌아오면 예전보다 잘 적응하고 잘 따른다는 점은 잠깐의 가출 후 돌아온 아이들--방황을 끝낸 아이들이 더 열심히 저력있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 같아 웃음이 나온다.
이 책은 막스 플랑크재단에서 저자 콘라트 로렌츠의 정년퇴임 무렵 저자의 고향 오스트리아에 연구소를 마련해주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은 것이다.
천혜의 자연인 알름계곡에 야생거위들이 방해받지 않고 알을 품을수 있도록 연못 몇 개를 조성하는 노력과 암반 깊은곳에서 나오는 지하수의 따뜻한 수온이 겨울에도 거위가 무리없이 지낼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춤으로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곳인데도 철새로 알려진 야생거위를 붙잡아 관찰할 수 있게되는데서 시작된다.
147장의 아름다운 사진과 사진설명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는 사진집을 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듯 하다. 특히 섬세한 청력은 살려두고 깊이 잠이 드는 모습을 담은 마지막 3장의 사진은 매우 아름답다.
그런데 읽으면서 내내 가슴 한켠이 무거웠다. 야생거위라는 의미는 무엇이고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에서 말이다.
알름계곡에서 머물고 있는 거위들이 각인의식으로 보모들을 의지해 살아가는 삶, 인간이 개입된 야생동물의 삶이 진정한 야생의 삶일까?를 생각해 본다.
지리산의 반돌이 반순이를 야생으로 유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야생의 환경을 만들고 노력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간을 너무 따른다는 것! 완전한 본성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에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대문명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인간이 야생동물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을하늘이 높아지고 바람이 스산해지면 감당하기 힘든 기운으로 하늘높이 비상해야 마땅하지, 가슴을 벅차게 했던 감정은 어디에 가버리고 없고, 금속성 소리를 내며 쐐기꼴로 비상하는 무리에 끼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일인가. 그렇게 보호 받으면 무엇하는가 그들에게서는 이미 본능은 퇴색되고 껍질만 남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