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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의 뿌리

작성자이 명(이강선 서울)|작성시간26.06.22|조회수46 목록 댓글 2

 

 

 

이른 아침,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상추를 만났다. 언덕 길 빌라 앞 네모난 화분에 심긴 그 상추는 잎사귀가 서로 겹친 채로 자라고 있었는데 연초록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대번 꽃보다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다. 끝내는 사진을 찍었다. 컴퓨터로 옮겨놓고 들여다보니 더욱 아름답다. 가장자리에 붉은 색을 띤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경계를 지은 채로 서로에게 틈을 주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틈을 준다는 것은 상대의 영역, 살아갈 권리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크라운 샤이니스는 이 영역 인정의 대표적인 예다. 우리 말로 옮기면 수관 회피인데 수관이 서로 피한다는 의미다. 수관은 나무의 꼭대기다. 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옆에 있는 나무와 겹치게 된다. 잎사귀를 양껏 펼쳐 햇빛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상대 나무에게도 그 권리를 인정해서 서로가 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피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샤이니스가 더 좋다. 샤이니스라는 건 물러난다는 의미다. 상대를 존중해 물러난다는 의미다. 배려가 듬뿍 들어 있는 단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무의 꼭대기를 사진으로 찍어보면 어떤 길이 보인다. 썰물이 되면 갯벌에 길이 보이듯이 나무끼리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물러난 틈이 길처럼 보이는 것이다. 허공에 난 길, 그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길이다. 그 길은 햇빛이 내려오는 길이다. 나무 사이에 난 저 틈을 통해서 햇빛이 내려온다. 깊은 숲에서는 나무들이 울창해 키 작은 나무는 자라지 못할 듯 싶지만 저런 식으로 나무들은 다른 나무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레드우드 숲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숲으로 빛이 내려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비로웠다. 한편으로 나무가 땅에서 수관을 통해 물을 빨아올리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었는데 나 자신의 몸에 생명력이 가득차는 느낌이었다. 또한 수백 미터까지 자라는 저 나무들이 어떻게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 궁금햇다. 그 나무들 한그루 한그루가 엄청난 공간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달랐다. 나무들은 크라운 샤이니스로 함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지능이라고는 없을 듯한 식물들이 본능을 조절해 함께 자란다는 사실은 놀랍다. 단순히 놀랍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이로운 것이다. 이 경이는 시스템에 대한 경이다. 나무의 지혜는 서로 공존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그 공존은 모든 생명에 대한 것이고 지구 전체에 대한 것이다. 생명체든 비생명체든 각자 놓여진 조건이 다를 뿐이다. 그 모든 것이 각자의 쓸모를 갖고 있다. 어느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하나가 영향을 받는다.

 

오늘날 흔해진 유해식물들, 환삼덩굴, 가시박, 그리고 미국 자라공은 다른 식물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자신만 뻗어나가기에 유해식물로 분류된 것이다. 가시박 덩굴은 다른 식물들을 타고 올라가 뒤덮어 햇빛을 받을 공간을 주지 않는다. 미국 자라공은 빽빽하게 자란다.

 

나무들은 크라운 샤이니스로 서로에게 살아갈 틈을 준다. 그 물러남은 곧 자아를 내려놓는 행위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욕망, 우위, 독점하려는 마음을 잠시 물러나게 할 때, 비로소 허공에 길이 난다.

 

루미는 자아를 내려놓는 그 자리에서 신성이 들어온다고 했다.

"오라, 자아의 뿌리 속 뿌리로."

「자아의 뿌리 속 뿌리로」/루미"

뿌리의 뿌리란 나를 넘어서는 것이다. 부모는 나의 뿌리다. 부모의 뿌리는 한 세대위의 뿌리다. 그 뿌리가 인간을 넘어서면 궁극적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환경까지 가 닿는다. 결국 지구전체로 번져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루미는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라고 한 것일 터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큰 전체의 일부인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나무들이 서로를 배려해 틈을 만들 때 햇빛이 내려오듯, 우리가 자아를 내려놓고 물러날 때 더 큰 전체 — 생명의 거대한 그물, 우주의 숨결,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영성 — 이 스며든다.

 

사진 속 초록이 새삼스럽다. 상추는 적당히 자라면 뜯어서 먹을 채소지만 자라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누구보다도 현명하다. 그렇게 작은 것들이 우리를 가르친다. 작은 것들은 결코 작지 않다. 모두의 일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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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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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가네(김천) | 작성시간 26.06.22 오랜만입니다.
    나무들의 수관회피는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그래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는 하늘이 아름답고요.
    우리 사람들이 오히려 식물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 작성자행복한걸(창원) | 작성시간 26.06.22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숭고합니다.
    예사로 보다가 한번쯤 배려하는 식물의 세계를
    생각한다면 바쁨과 초조등이 조금은 누그러질듯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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