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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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은 황금들녘에는 허수아비가 제몫을 한답시고 주인이 여름내 입었든 구멍 난 러닝에 밀집보자를 쓰고 서투른 손놀림으로 새들을 쫒고 있지만 어눌한 동작만큼이나 새들은 구석진 곳으로 모여든다. 길섶에 피었든 키 작은 구절초가 가을을 대신하고 있고 들깨와 콩을 터는 허리 굽은 노인들의 가을걷이손길이 정겹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단풍이 물들어가는 만큼이나 참새들의 식구는 늘어만 가고 산과 들의 모든 것들이 풍요롭게 다가와 나에 마음도 가을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맘때면 고구마를 캘 때입니다. 올고구마는 적당한 비와 햇살에 크고 굵어 어린애 주먹만 한 것을 바지에 슥슥 문질러 흙을 털어내고는 한입 깨물어 우두둑우두둑 씹으면 달콤하기 도하고 봄의 풋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지는 것이 이글을 쓰면서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입니다.
밭이랑을 호미질 할 때마다 땅강아지가 놀라 이리저리구멍을 찾아다느라 야단입니다. 이 녀석을 잡아 살포시 힘을 주면 굵은 앞발을 이용하여 땅 파는 것을 흉내 내어 손이 간지러워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이런 장난치는 것을 보시든 어머니는 “애야! 땅강아지가지고 장난치지 말거라, 혹여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귀머거리가 된다.” 라고 작은 생명에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구마 넝쿨은 둘둘 말아 집으로 가져와 겨우내 가마솥에 끓여 쇠죽을 끓여 주기도하고 작두에 썰어 소여물로 주기도 하였습니다. 덕분에 사랑방 구둘 방은 따끈따끈 한 것이 동무들의 집합장소가 되기도 하였지요.
이제 첫서리 내리기전까지는 콩, 수수, 기장, 조, 깨, 팥 ,조등은 아침이슬이 마르기전에 타작을 해야 합니다. 너무 마른 것을 타작하면 알갱이가 본능적으로 멀리 튀어 나가기 때문이지요.
콩 타작을 하고나면 우리어머니는 흙속에 묻혀있는 콩을 찾아내어 한 알의 알갱이를 그냥 버리는 일없이 수확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보면 특별하게까지는 아니래도 가을은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좋긴 좋은 계절입니다. 들에 나가 콩 한단을 평평한 곳에 가져와 불을 지피면 후닥닥 타버린 곳에는 익은 콩이 수북하여 모이를 먹는 새들처럼 옹기종기모여 주둥이가 시커멓게 되는 것도 모르고 콩을 주어먹었으니 말입니다.
이 가을에 나를 따라온 그림자에게도 노란단풍이 들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나 나를 따라온 성의를 봐서라도 노랗고 빨간 게 익은 색으로 변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올가을 시간은 나에게 그다지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잠꼬대 같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해서 나는 내가 뿌린 씨앗은 인연으로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어봅니다. 잘된 일이건 나쁜 일 이건 간에 나로 인해 내가 알든 모르든 간에 상처받은 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욕심인지모르지만 늘 가을을 기다리는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계절에 순응하며 나그네가 타고 다니는 바람처럼 그런 내가 조금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08.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