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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13차 대회 참가기 (2) - 뜻깊은 만남

작성자최광은|작성시간10.07.14|조회수177 목록 댓글 0




오른편에 앉아 있는 분은 Kari Polanyi Levitt, 캐나다 McGill 대학 경제학 명예교수입니다. 이렇게 소개해드리면, 누군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태반이겠지만, Karl Polanyi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그런 분입니다. 아버지의 그늘에 다소 묻힌 감이 있지만, 그녀 역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런던정경대학(LSE)을 졸업하고 이후 많은 업적을 남긴 훌륭한 경제학자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여기에 왜 왔느냐구요? 열렬한 기본소득 지지자이기 때문입니다. 1923년 비엔나에서 태어나셨으니, 올해 만으로 87세. 연세에 비해 매우 건강해 보이셨지만, 그래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부터 1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이곳 상파울루까지 먼 길을 오셨다니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물론 올해 4월 15일과 16일 양일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USBIG과 BIEN Canada(각각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 가맹된 미국과 캐나다의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주최한 기본소득 학회에서 에두아르도 수플리시 브라질 연방 상원의원을 만나 강력한 참가 요청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사실 그의 요청을 거절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아무튼 쉬는 시간에 잠시 짬을 내 행사장 바깥 쉼터에서 그녀와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버지 Karl Polanyi에 대한 이야기, <거대한 변형Great Transformation>의 한국어판 이야기,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정당한 평가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 있는 대학의 경제학과 등에서도 Karl Polanyi의 저작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이죠.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고 다소 위안의 말씀을 드렸으나, 대학에서는 어떠냐는 그녀의 질문에 역시나 캐나다와 마찬가지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대한 변형>이 한국어판이 작년에 새롭게 나왔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자신이 인세 계약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잘 알고 계셨죠. 그리고 20여년 전 해적판을 이야기하시더군요. "지금은 인세 잘 받고 있어요."라면서 웃으시기도 했고. 중국에서도 번역이 된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어떤 사람들이 그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인지 물으시더라구요. 모른다고 빠른 답변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나중에라도 좀 알려주세요. 또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널이 알려지게 된 루트도 캐물으셨습니다. 마침 곽노완 교수가 다가와서 소개해 드렸지요. 이 분이 혁혁한 공을 세운 장본인이라구요.


인자하고 푸근한 옆집 할머님 같으신 분이었습니다. 따뜻한 오후 햇살 아래 더 온기가 돌았던 대화였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좀 더 느리게 갔으면 했죠. 그 분의 다정하고 온화한 말투만큼이나.





Kari Levitt 교수가 7월 2일 대회 마지막 날 오후 특별 세션에서 발표를 하고 계신 모습입니다. 거의 40분이 넘도록 원고 없이 열강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Karl Polanyi에 대한 이야기, 나머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섞어 20세기 가족사와 경제사를 쭉 정리하신 다음,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으셨습니다. 아버지가 물론 기본소득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자신이 아버지의 사상을 유추해보면 분명 기본소득을 지지하셨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아버지를 '사회주의자'로 정의했죠. 다만,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사회주의자"였다고 했습니다. 벨라 쿤이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카롤리 정부를 전복하자 비엔나로 ㅤㅉㅗㅈ겨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아버지로서는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 당연했을 겁니다. 이날 행사를 마치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면서, 사회당  기본소득 부속강령집 영문판 <Basic Income for All and Universal Welfare>를 한 부 드렸습니다.


위의 사진 가운데는 상파울루대학 교수로 사회를 보고 계신 분입니다. 오른쪽은 독일의 Claus Offe 교수입니다. 그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죠.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직접적인 전신이니까요. 그는 이날 저녁에 있었던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총회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인준 안건을 처리하던 중 'Korean' 명칭 문제로 잠시 논란이 일자 이를 명쾌하게 정리해 주기도 했습니다. 벌언을 마치고 옆에 앉은 저를 힐끔 쳐다보시더니, "나 잘 정리한 거 맞죠?"라고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그런데, 이 총회 이야기는 다음 번에 좀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클라우스 오페 교수에 대한 이야기도 한 마디가 더 남았습니다.






보너스 사진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1986 년 벨기에 루뱅에서 열린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IEN) 창립 회의 모습인데요. 단상 가운데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분이 바로 필립 반 빠레이스 교수이고, 바로 오른쪽이 클라우스 오페 교수입니다. 꼭 24년 전 모습이지요.


다음은 Kari Levitt 교수의 발표문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그녀의 생각을 잘 요약해 보여주는 것 같아 옮겨봅니다. 기본소득은 그녀의 오랜 경제학 연구의 결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자본주의 질서의 전환은 노동의 가치,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의 가치, 그리고 자연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셈법을 요구한다. 이는 안전, 보살핌, 존중과 보호와 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들이 공식 경제학에서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제적 결정을 해야 할 때, 근원적인 가치 체계는 현실 사회에서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조응하는 것이어야 하며, 우리가 자연 환경과 이것의 진정한 한계들에 진정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 2004. “Development and Regionalism: Karl Polanyi’s Ideas and the Contemporary World System” Keynote address to Conference on Development and Regionalism: Karl Polanyi’s Ideas and the Contemporary World System. Budapest, Hungary.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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