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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저 준다는데 왜 싫다능겨?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

작성자이규홍|작성시간11.01.16|조회수80 목록 댓글 2

곧 눈발이 날릴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에도 면사무소 마당엔 군민배당금을 받으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와 이미 볼일을 마친 사람들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커피자판기 앞에 둘러서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오가는 이야기래야 군민배당금에 대한 이야기가 단연 주를 이루고 있었다. 머리가 허연 노인들도 난생 처음 받아보는 공돈이 좋은 모양이다. 처음에 군민배당금을 받고는 이거 한 번으로 그치겠거니 했는데 어김없이 한 달 만에 또 다시 돈을 받고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나는 모양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여,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긴 오네. 허허허.”

그들의 손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상품권이 쥐어져있다. 사실 그것은 상품권이 아닌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지역화폐다. 붉은색의 화폐는 군 지역 모두에서 통용되는 군郡 화폐였고 푸른색의 돈은 면단위에서만 통용되는 면面 화폐였다. 면직원이 내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아내와 자기 몫의 배당금을 받아 든 명섭씨도 두툼한 봉투를 안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왠지 모를 뿌듯함에 입 꼬리가 스리슬쩍 치켜 올라가고 있었다.

“어이, 나왔는가? 일루와, 커피 한 잔 하구 가야지.”

자판기 앞에 둘러서서 웅성거리던 사람들 중 하나가 명섭씨를 부르더니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내민다. 연일 이어진 폭설로 바깥나들이도 못하던 처지에 모처럼 만난 친구들은 담배를 나눠 피며 이 희한한 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돈을 막 풀다 우리 군이 망하는 거 아녀?”

“아따 이 사람아, 주는 돈 고맙게 받아쓰면 되는 거지, 뭐 하러 그딴 것까지 신경을 쓰고 그랴. 그런 건 군수나 행정에서 다 알아서 하는 거지. 아, 우리가 받는 돈이 배당금 아녀? 막말로 우리가 여그 살아 주니께 우리 군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우리마져 살기 힘들다고 여그를 떠나봐. 뭐가 남나. 우리는 우리 군을 지탱해 주는 대가로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거시여. 이 무식한 사람아.”

“주식회사에서 주주들헌티 배당을 주드끼 군에서 군민들헌티 배당을 주는거라자녀. 딴디로 도망 안 가고 우리 군을 잘 지켜주어서 고맙습니다, 허고 말여. 허허허”

 

이런저런 말들이 들뜬 목소리에 실려 면사무소의 작은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명섭씨는 열 올리며 이야기에 빠져있는 사람들 사이를 벗어나 농협 하나로 마트로 걸음을 옮기며 아내가 써 준 메모지를 펼쳐들었다. 메모지에는 형광등, 후라시약, 오뎅이라고 씌어있었다. 명섭씨는 거기에 담배 한 보루와 삼겹살 한 근을 더 얹어 장을 보고 차부 옆 철물점에 들러 보일러 부속 몇 가지를 산 다음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날 쓴 돈은 모두 푸른색의 면 화폐였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막걸리라도 한 잔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명섭씨가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이유는 따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명섭씨는 당장 대전에 사는 작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번에 하다 만 얘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다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라, 여기 오면 먹고 살 길이 있다’ 이 말이 그가 작은 아들에게 할 말의 전부였다. 작은 아들은 전에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지금은 비정규직 청소용역을 다니고 있었다. 변변한 직장도 없어, 집 한 칸도 없어, 게다가 주렁주렁 달린 새끼들을 데리고 도시변두리에서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작은 아들이 영 눈에 밟히던 차에 이제 작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대책도 음씨 애새끼들만 많이 까질러 놨다고 퉁을 해댔는디 그것이 아녔어, 허허.’ 명섭씨는 고만고만한 손자 녀석 세 놈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명섭씨가 처음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건 작년 초가을 무렵이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명섭씨는 물론 이웃사람들 모두는 당치도 않은 말이라며 귀담아 듣지도 않았었다. 어떻게 일도 하지 않고 매달 나라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황당하고 어이없는 그 주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돈이란 으레 ‘쎄빠지게’ 일하고 받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던가.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그런데 여기에 살고 있다는 자격 하나로, 직업이 있든 없든, 재산이 얼마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돈을 준다? 그것도 매달? 적지도 않은 일인당 20만원씩을? 에이, 누굴 놀리남? 그런데 그 황당한 일이 현실이 되었다. 벌써 석 달째 내 손에 돈이 쥐어지지 않았는가. 명섭씨와 아내 두 양주의 몫으로 40만원이다. 이제 작은 아들네 다섯 식구가 온다면 일곱 식구가 되고 그럼 이 칠에 십사, 아이고 백사십만 원의 공돈이 매달 생긴다는 건데 이거야말로 횡재가 아닌가. 게다가 앞으로 일 년간의 시험운영을 통해 기본소득의 효과가 확인되고 반응이 좋으면 30만원, 40만원까지 지급액을 올릴 수도 있다니 농촌생활도 할 만하다고 생각이 된 것이다.

 

“근디 그 돈이 다 워디서 나서 그걸 감당한대요?”

처음 기본소득 실시에 따른 군청의 공청회에서 제일 많이 나온 질문이 재원마련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민배당제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의문이 많았다. 주는 건 좋지만 왜 주는지, 우리가 그 돈을 그냥 받아도 되는 것인지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던 것이다. 시민배당제의 조속한 실행을 주장하며 공청회에 참가한 어느 대학교수의 설명은 이랬다.

“우리 군의 실 거주 인구가 이만 명이 채 안됩니다. 이만 명으로 잡고 일인당 20만 원씩이면 한 달에 40억의 재원이 필요합니다. 일 년이면 480억이 들어가는데 그 돈은 현재 통용되는 은행화폐로 지급이 되는 게 아니고 우리 군에서 발행해 우리 군내에서만 통용이 되는 지역화폐로 지급이 됩니다. 지역화폐는 순수하게 화폐의 본래 기능인 교환의 수단, 즉 물자의 이동에만 사용이 됩니다. 물건을 사고팔거나 인건비나 대금을 지불하는 데만 사용이 되는 거지요.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를 불리는 것처럼 축적의 수단으로는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군의 일 년 예산이 이천사백억 이 넘는데 그중에 군민의 소득향상이나 기본적인 복지사업에 쓰이는 각종 예산을 이리로 통합해서 쓰면 됩니다.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따로 주민소득향상을 위해 개발을 한다거나 별도의 사업을 할 필요가 줄어듭니다. 군민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 사업을 제외하고 모든 분야의 사업예산을 대폭 줄여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으로 지역화폐가 통용이 되면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따라서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도 더 다양해지리라 봅니다. 그리고 지역화폐는 우리 군의 시장과 경제가 즉시 활기를 띠며 살아나게 만드는 묘약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일자리도 당연히 늘어나겠지요. 법에 위반이 되지 않는다면 공무원들의 인건비 중 일부도 이 지역화폐로 지급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도시의 마트에서 장을 보던 사람들이 지역화폐를 들고 우리 지역의 시장으로 발길을 옮기지 않을까요? 이 소식을 들은 도시의 사람들이 우리 군으로 이사를 오지 않을까요? 아마 사오년쯤 후에는 우리 군 인구가 배로 늘어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사라져가던 학교가 아이들로 들어찰 겁니다. 인구감소문제, 교육문제, 지역경제문제, 주민소득창출문제. 이런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데 일 년에 오백 억이면 싸다고 봅니다. 아주 싸지요. 거저예요.”

 

버스에서 내리는 명섭씨의 머리위로 그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산밖에 보이지 않는 산골마을, 마을 입구에 있는 유원지덕에 한 여름철 북적이는 관광객을 빼면 젊은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버림받은 땅. 농촌과 농사, 농민들이 이처럼 홀대받았던 적이 또 있었던가. 뿌리를 뽑아버리고 가지만 무성할 있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스무날이 넘게 몰아치는 강추위와 폭설로 온 마을이 쥐죽은 듯 고요하다. 드문드문 굴뚝을 타고 오르는 가느다란 연기마저 없었다면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게다. ‘그려, 우리가 복잡한 예산문제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지. 우리가 없으면 군이 다 뭐여. 조상대대로 농촌에 살아오면서 이 땅을 지탱해 온 우리는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는 거여. 주주 없는 주식회사가 없드끼 우리가 우리 군의 주주 아니겄어? 께름칙하게 생각할 거 하나도 ?이 당당히 요구하는 게 맞지, 맞어’ 명섭씨는 거저 받는 돈에 왠지 탐탁지 않았던 제 생각을 떨치기라도 하듯 큰 소리로 중얼거리며 가슴을 쫙 펴고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자식들이 다 떠나고 두 양주만 살기에 턱없이 넓고 허전하던 집에 작은 아들네와 손자들과 함께 북적이며 살 일을 생각하니 그 또한 즐거움을 더해 발걸음이 꼭 구름 위를 딛는 듯 했다.

 

이 글은 요즘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기본소득과 시민배당제를 소재로 가상으로 꾸며본 글이다. 얼마 전 진안신문에 기본소득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반응이 별로 신통치 않았다.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들이었다. 그냥 준다는데도 공돈(?)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피부에 와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좋고 실현 가능한 제도라도 주권자인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꿈에 머물고 말 것이다. 기본소득을 국가단위로 당장 실현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을게다. 그러나 그냥 두면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를 작은 소도읍에서는 충분히 시도가 가능하리라고 여겨진다. 도시로, 서울로만 집중되는 사람들의 걸음을 고향으로, 작은 농촌으로 돌릴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고 피폐해지기만 하는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문화작업장 ‘도깨비빤쓰’ 이 규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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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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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광은 | 작성시간 11.01.16 기본소득 첫 단편이네요. 반갑습니다.
  • 작성자곽노완 | 작성시간 11.07.06 이규홍님. 기본소득 소설 한편 멋지게 쓰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많이 배웠구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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