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기본소득의 의미와 진보신당의 제안’에 대한 논평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 사회당 상임고문)
1. 기본소득의 의의와 위상
‘제안’은 기본소득을 보편적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고찰하는 좁은 관점 대신에 이행강령의 위상에서 사고하는 입장에 대한 찬성한다. 이와 같은 입장은 기본소득네트워크의 주요 부분및 사회당의 입장과 일치한다.
그럼에도 좀 더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첫째, 기본소득을 신자유주의/금융자본주의 너머의 사회로 이행하는 수단으로 사고할 것인가 또는 그러한 이행의 결과로 사고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본소득네트워크의 강남훈/곽노완과 사회당은 이행의 수단으로 사고한다. 기본소득은 사회화 등을 통한 이행의 결과로서 도입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제도의 도입을 위한 운동과 제도 도입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통해서 이행을 준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면적인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체제이행이 필수적이다. 체제이행이 전제되지 않는 전면적인 기본소득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이장규)는 관점은 기본소득을 체제이행의 결과물로서만 파악하는 듯하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조세재정혁명은 자산가치를 하락시키고 사회화에 용이한 조건을 조성하며 사회화는 지속가능한 기본소득을 보장해 준다. <조세재정혁명-기본소득 도입-자산가치 하락-사회화-지속가능한 기본소득을 위한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조건 확보>의 전체과정은 상호연관된 과정이다.
둘째, 기본소득을 보편적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축소하여 사고해서는 안 되겠지만 보편적 복지나 선별적 복지냐의 구분은 체제이행을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관점이라는 점이다. 비록 분배영역에 한정된 관점이지만 보편적 복지 개념의 전면화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사회의 선별복지에 대한 대안을 제공한다. 보편적 복지의 재원 문제 등을 전면화함으로써 금융과 생산 문제로 확장해 가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이 문제는 보편적 복지 개념의 전면화에 대한 실업부조냐 청년수당(청년기본소득)인가의 문제에서 보이는 협소함과 관련하여 아래에서 재론하겠다.
셋째,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떤 종류의 기본소득인가이고, 곧 재원문제이다. 금융자본주의/신자유주의 종식에 기여할 재원조성 방식이 아니라면 기본소득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소득운동이 금융과세, 토지보유세, 환경세 등을 꺼내 들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2. 부분기본소득
전면적인 기본소득도 2011년 홍콩, 싱가포르, 몽골, 이란에서 도입되거나 실험 중이다. 그럼에도 사회당은 선거정책 수준에서는 2010년 지자제 이후 매번 장애인, 노인, 청년에 대한 부분기본소득을 정책화하고 재원을 계상하고 금융자본주의의 종식에 기여할 수 있는 조세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 외에 공공교통요금 무상화 등도 현물기본소득의 관점에서 제안한 바 있다. 진보신당이 제안하는 부문기본소득에 대하여 전폭적으로 찬성한다. 이견이 있는 부분은 오직 청년수당(청년기본소득)인 것 같다.
3. 청년수당(청년기본소득) 도입 없이 실업부조로 해결하자는 관점에 대한 질문
진보신당 제안에서 사용되는 실업부조 개념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유럽 제도상의 동일한 개념과는 다르지만 유럽에도 비슷한 제도가 발전되어 있다. 실업부조가 없는 유럽국가는 이탈리아, 그리스, 네델란드, 벨기에 정도이다. 영불독 세 나라가 실업부조를 모두 도입하고 있다. 실업보험과는 달리 실업부조는 실업문제가 일자리 창출이나 개인의 노력에 의해 해결될 성격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일정한 인정을 뜻한다.
청년실업 문제는 국제적 현상이다. 남유럽 40% 이상, 서유럽 30% 이상의 실업율은 최근의 청년폭동의 원인이었다. 또한 신자유주의/금융자본주의 하에서 대량실업은 경제법칙이다. 노동의 매개 없이 금융적 방식의 축적, 불안정노동의 확산은 이미 사회의 내재적 법칙이 되었다. 해결방식은 일찍이 앙드레 고르가 제안했듯 실질소득 하락으로 귀결되지 않는 안전판을 확보하면서 혁명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취업기회를 확대하는 것뿐이다. 더 많이 생산하여 고용을 확충하자는 것은 시장의 한계, 자연의 한계에 부딪힌다.
실업부조든 청년수당이든 신자유주의의 불안정노동시장을 넘어서서 새로운 노동사회/활동사회로 나아가는 거시적 전망과 결합되어 논의되어야 한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서 노동시간단축/기본소득 도입/최저임금 인상의 트로이카 정책이 노동사회재구성을 위한 좌파대안으로 부상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제를 좁혀서 실업부조면 청년수당 없이도 된다는 관점에 대해 반론하자면, 실업부조는 비정규불안정 노동자에게 실업부조냐 불안정노동이냐의 선택을 강요하고 부조액수는 불안정노동으로 얻는 소득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이와 같은 선택의 곤란함은 사라진다. 물론 이는 기본소득의 장점을 설명하는 논리이겠지만, 현 상태에서 실업부조 도입에 대한 반론이 되기는 힘들다.
그런데 실업부조가 창년실업층에 대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는가는 별도의 문제이다. 실업부조냐 불안정노동이냐는 선택은 청년세대에게 가혹한 것이다. 낮은 수준의 실업부조는 지속적인 빈곤을 통제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일례로 독일의 실업부조와 하르츠IV가 그렇다. 차라리 노동소득과 기본소득을 모두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낫다. 청년수당의 경우, 청년들은 임시적으로 일자리를 가지더라도 청년수당을 받을 수 있다. 실업부조는 타겟층을 청년층으로 할 때 정치적 접근수단이 되기 어렵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독일해적당이 일약 전국 7% 수준의 지지를 받게 되듯이 점화가능성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실업부조는 정치적 준별성이 약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통합진보당 뿐만아니라 청년유니온의 김영경 대표를 영입한 민주통합당도 오래 전부터 실업부조 도입을 논의해 왔다. 새누리당이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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