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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둘째 날(17일) 전체 속기록

작성자권문석|작성시간12.03.28|조회수39 목록 댓글 1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둘째 날 전체 속기록]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둘째 날. 점령 운동을 말하다>

시간: 2012년 3월 17일(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장소: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13층 대회의실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
기록: 정영목 / 정리: 권문석

<사회 / 이택광: 문화평론가>

문화비평하는 이택광입니다.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1일 차(3월 16일)에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점령(Occupy) 운동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노하라’의 영향을 받아 스페인에서 운동이 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청년세대의 위기가 대중운동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이를 살펴보는 게 오늘의 목적인 것 같습니다. 내일은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인 걸로 아는데, 세션 구성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일단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점령 운동의 의의, 내용, 방식 등을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유리 칸토르 씨입니다. Occupy WallStreet에 참여하신 분이십니다. 점령 운동의 발전에 대해 말씀해주실 겁니다. 활동가가 오셨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론가나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관점이 아닌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다른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발표 / Yuri Cantor 유리 칸토르: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자 / 순차통역: 이상>

뉴욕에서 일어나고 있는 점령 운동을 발표할 수 있도록 초대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점령 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발전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점령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급진적 정치의 부활입니다. 70년대 흑표범당(Black Panthers, 블랙팬더)같은 그룹이 소멸했고, 그래서 이후 급진적 정치가 별로 없었는데, 점령 운동 덕분에 그것이 되살아났습니다. 점령 운동은 이런 방식으로 선거정치에 대안적인 방법을 대중화시키고 있습니다.

점령 운동의 시작은 반세계화 운동과 비슷한데, 세 가지가 다릅니다. 기한이 없고, 우선의 요구가 아닌 행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분권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이해하는 것이 점령 운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점령 운동은 지금까지 좌파가 해오던 운동과는 아주 다릅니다. 점령 운동은 무엇이 효과적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습니다. 점령 운동은 요구가 아닌 행동에 중점을 두는데, 이것은 우리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점령(점유)한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점령 운동에는 기한이 없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는데, 첫째 국가가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둘째 활동가가 운동을 접하는 방식에서 정해진 시간만이 아닌 일상을 점령하는 것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좌파는 특정 권역이나 특정 기업을 악당으로 몰아세우는 것에 집중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체제의 한 부분으로서 생활하고 있고 얼마나 체제에 복종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합니다. 99%라는 구호에는 복잡한 의미가 있는데, 계급정치를 표현하는 반면 또한 그것은 1%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점령 운동이 아주 좋은 점은 이것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지역, 공공장소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입니다. 생각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좌파는 체제의 한 부분으로서 활동해 왔습니다. 체제 밖이라 주장했지만, 지금까지의 운동은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협상된 시민불복종이라든지, 합법화된 파업이라든지, 이는 아무런 위험성도 없고 효과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운동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처음엔) 다른 시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시하고 (알아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운동이 퍼질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러자 국가는 요구가 무엇인지를 들으려고 했지만, 요구가 없다는 것을 알고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류 언론은 경찰의 보도자료를 복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탄압은 효과적인 것 같지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탄압을 시작한 이후로 실외공간에서 실내공간으로 옮겼는데요. 이것은 날씨 때문이기도 하고 사적 재산을 재점유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점령 그룹들끼리 앞으로의 운동 방향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어떤 방법으로 점령하느냐, 비폭력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여러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는 사항은, 비폭력적으로 하려면 폭력적인 사람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점령 운동은 가까운 미래에 있을 (2012년) 메이데이(5월 1일) 총파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운동을 재충전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기술과 소셜미디어(SNS)가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동체 중심의 조직운동이 있지만 다른 공동체들과 강한 연대, 함께하는 행동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메이데이 총파업이 좋은 예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사회 / 이택광: 문화평론가>

우리 점령 운동 대담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유리 칸토르 씨의 발표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여러 외신 보도를 통해 접했지만, 이런 논의가 한국에선 어렵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운동이 없죠. 운동은 해도 관심은 없습니다. 분열주의자, 돌을 던진다는 등. 정치적인 활동이 과거처럼 이루어지진 않지요. 촛불 같은 공간이 열렸을 때도, 결국 명박산성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 법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 준법투쟁에 대한 반발, 법을 준수하는 문제, 준법, 질서, 그것은 시위고 돌 던지면 시위가 아니고, 그것이 우리에게 내재하여 있었죠.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매도당하는 일 등등.

점령 운동은 다르죠. 그 운동 자체가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고, 행위 자체가 운동입니다. 정부는 해결책을 주려고 요구안을 물었는데 그것이 없자 탄압합니다. 정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요구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죠. 대상 없는 주체. 그 운동의 핵심적 양상이 점령 운동이라는 것. 점령을 아나키즘으로 말하는 개념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점령 운동이 가지고 있는 건 급진주의가 복귀하는 양상입니다. 미국은 급진운동에 대한 탄압이 무서운 나라죠. 급진운동의 복귀로서 점령 운동을 조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메이데이 총파업이 중요한 지점이 될 것입니다. 다양한 정파들이 모여서 점령 운동을 하면 좋을 듯합니다.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데, 진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자본주의를 고쳐 쓰자고 말하곤 하죠.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내부에서 나와야 하는데 외부에서 온다는 것은 서글프긴 합니다. 생태사회주의운동, 반자본주의운동, 아나키즘운동이든 원칙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목소리를 낮춰선 안 됩니다.

다음 발표는 독일 attac과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에서 활동하는 가브리엘레 슈미트 씨입니다.

<발표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 순차통역: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어제는 점령 운동과 기본소득 운동이 독일에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말했습니다. 오늘은 다음 주제로 넘어갈까 합니다.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운동의 역사는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고 그 강점을 연관시키는 데 있어 아직은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일 발표에서 점령 운동과 기본소득 운동의 관계뿐만 아니라 기본소득 운동 안에서도 각 주장의 차이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문제를 좁혀서 attac과 좌파당의 초안에 기초한 기본소득 모델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이를 좌파해방적 모델이라 명명하고 새로운 인간적인 사회의 모델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attac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찬성하고 있는데요. 특히 “모두에게 충분한” 작업그룹이 무조건적 기본소득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뒤에 팸플릿을 나눠 드릴 수 있을 텐데 attac의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온 도시 브레멘에 지역 그룹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모이고 토론회 또는 여러 가지 정보를 주는 부스를 설치하는 등의 활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그룹은 2011년 9월 12일에 기본소득을 위한 국제 행동에 참여했습니다. 공동행동연합에 우리는 교회에서 온 기본소득 그룹 등 다양한 그룹과 활동을 했는데요. 우리가 확신을 얻은 것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그룹과 협력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모두에게 충분하게”라는 그룹은 전통적인 노동 개념에 대해서 좀 더 다층적인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노동 개념은 임금을 받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개념인데요, 즉 영리노동 행위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육노동, 부모노동, 자원봉사 등의 활동은 노동개념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다른 노동개념에서 출발하는 데요. 환경운동, 정당 활동 역시 노동이라는 사고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여기저기 많이 있습니다. 이 같은 활동들은 사회에서 한 번도 보상된 적이 없고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이처럼 필수불가결한 사회적 활동이 보상받은 적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기업의 이윤을 만들어내는 활동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모든 활동에 대해서 사회가 보상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두 가지 종류의 소속을 하고 있는데요. attac과 좌파당 안의 기본소득 그룹입니다. 이 두 가지 그룹의 활동을 통해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ttac의 경우 모든 사안이 민주적인 결정에 따라 의결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저의 정당인 좌파당에는 일정한 약점이 있는데요. 저희와 같은 작업 그룹이 의결과정에서 비중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와 같은 그룹의 의결은 최종적으로 당 대회를 통해서 당 강령으로 포함될 때만 전당적으로 효력을 갖습니다. 아직 기본소득이 채택되진 않았습니다. 당의 다수파는 아직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강령으로 채택하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 아동 기본소득과 청소년 기본소득을 당 강령으로 채택한 것은 조그마한 성과입니다. 좌파당 내에 기본소득 작업 그룹과 attac의 공통점은 해방적 기본소득을 자신의 관점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방적 기본소득’이라 명명한 이유는 ‘기본소득 액수’가 발가벗은 삶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보장하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기본보장(독일의 현재 사회복지체계)과의 차이점은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가 없다는 점입니다. 고용노동에 대한 강제 없이 우리 영혼 속에 깊이 각인된 사회적인 노동에 대한 그것 말입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요구를 통해서 사회가 모든 개별 인간을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이념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경제적인 불평등은 즉각 종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사람들은 발가벗은 채 노동시장에 의존하는 것에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물질적인 곤궁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경쟁, 자본의 집중, 소비사회에 대한 의존도는 화폐적 형태로 말미암은 재분배를 통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품 형식적인 성격 때문에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자신의 것으로 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attac은 설립 초부터 시장 비판적인 입장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들의 정신적인 투쟁은 그 핵심에 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와 투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적인 존재를 결여의 행정으로 처분하는 이들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결여는 오직 그들의 이데올로기 속에서의 결여입니다. 결여는 재화가 사유화되었을 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모든 것은 만인에게 충분하도록 있습니다. 인류가 생산하는 식량은 지구 전체 인구의 두 배를 먹여 살릴 만큼 생산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이런 맥락에서 사회가 노동 강제적인 사회모델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기본소득의 핵심은 모든 인간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고 동등한 가치를 가진 구성원이라 인정하는 것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유형성을 가지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동등하고 동일한 가치를 가진 사회 구성원이란 관점 말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실현한다는 것이 사회화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 그 조건을 창출합니다. 하나의 다른 사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생산성으로 인정하는 또 다른 사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같은 도정에서 어떠한 사회에 도달할 것인가의 문제는 다수가 어떠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기본소득 논쟁을 통해서 독일에서 수면으로 올라온 논의는 노동개념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의 개념이며 도대체 부자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회적 부의 개념 말입니다. 우리는 무지막대한 상품의 집적이라는 부의 개념에 만족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자본주의적 부의 개념 말입니다. 무지막대한 상품의 집적, 그것의 거품으로서의 거대한 화폐의 집적, 이것에 대해 만족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생명기술과 핵 발전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만약 어떠한 개인도 자신의 물질적 존립에 대해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서 논의할 지평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자본 주도의 지구화에 반대하는 여러 운동이 말하는 것에서 개별 개인의 존립이 해결되면 이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고 이는 금융자본주의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합니다. 금융시장에 의해서 지구화가 추진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그것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지구화는 중립적이고 기술적인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경계 없는 가치 증식은 결국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자본주의적 부는 상품과 화폐로 축적됩니다. 그런데 바로 상품은 구체적인 필요를 충족시키죠. 화폐가 충족시키는 필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더 많은 화폐를 얻어야 한다는 필요뿐일 것입니다. 바로 화폐 운동은 여기에 참여한 개인의 의식과 전혀 관계없이 작동합니다. 부자도 충분히 박애주의적인 개인일 수 있습니다. 물론 주식시장에 있는 투자자들이 그런 식의 박애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투자자들은 화폐를 매개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화폐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금융시장의 거대 투자자들은 금융기관들입니다. 보통사람들이 가입한 보험이라든지, 연금 등이 금융시장에서 돈놀이에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당장 이와 같은 문제를 당장 지평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부여합니다. 바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의 삶이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삶이라는 문제 말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개별적인 사람들의 포지션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해방적인 운동 그룹들 상호 간의 포지션조차도 모순적이라는 것을 끄집어내게 됩니다.

attac이 항상 강조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이렇게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또 다른 세계를 실현한다는 과업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지구적인 권리에 대한 요구를 세운다고 할 때 attac의 참여자들은 그 구성원들과 논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지구적인 사회권에 대한 여러 종류의 이니셔티브(주도권)가 실현되면 많은 요구 항목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 경우 그 카탈로그는 여러 그룹의 내적인 모순을 보여주게 될 텐데요. 예컨대 생태적인 권리로부터 출발할 것인가, 아래로부터 출발할 것인가 등과 같은 모순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성장할 것이며 어떠한 경계를 설정할 것인가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생태적인 요구들이 전 지구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 말입니다. 부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중산층들도 세계 여행을 합니다. 우리가 그 여행을 그만두게 해야 할까요? 1%만이 누리고 있고 다른 모든 사람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재화에 대한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으로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기업 안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정규직과 임시직 간의 문제라든지, (고용된) 노동자와 실업자의 문제라든지, 고용된 처지의 상이성에서 생기는 갈등이라든지, 이와 같은 분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는 이민자들이 사회적 조건을 위해서 결국 저임금 지대를 창출하는 데 쓰인다는 문제 말입니다. 그 전에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몰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열과 갈등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를 대변하는 조직 간에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면에서 상호 소통이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정규직 노조와 실업자-불안정노동자의 자기 조직화로서의 단체와 생태주의 그룹과 이민자 그룹 간의 갈등 말입니다. 일단 여러 가지 그룹들이 만들어 낸 NGO와 노조와의 관계를 1차적인 분열로 볼 때, 공통의 사회적 요구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사회적 모순 속에서 매우 절실하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회적 권리란 단순히 국민국가적인 한계가 아니라 전 지구적 형태의 보편적인 요구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독일에서의 경험을 말하자면 여러 상반되는 요구가 있다는 점입니다. 노조운동은 노조운동 안에서만 머물려고 하고, 여성운동은 여성운동에만 머물려고 하고, 생태운동은 생태운동 안에서만 머물려고 합니다. 고용노동자의 경우 자신의 직장을 잃지 않으려는 요구가 중요할 것입니다. 무얼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생태적인 삶 등등은 고용 노동에 있어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고용된 일자리에 종속된 사회적 생존방식이란 제한될 수밖에 없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도 없습니다. 완전고용이란 하나의 사회에 대한 이해방식인데 그것은 매우 맹점을 가진 이해방식입니다. 50~70년대가 매우 예외적인데 그때는 80% 고용률을 자랑했습니다. 다만 그것 역시 남성의 고용이었을 뿐입니다. 여성의 고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생산성의 향상은 완전고용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부각시켰습니다. 그래서 고용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일자리를 보전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생태적이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습니다. 일자리 부족은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attac의 1차적인 관심사는 경제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이끌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이를 분명히 하자는 것입니다.

attac은 좌파당의 기본소득 그룹과 모든 상품 및 서비스 생산을 포함하여 새로운 방식의 점유 가능성에 대해 모색하고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논쟁이 어떤 방식으로 조직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 시안이 있는데 공동경제와 같은 시안들, 또는 생태적 영농 방법에 대한 모색이라든지, 그리고 좌파당의 기본소득 연방 그룹은 구체적인 실현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기본소득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액수에 있어 사회적 참여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합니다. 전면적 기본소득은 아직 소수파이지만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아동수당의 경우 500유로에 해당되는 금액을 심사 없이 부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거비용 등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최소한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참여가 가능한 액수를 지급하라는 점을 좌파당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인 모델과 대비하자면 이와 같은 문화적인 참여의 문제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attac과 좌파당의 해방적 관점이 자본주의 극복은 아니지만 그 길로 나아가는 도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용된 노동의 경우에도 그것은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금융시장은 철폐되어야 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좌파당은 금융기관의 국유화와 민주화 강령을 채택했습니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도입, 복지제도, 최저임금의 인상은 함께 갈 때에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현물형태로 지급되는 공공재는 무상으로 공유되어야 하고 관리와 경영은 민주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재원은 금융거래세 등의 35%의 금융과세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실업부조 체계는 철폐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금보험 등은 하나의 보험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좌파당에서 기본소득 그룹은 800명 정도 됩니다. 다음 당 대회에서 반드시 강령으로 채택하도록 노력 중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동 기본소득과 청소년 기본소득은 채택되었고, 다음 단계로 노인 기본소득을 채택하도록 할 것이고 점진적으로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차적인 과정은 전면적 기본소득 도입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전 지구적인 사회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좌파당 팸플릿의 한 문장을 읽는 것으로 논의를 맺고자 합니다. “지금까지의 필수적인 발전은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인간적인 삶의 기초로부터 탈취하고 또한 소비사회의 확대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해방적인 기본소득은 사회적이고 생태적이고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전체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사회 / 이택광: 문화평론가>

기본소득은 좌파가 사회적인 관계를 재구성하는, 노동과 부(富)의 개념을 재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즉 목적이 아닌 조건이라는 것이죠. 잠깐 쉬도록 하겠습니다.

<사회 / 이택광: 문화평론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앞의 두 분 발표에 대해서 질문 있으시면 해주시길 바랍니다. 유리 칸토르 씨는 OWS의 의미와 메이데이 총파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가브리엘레 슈미트 씨는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구성한다고 했을 때,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 강남훈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

청소년 기본소득이 강령으로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고요. 나이가 딱 끝나고 넘어가면 사람들이 힘들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논쟁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답변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16세까지 아동 기본소득을 500유로 지급하는 것을 강령으로 채택했습니다. 16세가 지나면 한 푼도 못 받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아직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집권하면 말이 나오겠죠. 아직 강령 단계니까요. 그런데 정작 16세 이전에 기본소득이 실현되었다고 치면 전면적인 기본소득의 실현이 임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가 똑같은 소득을 받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납득하게 될 것입니다.

<질문>

(영어) 68혁명 이후로 운동이 일시적인 축제같이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답변 / Yuri Cantor 유리 칸토르: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자>

해결책을 드릴 순 없을 것 같고, 점령 운동은 계속적으로 배우는 운동입니다. 정해진 것이 아니지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생각해내고, 기존의 총회 같은 방법을 넘어서 파업을 준비 중이고, 결과가 어떻든 보고 배울 수 있는 점이 있겠죠. 운동이 성공적일지 아닐지는 모릅니다. 성공적이길 바랄 뿐입니다. 지금 존재하는 기술과 인터넷 등이 여러 지역의 운동을 연대시키고 각 운동을 여러 곳에서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 / 이택광: 문화평론가>

이 질문은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이긴 합니다(웃음). 지젝(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이 말한 것처럼, 진리적 주체가 필요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인정되긴 하는데, 매개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여하간 이런 논의가 정치철학에선 논의가 계속되고 있죠. 유리 칸토르 씨가 맞는 말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웃음)?

<질문>

기본소득의 사회 의제화 정도를 더 듣고 싶습니다. 로드맵이 어떻게 나와 있는지...

<답변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여러 가지 상이한 복지 모델들이 있지요. 목표뿐만 아니라 실현전략에 있어서도 다들 다릅니다. 내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몇몇 주에서는 (좌파당이) 집권당입니다. 독일은 연방국가니까요. 16개 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주가 지방정부를 가지고 있는데, 많은 정부에서 좌파당은 집권당입니다. 브레멘 주는 5.6%를 받아서 원내진출을 한 정도입니다. 과거 동독 지역의 주에서는 꽤 큰 역할을 합니다. 10~25% 가량을 받고 있고 집권당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요. 기본소득과 관련한 토론은 당내에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회 / 이택광: 문화평론가>

좌파당의 현실과 영향력,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에 대한 간략한 답변을 주셨고요. 자세한 것은 내일이라고 합니다. 독일 해적당 요하네스 포나더 씨의 발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발표 / Johannes Ponader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 순차통역: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어제는 해적당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해적당 내에서 기본소득이 담론을 형성하는지 어제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해적당과 점령 운동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화혁명적인 요소, 인터넷을 통해서 어떻게 이 운동이 확산되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해적당과 점령 운동은 매우 비슷합니다. 이는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둘 다 위계적인 질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둘 다 지도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도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할 뿐이고, 그 기능을 수행하는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죠. 점령 운동에서 어떤 사람들도 그 운동 전체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점령 운동은 어떤 도시에서 일어나건 매우 일반적인 연대의 후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11년 11월 2일 베를린 성명이 있었다면 그건 베를린 점령이 아니라 모든 점령의 그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저는 점령이란 말을 달리 해석합니다. 공간과 테마(주제)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해적당에서 이 원칙은 급진적으로 통용되진 않지만 대체로 합의된 편입니다.

해적당은 강령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를 지도부가 떠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지도부에 할 말이 없냐고 묻는다면, 예를 들어 유로화의 미래에 대해 묻는다면, 매우 전형적인 답변은, “우리 당은 거기에 대해서 논의한 바 없고, 내 개인적인 의견은 그따위 일에 관심이 없다.”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일인데요. 지도부에게 부여한 지침을 지도부는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처음에 기자들은 놀랍니다. 그러나 왜 의견이 없는가에 대해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약점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강점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지도부로 선출되었을 때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언론에 유포시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도부의 역할은 당의 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점령 운동도 비슷합니다. 통상적인 분류법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령 운동에 관해 요구 조건이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고 통일시킬 힘도 없다고 불평합니다. 또는 사람들이 점령 운동에 대해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데 가브리엘레 슈미트가 말한 것처럼 점령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부모 세대와 갈등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런 부분이 있겠지만, 그것이 전체의 모습으로 비춰져선 안 되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베를린 점령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점령은 다른 종류의 격언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능한 세계는 다르다.” 다른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가능한 건지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점령 운동의 성명은 그렇게 성안되었습니다. 요구 조건이 이리저리 나열되어 있고 다양합니다. 해적당의 요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적재산권에 반대한다고만 말하지, 그 실현 방식에 관해선 관심이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기본소득을 실현할 것인가?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우리에게 시간을 줘 봐. 그들은 우리를 천천히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그런 완벽한 콘셉트를 만들어 내라는 것도 무리한 요구입니다. 우리는 다른 정당에서 논의한 것을 소통해서 해결책을 갖게 될 것입니다.

베를린의 사례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교통요금을 무료로 하자고 말했는데요.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 것인가에 대해선 선거기간 동안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이러한 정치방식을 좋아하는데요.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약속을 말하지만 들어가면 실현합니다. 우리는 권력을 획득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실현하고 싶은 겁니다. 매우 중요한 실현 수단은 유머입니다.

점거하고 있을 때 우리는 경찰과 농담 따먹기를 합니다. 부자들의 데모를 업적이 많은 데모라고 놀려먹었습니다.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우리야말로 1%라고 말을 했습니다. 베를린 점령 운동은 독일 재무부 앞에 공간을 차렸습니다. 우리가 부자인 척 하면서 부자들의 데모를 조직해서 우리가 1%라고 주장했습니다. 피켓에 이렇게 썼습니다. “텐트를 철거하라!”라고. 점령하고 있는 저들은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증오심을 에너지로 끌어 썼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은 감사했는데요. 우리에게 요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욕설을 퍼부을 수 있는 구호를 외쳤고 이는 좋은 운동방식이었습니다. 여하간 유머가 중요합니다. 물론 해적당과 점령은 여러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공통점만을 말하는 겁니다. 해적당이 사람들을 줄 세울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해적당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습니다. 몇 달 지나 해적당은 사라질 것이고 그것은 잠정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오래갑니다. 다른 사람은 해적당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잘 모른다는 것 자체가 잘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과소평가하는 게 우리 입장에선 좋은 것입니다. 과대평가하는 게 오히려 나쁘죠. 녹색당 주정부 대표가 선거운동에서 우리가 사회화 되는데 1~3년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웹2.0 아시죠? 웹1.0과 2.0의 차이를 아시죠? 1.0의 시대는 정보제공자/통제자의 사이트가 있었고 정보사용자가 그것을 클릭하고 획득할 뿐이었죠. 거의 모든 대부분의 홈페이지가 그랬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출판업과 비슷했지요. 웹2.0은 완전히 다른데요. 그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무너진 시대를 말합니다. 만인은 만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가 원한다면. 이는 정보가 탈중앙적으로 모든 방향으로 흐른다는 겁니다. 포럼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위키도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매우 재밌는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그 중의 굉장히 많은 대화가 점령 행동가들이 무얼 하고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적당도 점령 운동도 모두 SNS를 통해서 일을 합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일할 수 있음을 생각지 못했죠. 중앙통제적인 방식에 익숙했습니다. 심지어는 중앙통제소가 무엇인가를 검열하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었죠. 갑자기 다른 사실에 익숙해지는 겁니다. 이제는 모두가 검열합니다. 처음엔 대단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지금은 모든 사람이 거의 매일 위키피디아(wikipedia)에 들어가서 그 정보를 바꾸려고 노력 중입니다. 위키에 글을 쓰거나 바꾸기 위해서 개인정보를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위키는 브리타니카 백과사전보다 여러 방면에서 훨씬 낫습니다. 점령 운동도 매우 비슷한 것인데요. 물론 매우 잘 구조화 되어 있을 때만 효과적이겠죠. 참여자가 그 구조를 스스로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지속적인 효과가 발생합니다. 위키는 처음에 모든 페이지가 백지였습니다. 그런데 위키에서 개념의 구조화가 생겼고 점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의견을 강요할 사람이 없다면 당연히 많은 의견이 있는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중앙적인 결론은 나옵니다. 왜 점령이 하나의 공동 요구안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만약 하나의 요구안을 가지면 점령은 끝날 겁니다. 위키를 더 이상 수정할 수 없다, 그런 경우죠. 위키가 종결되고 완성될 것이란 생각은 멍청한 것입니다. 점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점령 운동은 웹2.0의 방식으로 끝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점령 운동은 결코 정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탈중앙화 탈집중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곳에서 퇴거자가 생겨도 두 곳에서 새로 생길 것입니다. 더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정말 시간이 적군요. 점령 운동에서 인간 방송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것은 특정한 인터넷 기술과 비교할 수 있는데요. 한 사람이 정보를 제공하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전달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웹2.0시대에 성장한 젊은이들이 점령 운동에 더 빨리 적응합니다. 해적당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넷을 통해서 사회화되어 있습니다. 점령 운동이 왜 혁명이 아닌가에 대해서, 우리는 레볼루션이라 할 때, Revolution이 아닌 rEVOLution(LOVE)을 말합니다. 이런 다른 방식에 혁명이 숨어 있습니다. 매우 비슷하게 우리는 다른 방식의 소통을 말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프로그램이 없다. 다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체제를 가지고 있다.

<사회 / 이택광: 문화평론가>

문화혁명적 요소와 인터넷이 어떻게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흥미 있는 내용이 논의되었다 생각합니다.

<발표 / 박정훈: 서울점령자들, Occupy대학생운동본부>

저도 한국의 점령 운동을 대표하는 위치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독일 해적당과 좌파당의 다른 시각이 느껴지네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기 싫어하는 (멍청해 보이는) 사람과 어떻게 만나는가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여의도에서 점령 운동을 했습니다. 미국의 정치 지형과 한국의 정치 지형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한국에서만큼 광장 운동이 활발한 곳도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역동적인 운동이 진행되었는데, 이 운동을 집약할 네트워크가 없습니다. 현 정치지형에서는 민주당과 같은 보수 정당들이 수렴시켰다는 거죠. 이 지형에선 좌파적인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했을 때, 실제로 한국에서 가능케 하는 세력이 누구냐고 했을 때, 그것은 새로운 주체가 탄생해야 가능하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는 중요한 문젠데요. 전통적인 조직운동가들은 자기 정파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미나 좋아하는 진지한 대학생이 그들의 대상이었죠. 이들은 대학 내에서 다수가 아니거든요. 심지어 좌파학생운동은 노동자가 혁명의 주체이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는 오래된 방식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저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들은 점령 운동에 소극적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독일 해적당 같은 주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 자유로운 영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점령 운동의 지속가능한 기제로써 기본소득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그 운동을 위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회 / 이택광: 문화평론가>

마지막 발제자께서 정리를 해주셔서 따로 할 말이 없네요. 다만 올해 선거가 두 개 있는데, 가능한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요. 대청소가 아닌가. 기존 조직운동가들의 커밍아웃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모든 역량을 당이 빨아들이고, 그 이후에 그것이 소진되면 새로운 운동이 드러날 것이라고,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일요화가라는 개념이 있죠. 일요일만 전문적인 화가가 되는 것. 일요일만 취미생활로 운동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자기를 점령하는 것. 이것이 다음 운동의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문>

웹1.0과 2.0의 차이를 설명하셨는데, 2.0의 테제마저도 이미 한국의 젊은 세대는 늙고 구차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답변 / Johannes Ponader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그 과정은 종결되지 않고 계속 진행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문>

99% vs. 1%라고 했을 때, 99%에 애매한 세력이 동반되는 경향에 대해서, 해적당은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보이는데요.

<답변 / Yuri Cantor 유리 칸토르: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자>

점령은 열려있는 포럼이죠. 민주당 같은 세력이 들어와서 장악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은 확실한데, 해결책이 마땅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해 왔고,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게 운동이 성장하고 배우는 과정입니다.

<답변 / Johannes Ponader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베를린 경험에 따라 보충하고 싶은 건, 우리가 99%라는 구호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고, 게다가 1%에 대해서 나쁜 놈들! 이런 식의 음모론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종류의 음모론이 짙어지면 예컨대 결국 반유태주의가 될 것입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이 체제에 있어 수혜자들은 인격적 대변인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음모론이 얘기하는 동질적인 인구 집단이 아닐 것이고요. 그들은 이 게임에서 이득을 취하는 여러 상이한 인간들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게임을 이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겁니다. 1%가 이득을 취하고 99%가 손해를 보는 게임은 나쁜 게임이라는 것이고, 누가 1%인가는 문제의 초점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작동원리를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노폴리 Monopoly(독점) 게임처럼 되어선 안 됩니다. 모노폴리 게임과 비슷한 게 오늘날의 경제체제인 것입니다. 한 사람만이 게임을 이기고, 다른 모든 사람은 집니다. 이때 이긴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며, 그 게임이 나쁜 겁니다. 게임에 이긴 사람은 머리가 좋았거나 운이 좋았겠죠. 재밌는 것이, 모노폴리 게임에도 기본소득 개념이 있습니다. 허나 게임이 그대로 돌아가는 한 승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은 패배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본소득이 금융자본주의를 바꾸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아닐 수 있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태 문제는 모두가 이기거나 모두가 지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겁니다. 해적당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질문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요하네스 포나더가 말한, 점령 운동이 장소와 테마가 아닌 자신을 점령한다는 것이, 점령의 입장인가 해적당의 입장인가?

<답변 / Johannes Ponader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강령은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좋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어제 내가 유동적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가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콘셉트가 아니라, 정작 중요한 건 이런 문제의 당사자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모델을 가질 것인가이다. 해적당 강령은 사례들이라 얘기할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라는 것을 모아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질문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그런데 생각해봐라. 그런 방식으로 전체 의사를 결정한다고 할 때 개별적 의견이라는 것은 고려되지 않으며, 어떤 시점에서는 그 의견이 동결(완료)될 텐데, 그것이 개별적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는가? 결국 하나의 결론이 있을 뿐이다.

<답변 / Johannes Ponader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개별적 의견은 매우 중요하지. 개별적 의견이 없다면 공통적 의견이 있을 수 있는 거냐. 해적당은 다수결로 하긴 하는데, 그래서 2/3 다수결로 하거든? 그걸 공통적 의견이라고 하지. 점령은 더 어려워. 그건 다 동의해야 하거든. 모든 개별적인 의견을 공통적인 의견이라고 하는 게 점령 운동이야. 그래서 연대사를 한다든지 할 때, 모든 사람이 그걸 검토하는 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냐. 개별적 의견을 때려넣는 거지. 시장에게 편지를 쓸 때, 두 쪽짜리, 우리는 문장 하나하나 고치고 또 고치고 300명이 넘었는데, 300명이 모두 동의할 때까지 했어야만 했어. 그게 놀랍게도 2시간도 안 걸렸다니까. 그리고 끝났어. 매우 비중있는 편지였지.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해. 해적당은 물론 전원일치가 아닌 2/3라고 하는데, 암튼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오래 걸리진 않아.

<질문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내 질문을 잘못 이해한 거 같은데, 좌파당도 다수파가 기본소득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면에서 해적당에 비하기가 좀 그렇긴 한데, 그놈의 전원일치제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우리가 같이 하는 기본소득 연방 그룹에도 웹2.0 세대가 많이 있거든? 예전에 거기서 기본소득 콘셉트에 대해서 완전한 물건을 내놓고 그것을 위키피디아에 올렸어. 근데 그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프로그램은 공통적인 기본보장과의 타협점이었고 그걸 3주 동안 했는데, 덕분에 얼토당토않은 절충안이 나온 거지. 그리고 베를린 점령에 대해 친구의 말을 들었는데, 거기서 여성들의 발언권이 이런저런 이유로 축소되곤 했다는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

<답변 / Johannes Ponader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그 뭐 문제긴 하지. 나도 그거 문제라고 생각해. 베를린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는데, 말을 시키기도 했지. 사회자는 그 사람을 지목하면서 우선권을 줬어.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 말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말하라고 해. 시간 제약 그런 거 없지. 어쨌든 그런 방식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네.

<사회 / 이택광: 문화평론가>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장구한 토론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겠습니다!


첨부파일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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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게름 | 작성시간 12.04.30 감사합니다. 잘 정리해 주셔서 못 간 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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