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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셋째 날 전체 속기록]

작성자권문석|작성시간12.03.28|조회수84 목록 댓글 0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셋째 날 전체 속기록]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셋째 날. 기본소득, 금융자본주의ㆍ불안정노동 체제 비판과 대안 구성>

시간: 2012년 3월 18일(일요일) 오후 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장소: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13층 대회의실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
기록: 정영목 / 정리: 권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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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금융자본주의, 기본소득>

<사회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곽노완입니다. 일요일에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세션 발표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금민 운영위원장이십니다. Attac 회원이고 독일 좌파당의 기본소득 그룹 위원이신 가브리엘레 슈미트 씨입니다. 독일 해적당의 요하네스 포나더 씨입니다. 우선 금민 선생님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발표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사회당 전 대표>

금융자본주의 종식기의 점령 운동과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좌파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입니다. 큰 틀에서 관련성이 어떠한 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간략한 글입니다. 알다시피 점령 운동은 진행 중입니다. 캠프는 곳곳에서 철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흐름은 세계적입니다. 기성 미디어는 무관심합니다. 담론이 조작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 선거 운동에 활용된다던지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악마와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조작이 횡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작용들이 점령 운동의 지속성에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점령 운동은 자신의 고유한 미디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도집단은 예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전망입니다. 전통적인 운동권 시각으로 볼 때 이는 약점입니다. 하지만 점령 운동은 이를 약점에서 강점으로 활용했습니다. 지난 30년 이상 지속된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파편화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지배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그런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점령 운동의 구호는 참된 민주주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닙니다.

즉 신자유주의 종식기에 등장한 점령 운동이 개별적인 토대운동의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더 중요한 지점은 이를 통해서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점령 운동이 자신의 강점을 사회화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그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냐는 점입니다. 그렇지 못합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포섭력 등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한 사유의 경로로서 점령 운동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서 1%의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점령 운동의 대당적인 슬로건이 있었습니다. 1% vs. 99% 입니다. 금융 거점을 점령했을 때 이는 금융자본주의의 종식을 상징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성 미디어가 이를 다루었을 때 대중은 이미 1%의 부정을 받아들였습니다. 금융수탈, 이를 잊어선 안 됩니다.

점령 운동의 주체가 누구인지도 중요합니다. 그들은 불안정노동자였습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내동댕이쳐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금융수탈과 불안정노동사회. 신자유주의 체제의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점령 운동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요구 역시 두 가지 형태를 띨 것입니다. 금융수탈을 종식시킬 것, 불안정노동사회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목표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이 점령 운동의 목표에 가장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소통원칙, 새로운 개별적인 민주정치 역시 환급 가능한 대안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금융수탈의 문제입니다. 금융거래세, 생태세 등을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은 금융자본의 수탈과 약탈을 사라지게 까지는 할 수 없으나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입니다. 최저임금 등등 불안정노동사회를 종식시키는 조치를 통하여 모두가 잘 살게 되는 사회로 이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좌파당과 해적당 동지들께서도 기본소득은 이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본소득이 금융자본주의를 안락사시킬 수 있습니다. 피해 대중을 그들의 처지로부터 해방시키는 주체의 측면에 있어서도 적합합니다. 논의를 진척시켜 봅시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거의 유일한 대안입니다. 다른 대안들은 확립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본소득은 보편성과 개별성을 결합시킵니다. 양 측면을 내포합니다. 기본소득의 찬성자 중에는 두 가지 뿌리가 있습니다. 다소 공동체적인, 다소 공화적인, 다소 보편적인 것을 지향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반면 개별주의, 자유주의에서 출발하는 실질적 자유를 확보하려는 옹호자 역시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기본소득에서 통일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택을 잃은 사람들, 등록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요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각 운동은 이에 각기 다른 요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이러한 요구의 답안에 하나의 요구로 집약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토대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보편요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기본소득 운동이 점령 운동의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요? 짧은 시간에 대의민주주의가 토대민주주의로 대체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점령 운동은 종식에 기여할 유일한 운동은 아닐 것입니다. 전통적이거나 더 미래지향적인 운동이 있을 수 있고 이와 연대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논의되었던 대의제 문제와 토대민주제 문제는 기본소득을 매개로 해서 결합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시안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사회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발표를 짧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질문을 짧게 받고 두 번째 발표로 넘어가겠습니다.

<질문 / 권정임: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2페이지 마지막에 불안정노동자라 말씀하셨는데, 프레카리아트와 같은 인상을 주는데 선생님은 외연적으로 동일하다고 보시는 건가요?

<답변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사회당 전 대표>

네. 일단은요. 실업자층, 노동자층, 희망실업자층. 임금노동을 기준삼아서 보기 때문에 실제 의사가 있는가 없는가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전업주부 역시 프레카리아트에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그렇다면 청소년 세대는 프레카리아트에 속하는 겁니까?

<답변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사회당 전 대표>

16세부터 노동권을 가진 청소년의 경우, 일할 의사가 있는데 그런 직장이 없다면 프레카리아트에 속한다고 봅니다. 일할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는 주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실제로 직장이 있냐 없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프레카리아트 범위에 대해서는 차후 논의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사회당 전 대표>

최저임금 기준선을 잡는 데에서도 이는 중요한 문제이긴 합니다. 경상평균 생계비를 기준선으로 해서 최저임금을 잡아야 합니다. 임금이냐 삶이냐의 문제에서 삶을 택하는 것이 최저임금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중국의 금융자본 성장 또는 중국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사회당 전 대표>

일정한 추상성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이는 지난 30년의 자본주의를 문제 삼는다는 것인데, 일단은 여기에 국한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 미국과 유럽과 동아시아를 포괄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길 바랍니다. 또한, 금융자본주의 종식 그 자체보다는 대안의 수립 가능성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봐야 하느냐는 문제제기가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가브리엘레 슈미트 씨께서 발표하겠습니다. 좌파당 기본소득 모델을 강조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발표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 순차통역: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모두 반갑습니다. 어제와 그저께 했던 발표와 연결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여기 두 가지 자격으로 와 있습니다. 좌파당 기본소득 작업그룹 일원의 자격으로 와있고 여기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attac 일원으로 와 있습니다. 가능한 짧게 말하겠습니다.

독일에서 기본소득 논쟁이란 결국 어떤 모델이 가장 적합하냐의 문제입니다. 약 20개의 개별적인 모델이 있는데요. 이를 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이들을 타입에 따라서 분류하고 설명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본보장이 첫째입니다. 법률에 의한 기본보장이 있고 여기에 5가지 모델이 있는데, 이는 어떻게 하면 노동유인적인 효과를 창출할까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는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을 건드릴 자세가 없으며 임금노동 문제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법률이 정하고 있는 최소보장을 크게 넘어서지도 못합니다. 어떤 모델은 임금보전에 맞춰져 있는데 이는 저임금 지대를 용인하는 콤비임금(설명: 자본의 의도적인 저임금을 오히려 보완하는 소득 보장 형태) 효과를 유발할 것 같습니다. 좌파당 모델만이 예외라고 할 수 있고 다른 정당의 모델은 심사의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르츠 포(Hartz IV)’라는 유명한 공공부조 모델이 있는데, 이는 생활하기에 충분한 물질적 보장을 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Hartz IV는 항상 노동유인적인 효과를 염두에 두기 때문에, 구직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대가는 거기에 상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실업자들이 그런 구직 활동을 거부할 때, 항상 강제적인 조치가 취해집니다. 게다가 이는 가구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가구 안에서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기본보장 제도는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 까요? 그것은 임금을 하락시키는 효과뿐입니다. 왜 이런 제도가 도입되었을까요? 신자유주의 체제의 독일이 수출을 통해서 성장을 해보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는 최근에 메르켈 총리가 말한바, 금융위기를 국가재정위기라고 잘못 정의했고, 그녀는 남유럽 국가에 Hartz IV 모델을 도입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다음(둘째)은 부분적 기본소득 모델입니다. 총 6가지 모델이 있는데, 그 중 단 한 가지만 기본소득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심사 조건이 없는 모델입니다. 그런데 지급액이 실제 사회생활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는 아닙니다. 게다가 저임금지대를 조장하는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조세 문제에 있어서도 상층부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모델입니다. 부분 기본소득에서 유일한 것은 가톨릭 계열에서 내놓은 것입니다. 설령 그것을 기본소득으로 본다 하더라도 그러려면 액수를 크게 올려야 합니다.

세 번째는 무조건적 기본소득 모델입니다. 여기에는 4가지 모델이 있는데, 모두 심사과정이 없습니다. 그 중 두 가지인 독일실업자동맹의 생존수당과 좌파당 기본소득위원회의 시안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재분배를 통해서 충분한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원하고 해방적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특히 좌파당의 기본소득 모델은 가장 하층일수록 혜택을 받고 상층일수록 더 많은 책임을 지는 모델입니다.

추가적으로, 기본소득에 다양한 논의를 모르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의 다양한 모델에 직면할 때 당혹스러운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기본소득이 나온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듯 대안은 없는 게 아니라 있다는 점을 반영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모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의 위기를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주요 정당들이 해온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고용을 이룰 것이고 여러분들이 성실하기만 한다면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문화된 인력들이 썩어가고 있죠. 게다가 사람들이 바뀌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여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attac과 좌파당의 기본소득 연구는 좋은 삶은 무엇이며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토론합니다. 불안과 근심이 없어야 좋은 삶이고, 사회적 참여가 가능한 물질적 기초가 있는 삶입니다. 엊그제 제가 점령 운동을 미디어가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를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관심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토크쇼가 진행될 정도로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본가(설명: ‘베르너’라는 유명한 약국 체인의 경영자)가 등장하여 기본소득을 떠들기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의 트로이 목마입니다. 어쨌건, 이와 같은 기본소득 붐이 일어나자 모든 정당이 각각 자신들의 고유한 모델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런데 이처럼 기본소득 논쟁이 활발하지만 하나의 모델로 합의가 이뤄지면 바로 도입될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선 동의하진 못합니다. 이는 저희가 말하는 해방적 기본소득이 아닐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기본소득에 대해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 심사가 없다거나, 무조건적이라고 할 때, 대체적인 대중의 반응은, 일하지 않는 자에게 왜 돈을 주냐는 건데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계속 설득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기본소득이 도입될 때, 어떤 과정을 통해 도입될 것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라, 의회에서 합의하고 통과되는 그런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좌파당의 기본소득 모델은 제가 가져온 팸플릿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감사합니다. 통역해주신 금민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정리하자면 기본보장은 기본소득이 아니지요. 당권파들은 이를 지지하고 있고요. 좌파당 역시 당권파는 기본보장을 말하고 있지요. 세 가지 중에서 각각 다양한 모델이 세부적으로 있다는 걸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입장을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남아, 질문을 더 받도록 하겠습니다.

<보충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보충해야할 것이 있는데, 2011년 16세 이하의 청소년과 아동에 대해서 500유로를 심사와 조건 없이 지급하자는 것에 대해 좌파당이 강령으로 도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령 제일 마지막 부분에 전 인구로 확대할 것이라는 부분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아직 불충분하지만 기본소득의 확대에 대해서는 당권파들도 합의를 했다는 점입니다.

<질문 /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두 가진 질문이 있습니다. ‘충분한 기본소득’의 ‘충분함’이란 수준을 듣고 싶고요. 기본소득을 확대할 때 다른 사회보험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듣고 싶습니다.

<답변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충분한 수준은 그 기준선이 평균 경상소득이어야 합니다. 그 60%를 충분한 금액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정한 빈곤선이 평균 경상소득의 60%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험제도가 있는데, 이를 통합해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되지 않는 보험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연금제도의 경우, 일정 금액을 얹어준다는 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

재원의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 우파적 기본소득의 호소력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듣고 싶습니다.

<답변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액수가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그와 동시에 중요한 것은 재원입니다. 예컨대 1,000유로 정도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 (소득이) 5,000유로 이하는 한 푼도 내지 않는 모델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분배가 이뤄지는 모델이어야 해방적 기본소득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보수적인 정치가들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부가가치세 인상, 간접세 인상 등을 통한 모델입니다. 이 경우 기업에게 여러 조세혜택을 주는 걸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해방적 기본소득 모델에서 볼 때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 가는 논외로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존하는 공공재를 재원으로 삼는 기본소득을 하는 게 아니라 더 늘려나가며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질문>

모든 걸 철폐하고 기본소득만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있는지를 듣고 싶은 겁니다.

<답변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간접세를 재원으로 하자는 우파의 주장은 있으나, 공공 서비스를 철폐하고 기본소득만 지급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대개 지금 있는 것을 유지하자는 정신이 통용되기 때문입니다. 우파 중에서도 그런 주장을 하는 (제가 아는 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회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시간이 약간 지체되었습니다. 가브리엘레 슈미트 씨가 1,000유로 지폐 모형을 가지고 왔는데 어떤 의도이신지요?

<답변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1,000유로 지폐 모형입니다. 기본소득 선전을 위해 만든 겁니다. attac에서 만들었는데, 식당에서 이것을 먼저 보여줍니다. 그러면 놀라시는데요. 그럴 때 뒷면을 보여주면서 기본소득을 홍보합니다(웃음).

<사회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독일 해적당 요하네스 포나더 씨의 발표를 듣겠습니다.

<발표 / Johannes Ponader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 순차통역: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많은 질문을 받고 싶습니다. 제가 정확히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주제는 기본소득과 제국주의였다고 하던데,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겠습니다. 가브리엘레 슈미트 씨가 여러 대안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또 딱히 추가할 말은 없고요. 그런데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금융위기 뿐만 아니라 노동의 위기라는 점입니다. 이 시스템은 불안정합니다. 독일의 경우 여러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금융위기 문제는 유로존(Euro Zone) 위기로 알려져 있을 겁니다. 우리 수상(메르켈 총리)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돈이 별로 없어. 열심히 일해야 해. 그러니 절약해야 해.” 그런데 그게 말이 됩니까?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물건을 못 살 것이고 그러면 자본주의가 돌아가지 않을 텐데. 그런데 자본의 수익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금리 생활자들은 일하고 노동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벌고 있습니다. 점점 더. 유일한 해결책은 성장 밖에 없죠. 그래야 자본수익으로 사는 사람들은 더 많은 수익을 얻고, 노동수익으로 사는 사람들은 현행유지를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무제한적 성장이라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생태적 한계가 있는 것이니까요.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경제정책에 대해 어떠한 결정도 한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하는 것은 사견임을 반드시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여러 주 의회가 해산되었습니다. 대안을 못 내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위기야말로 기회다. 우리가 어떻게 획득해야 하는지를 말하겠습니다.

방금 몇 분 전에 제가 재미있는 글을 읽었는데요. 그것은 미국의 법률제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미국 사법제도에 따르자면 형사소송의 경우에도 검사와 당사자가 몇 년 형을 살 것인가를 합의해서 더 이상 진행을 안 한다는 점이 있다는 데요. 그런데 형사소추된 피의자들이 거부 의사를 밝히고  판사에게 재판받겠다고 하면, 미국 사법제도가 과부하에 걸려 붕괴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거래하기를 중단하고 자신의 요구를 내세울 경우 미국의 사법제도는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미국의 사법제도에만 해당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독일의 사회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독일 사회제도는 많은 납품제도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불평등한 처우를 받은 사람은 법원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법률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회제도에 관해 사람들은 말하기 시작했고, 독일 사회제도의 법 상태에 대해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면 2년 내에 그 권리를 획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제가 받아야 할 돈을 포기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받는 돈도 얼마 안 되는데 그것마저 포기하며 250유로로 살아야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하겠죠. 그런데 그럼에도 사회법원이라는 곳은 매우 하품이 나는 곳인데요. 거기에도 사람이 많이 모여듭니다. 그래서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이런저런 청구를 포기하라는 등등. 노동청 안에 있는 내부 고발자가 말해준 것인데요. 그들은 구직희망자를 몇 가지 분류로 나누고 있다고 합니다. 매우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 첫 번째 범주입니다. 그들은 쉽게 구직이 됩니다. 별로 걱정이 없죠. 두 번째 경우는 교육을 잘 받지 못한 경우, 훈련을 시킬 수밖에 없겠죠. 통계상으로 볼 때 더 많은 직업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별로 정부에게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업자 비율이 통계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야 말로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의 경우인데 스스로 자기 구제를 할 수 없는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 사람들도 별로 걱정이 없습니다. 노동청에서 알아서 대충 돈을 주고 그럽니다. 그리고 네 번째 부류가 있는데 이것은 비공식적으로 노동청 내부에만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인데요. 자신의 사회적 권리를 똑바로 알고 있고 투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직업을 얻기 힘듭니다. 그런데 노동청 내부 고발자에 따르면 이 사람들 숫자가 5% 이내라고 합니다. 만약 이 수치가 올라간다면 노동청이 힘들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소득 활동은 서로서로 힘이 되고 사회적 권리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간다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해적당은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서버를 클릭해서 몰려드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해커(hacker)와 비슷한 건데요. 서버가 작동 중지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현장에서도 일어납니다. 베를린 점령 운동의 경우, 경찰이 책임자를 요구하면, 100명이 일어나서 책임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경찰이 책임자를 찾는 걸 포기합니다. 행정비용이 크거든요.

제 친구가 사회제도에 있어 이런 일을 했습니다. 제 친구는 사회법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헌법에 호소했습니다. 독일 사회법 전부가 헌법 위반이라고 생각하고 헌법소송을 제기한 것이죠. 여러분들 제가 그 사람 홈페이지를 적을테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경찰로부터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독일 사회보장제도에 따르자면 제가 실업부조를 받으려면 관청에 가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를 편제계약이라고 하는데요. 거기에 따르자면 무엇이 의무인지, 그 의무를 충족시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는 개인별로 다 다릅니다. 제 친구가 이것을 작성할 때, 공무원은 표준계약서를 내놨습니다. 표준계약서를 내미는 공무원이 말하기를 서명하기 싫으면 당신이 생각하는 계약서를 내놓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기본소득 계약서를 내놨습니다. 거기에는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의무불이행의 경우에 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이웃의 삶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충족시켜야 한다. 즉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할 것이라는 뜻이죠. 결국 내가 아무런 일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나를 벌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들은 나를 벌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 계약서가 왔다갔다하고 있지만 노동청은 아직 서명을 하지 않았죠. 저도 실업부조를 받고 있는데, 제가 할 수 없이 노동청에 갔더니 저 역시 계약서를 써야한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그 사람의 텍스트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내가 아무런 일을 안 한다고 하면 벌을 받겠다, 대신 기본소득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는 제가 서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노동청 직원이 같이 서명하자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국가가 저에게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겠습니까? 왜 이게 가능했냐면 제가 구직희망자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독립적인 예술인인데요. 그러니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노동청과 계약을 한 것이지요. 이 문서에 다른 목적이 또 써있는데요. 이는 독립적 행위의 안정화라는 목적입니다. 저는 제 계약서의 목표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 역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제 일에 대해서 더 적게 개입하면 할수록 저의 독립성은 더 커져 가겠죠.

독일 사회법에는 이상한 조항이 있는데요. 제가 30km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우편물을 수령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베를린을 벗어나고 싶다면 관청에 가서 휴가를 신청해야 합니다. 이는 군대와 비슷한 것입니다. 노동청에 신고한다는 것은 노동청 소속의 실업자가 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노동청에 소속된 실업자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제가 어디를 가야 하는지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매일 노동청에 얘기하는 것은 웃기는 것이겠죠. 이 문제가 지속되자 노동청은 그냥 늘 휴가를 줄테니 뭐든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맺은 계약에는 의무 자체가 지워져 있습니다. 독일 공무원은 이 의무로부터 제가 해제되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 부분에 줄을 긋고 서명까지 해줬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저는 아무 의무가 없는 소위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었고 노동청에 신고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한국에도 왔습니다(웃음). 그러나 이런 게 아니었더라면 저는 결코 서명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몇 년 간 배운 것은 기본소득이란 스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돈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부분은, 기본소득이 있다면 이 돈을 어떻게 할까입니다. 마치 제가 기본소득을 받고 있다는 착각이기도 합니다. 제가 예술가로써 이리저리 다닐 때 저는 기본소득이 있다면 얼마의 강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제가 기본소득이 있다고 할 때 더 많은 사례를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기본소득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적은 강의료를 받게 될 것이라는 나쁜 처지를 생각하는 것 대신 매번 높은 요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제가 기본소득을 받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베를린으로 가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왜 제가 저 혼자만 받게 되었냐면 기본소득이 아닌 것을 제가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한다면 공무원은 더 어려움에 빠질 것이고 기본소득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 저 같은 사람이 한두 사람 있으면 그냥 가만히 놔둡니다. 그러나 그 수가 늘어난다면 정말 문제가 되겠죠. 문제가 점점 커지면 언젠가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함께 살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어떤 방식으로 싸워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회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기본소득 투사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잘 말씀 해주신 것 같습니다. 질문 받겠습니다.

<질문>

가브리엘레 슈미트 씨에게 질문하겠습니다. 기본소득과 병행해서 가야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지속가능성을 가져야 한다면, 체제를 변혁하고 성숙해져야 한다면, 혁명이 아니라 의회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독일 시민사회가 기본소득 의제나 그 주변과 함께 어떻게 성숙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그룹>

기본소득 운동과 새로운 사회운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attac은 가장 먼저 기본소득을 받아들인 편에 속합니다. 여러 활동가들도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운동으로서 여성운동, 생태운동, 탈핵운동 등이 기본소득 운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큰 틀에서 공통점은 있지만요. attac은 금융과세에 대한 시민동맹입니다.

<질문>

요하네스 포나더 씨의 운동이 가능했던 독일 정부의 매커니즘이 궁금합니다.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으면 노동청은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

<답변 / Johannes Ponader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독일 사회법은 자발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자가 어떤 조건을 이행할 것인지 합의를 해야 합니다. 이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실업부조를 못 받게 됩니다. 그러면 소송 권한이 생깁니다. 이 경우 노동청 공무원도 피곤해지죠. 이렇게 되면 협상도 해야 합니다. 이 방식으로 저 혼자 기본소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공무원도 물론 상사를 설득해야 했겠죠. 제가 예술활동으로 돈을 벌고 있고, 그 공무원은 제가 예술활동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기본소득을 주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기대를 아마도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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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기본소득 재원과 사회경제적 의의>

<사회 /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일요일에 날씨도 좋은데 실내에서 학술대회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심광현, 강남훈, 권정임 선생님의 발제를 듣겠습니다. 저는 백승호라고 합니다. 심광현 선생님부터 듣도록 하겠습니다.

<발표 /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발제자의 위치에서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토론회 질문을 하려고 하는 1부 발제자 분들께서 자리를 비우셔서 그것을 감안하여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금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의민주제와 토대민주제의 결합 가능성에 대하여, 그리고 가브리엘레 슈미트 씨도 말씀하신, 혁명이 아닌 의회를 통해서 기본소득을 실현한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싶습니다. 결합의 경우 “결합을 하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결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이러저러한 이유로 시간이 지체되고 다수자가 되기 이전에 점령 행동과 같은 직접행동은 그 정치와 유리되게 됩니다. 행동 프로세스 설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요. 극우파가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내놓는 화두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에 대응해서 독일처럼 오랜기간 동안 착실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프로세스와는 달리 한국이나 일본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확산이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도 작동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을 결합시켜야 하겠죠.

둘째, 핵심 의제가 1% 불로소득을 99%의 기본소득으로라는 구호로 압축될텐데, 문제는 99%가 단일한 99%가 아니라는 점이겠죠. 99%를 둘로 딱 자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눌 수 있을텐데, 이들은 동상이몽을 하고 있죠. 혁명은 극우파도 한다는 것을 염두에 뒀을 때 이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고 방향 전환이 필요한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어떻게 기본소득이란 매개로 결합시키느냐가 고민입니다. 앙드레 고르가 말했듯, 기본소득의 핵심은 그렇게 늘어난 돈과 자유시간인 것이죠. 대다수는 자유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즉 새로운 가치와 과업을 설계하고 부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노동 내에서 해방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왜 회장이 설계한 것을 내가 따라야 하는가? 그리고 노동의 생태적 책임, 환경오염을 하는 기업의 정규직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주 4일 노동의 경우 비경제적인 행동과 목표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이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문화. 저도 채식을 해보는 데 정말 어렵거든요. 그리고 다른 운동부분과의 연계성도 생각을 해야 하고, 덜 일하고 더 잘살기에 대한 문제 인식도 필요합니다. 저는 이를 문화사회라고 이야기하는데, 여하간 이런 과제들이 주어진다는 것이죠. 이에 대한 답이 없으면 기본소득은 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살려주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지금 500년 만에 단 한 번의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그런 식으로 써버릴 겁니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기본소득을 통해 문화적으로 엮이는 과정없이는 혁명뿐입니다. 대의제냐 대의제가 아니냐가 아니고요. 99% 내부에서 대중의 자기결정을 통한 프로세스가 없이는 기본소득은 우파적 비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기본소득의 결합 효과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강남훈 선생님의 발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발표 / 강남훈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생태세는 다들 아시는 내용인데, 이를 생태기본소득이라 이름붙인 것은 생태세로 거둬들인 세수를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는 그런 취지입니다. 이 정책의 핵심은 바로 탈핵이라는 쟁점입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에 사람들이 탈핵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를 좀 더 진전시키려면 세금을 올려야 합니다. 일본은 계획 경제와 비슷하게 전기를 절약하고 있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을 듯 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기제로서 세금을 고려해야 합니다. 생태세를 통해서 전기소비량을 줄여 핵발전에서 탈출하는 것이죠. 인터넷에 있는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 확률은 통계상 문제가 있어 다시 계산을 해봤습니다. 30개 핵발전소가 30년 간 1번이라도 사고가 날 확률이 42.5%입니다. 매우 큰 확률이죠.

어쨌든, 생태세는 소득 분배의 역진적 효과가 나타나니까 이를 누진적인 효과로 바꾸기 위해 기본소득을 연계시키는 것입니다. 현재 환경관련 조세가 GDP의 2.5% 수준인데, 여기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에너지 낭비를 조장한다는 것이고, 12조 원(정확하지 않습니다) 정도가 환경파괴적인 도로 건설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죠. 생태세를 최근에 도입한 4개 나라 중 주목할 만한 나라는 호주입니다. 집권 노동당이 녹색당 1명, 무소속 3명과 연정하여 고율의 탄소세를 도입했지요. 문제는 정부가 환경문제를 캠페인하면 대기업들이 그에 반박하는 광고를 했다는 것이죠. 특히 고용문제를 홍보하여 전체 논의에서 불리한 상황으로 몰렸습니다. “당신은 탄소세 도입으로 물가가 오르지만, 정부 보조로 결국 이득을 봅니다.”라고 알리고 있지만, 여론은 여전히 좋지 않아 야당이 탄소세를 없애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란은 휘발유 수요의 40%를 수입하고 있는데, 미국이 그것으로 경제봉쇄를 하려하자, 가격보조 정책을 폐기하고 소득보조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냈지요. 결국 3~6개월이 흐르고 IMF가 평가를 하자 에너지 소비량이 줄어 휘발유 수출국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불가피하게 2단계 경제봉쇄 혹은 전쟁을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볼리비아는 반면 실패했지요. 노동조합이 대규모 파업을 통해 정부를 굴복시켰고, 가격보조를 부활시켰지요. 물가상승을 걱정하는 대중의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이쪽은 생태세 쪽으로 가고 있는 거지요.

호주는 소득세 감면으로 이를 실현하려고 했는데, 아직은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한국은 소득세 감면으로 가선 안 됩니다. MB 정부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호주도 실패했지만, 40% 노동자가 이미 세금을 안 내고 있고, 600만 명의 노인, 실업자, 전업주부의 경우 소득세 감면 혜택도 없고(물가만 인상되지요), 그리고 소득세 감면 자체가 복잡하다는 것이죠. 그런 것보다 매달매달 통장에 돈이 지급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생태세를 부가가치세로 하는 경우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들의 저항을 봉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제품별로 세율을 다르게 매길 수 있고, 수출기업은 면세율 제도를 통해서 경쟁력이 떨어지지도 않지요. 농산물의 경우에도 생태세를 면제시키면 되니, 생태적으로 좋은 산업을 육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운송업자의 경우 생태세의 가장 큰 저항자라 할 수 있는데, 구매자로부터 부가가치세를 징수하도록 하는 조항을 강조하여 운송업자가 화물주에게 생태세를 환급받을 수 있는 쪽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무상대중교통과 함께한다면 지방의 열악한 대중교통으로 인한 자가용 수요 증가를 줄일 수 있고, 생태세에 대한 저항을 줄일 수 있겠지요. 도로 건설에 쓰이는 환경관련 세금을 무상대중교통으로 돌리고 5% 정도 더 올려 그것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수 있습니다.

생태세를 통해 전기 수요를 줄이면 핵발전소를 없앨 수 있고, 통장에 직접 돈을 넣는 경험을 쌓아나간다면,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회 /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구체적인 기본소득 실현안을 말씀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조세 마련 방안으로 생태세, 부가가치세를 제안하셨습니다. 친 복지 세력을 확산시킬 것이냐, 친 기본소득 세력을 어떻게 확산시킬 것이냐에 대한 여러 논의가 필요합니다. 당위를 넘어 정책으로 가는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권정임 선생님의 토론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발표 / 권정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탈핵 및 생태 친화적 에너지로의 이행은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켜 그 수요를 줄이는 유인동기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지적하셨고, 저는 이를 지지합니다. 자료집 148페이지부터의 내용을 읽는 것으로 제 발표를 대신하겠습니다.

생태위기의 해결을 위해 적절한 비율의 생태세를 도입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 동안 전 세계 생태진영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탈핵’ 및 ‘생태친화적 에너지체제’로의 이행이라는 전지구적으로 긴급한 과제의 해결이 에너지사용의 절약 또한 요청한다는 사실은,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켜 절약을 유도할 생태세의 실시를 더욱 절실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강남훈 선생님의 논문(이하 ‘발표논문’)에서도 언급되는 여러 이유로, 생태세의 실시는 생태적 문제의식이 대중화되어 있는 몇몇 선진국가들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생태세를 기본소득의 지급과 결합하여 시행할 것을 제안하는 발표논문은, 이처럼 절실하게 요청되는 생태세의 실시에 대한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생태기본소득의 ‘근거’ 제시에서 구체적 시행형태, 나아가 맹아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지역 간의 불평등 문제의 조절 및 생태친화적인 에너지체제로의 이행에 대한 전망까지 포괄함으로써, 이 논문의 부제가 의도하는 점, 곧 탈핵과 생태적 경제의 ‘출발점’을 훌륭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논문이 제시하는 정책과 관점을 기본적으로 지지합니다. 따라서 ‘생태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및 ‘생태정의’라는 두 관점에서 강남훈 선생님의 생태기본소득정책의 의의를 부각함으로써, 논평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생태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의 근거는 무엇보다, 생태세수의 상당한 부분이 모든 개인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된다는 사실에 의해 생태기본소득의 재원을 조달하는 생태세의 도입이 보다 용이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동안 생태세의 도입은, 생태세가 가지는 역진적인 성격, 인플레이션 유발가능성, 수출장애 및 영세한 운송업자에게 불리하다는 이유 등으로 지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논문이 잘 보여주듯이, 생태세수의 상당액을 생태기본소득으로 지급하고, 수출기업에 대해 영세율을 적용하며, 부가가치세 방식의 과세 등을 통해 생태세의 도입으로 불리해지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정책과 결합하여 생태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대부분의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상승하게 됩니다. 그 결과 생태세 및 생태기본소득의 실시에 대해 다수 국민들의 동의를 받기가 쉬워집니다. 생태기본소득의 이러한 실현가능성은 또한, 선별적인 생태배당의 경우에 비해 보다 많은 생태세를 지속적으로, 나아가 보다 많이 거둘 수 있도록 하여 사회경제의 생태적 변혁을 가속화시키는 생태적 효과를 창출합니다. 이처럼 생태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이 생태친화적(이하 ‘생태적’) 사회의 실현가능성을 함축한다는 사실은, 후쿠시마 사태의 여파 등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핵주의자 또는 생태주의자들이 생태기본소득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게 하여 그 실현가능성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한다고 보입니다.

생태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과 관련하여 발표논문의 정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정책에서 생태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이 생태기본소득의 지속가능성과 연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 발표논문의 생태기본소득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발표논문에 의하면, GDP의 5%가 생태세로 설정되고 있습니다. 이 때 그 반을 현금기본소득으로, 나머지 반은 현물기본소득, 곧 무상(또는 저렴한 정액요금)대중교통과 생태적 기술개발을 위해 지출하고자 합니다. 생태세를 부가한 결과 전기가격이 상승하여 그 수요가 줄어들면, 수명이 오래되어 사고위험도 한층 높아진 핵발전소부터 폐쇄해 가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동시에 전기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이전보다 높은 원가경쟁력을 갖게 된 생태적 에너지산업을 생태세수의 일부를 통해 지원하여, 궁극적으로 화석 및 원자력에 의존하는 현재의 에너지시스템을 생태적인 에너지시스템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발표논문이 제안하는 생태기본소득정책은 그 의도대로, “탈핵과 생태적 경제”를 위해 강한 설득력을 갖는, 실현가능한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태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및 지속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할 때,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즉 에너지시스템이 생태적으로 전환되면서 생태세수 역시 감소하기 시작하여, 에너지시스템이 완전히 교체되는 시점부터 생태기본소득은 실현불가능해지고 지속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생태세가 불필요한 사회는, 적어도 생태적인 관점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인지도 모릅니다. 생태자원을 절약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을 정도로 자원이 무한히 재생산되는 사회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구라는 ‘작고 푸른 별’ 위의 우리 현실은 이와는 상반됩니다. 인류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생태자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반면, 대부분의 생태자원은 유한하거나 그 재생산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생태자원은 절약되거나 대체자원을 통해 대체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생태세’ 같은 경제적인 유인책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야만이 현세대 인류 모두, 나아가 미래세대 및 다른 생명체들이 모두 동등하게 생태자원을 사용하여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표논문은 생태기본소득이 모든 개인에게 지급되어야 할 궁극적인 근거로, 생태자원에 대한 ‘공유권’을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생태기본소득은 현 사회처럼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취해지는 “단순한 재분배 정책”이라는 형태를 넘어, 모든 사회에서 모든 개인들이 그들의 정당한 몫으로 받아야 할 ‘보편적인 소득’으로 설정됩니다. 나아가 현 단계의 생태세의 크기가, 제품별 탄소배출량 등과 같은 유해 물질 배출량뿐만 아니라, 에너지 사용량, 재생불가능한 자원 사용량 등을 고려해서 결정됩니다. 즉 생태세가 부가되는 실질적인 대상으로 화석- 및 핵에너지만이 아니라 절약해야 할 다른 자원을 포괄함으로써, 생태적인 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 이후에도 생태기본소득이 ‘보편적인 소득’으로서 존속할 기초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생태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이라는 첫 번째 논평주제를 마무리하면서 저는, 생태기본소득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제안하는 기본소득의 단지 한 가지 형태에 불과함을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생태기본소득은 토지세나 불로투기소득 등에 대한 과세를 재원으로 하는 다른 형태의 기본소득과 함께 실시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생태세의 실시가 가져올 수 있는 인플레이션이나 소득저하를 상쇄하고도 남음으로써 생태세 및 생태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을 한층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생태사회로의 이행은 정의롭고 합리적인 사회로의 이행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과 관련하여 발표자께 질문이 있습니다:

생태기본소득 외에 현 단계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기본소득의 형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는 생태기본소득과 함께 실시하여 그 효과를 상호증폭시킬 수 있는 기본소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태기본소득정책의 또 다른 의의는, 공유자원으로서의 생태자원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정책을 전개하여, 생태자원에 대한 모두의 동등한 권리를 핵심으로 하는 ‘생태정의’에 기초한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나아가 모두를 위한 건강한 생태계의 창출이라는 생태정의와 국민 대부분의 소득을 증대하는 경제정의를 통합하는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생태정의’ 문제는 자본주의사회에 고유한 분배부정의와 연관되고 중첩되어 상호작용하면서 당사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증폭될 수 있기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생태정의와 경제정의를 통합하여 실현하는 생태기본소득정책은, 자본주의사회에 고유한 분배부정의와 생태부정의 간의 피드백 및 이로 인한 ‘빼앗김’의 강화를 끊어내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고유한 분배부정의와 생태부정의 간의 피드백 및 이로 인한 빼앗김의 증폭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핵발전과 관련될 것입니다. 발표논문에서도 예시되듯이, 후쿠시마 사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태의 뒤처리를 위해 원전에 투입된 ‘자발적’ 지원자들이 사실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의해 ‘강요’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며, 현재까지 4,300여명의 투입노동자들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나뿐인 생명을 빼앗긴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제적인 부정의로 말미암아 누구나 공유하는 권리, 곧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서 깨끗한 작업환경에서 노동할 생태적인 권리, 생명권마저 빼앗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리, 월성 등의 핵발전소 소재지의 주민들은 일차적으로, 우리나라 자본주의에 고유한 수도권 중심의 개발로 인한 ‘경제적 수탈’의 피해자들입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핵발전소의 건립을 동의했다는 점에서, 이분들께도 경제적 부정의와 생태적 부정의는 상호결합되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원전을 폐기하면서 소득도 증대시키는 생태기본소득정책 실시의 효과는, 핵발전소 소재지 주민들이 당면한 이 이중적인 부정의와 빼앗김의 해결에 국한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핵발전의 폐기, 나아가 오염저감이라는 생태적인 효과와 국민들 대부분의 소득증대효과의 결합 및 그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나라 전체가 생태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견인할 것입니다.

생태기본소득정책이 함축하는 생태정의와 경제정의의 통합 및 이로 인한 상호증폭작용은, 특히 발표논문의 현물기본소득정책 및 이에 연계된 지역정책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생태세수의 일부를 지역의 대중교통망의 확충과 활성화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생태적인 효과와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지금까지 생태기본소득정책의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이면서, 그 긍정적인 효과를 특히 생태정의 및 생태정의와 경제정의 간의 결합에서 유래하는 효과와 관련하여 논의하였습니다. 이는 물론 생태기본소득정책과 관련되는 쟁점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논평자의 부족함을 발표자, 특히 여러 참석자들께서 보완하여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 /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발표자와 토론자님께서 시간을 잘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급한 기본소득 형태가 무엇인지 질문해주셨고 생태기본소득과 연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의하셨습니다.

<답변 / 강남훈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생태기본소득보다 먼저 생각했던 것은 청년 기본소득입니다. 아동 기본소득은 무상보육 같은 형태(애매할 수 있지만)로 보편적인 이슈가 되었고, 기초노령연금도 여당ㆍ야당 모두 증액을 말하고 있습니다. 논리를 몇 가지 고민해봤는데, 예컨대 청년들은 씀씀이도 커지고 실업률도 3배쯤 높습니다. 기존 세대가 뺏어가서 원치않는 부조리한 모습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를 말할 수도 있고요. 높은 집값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후쿠시마 사태가 터지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질문>

기본소득 논의 자체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생태세라는 문제가 나와서 조세 저항의 문제를 더욱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특별회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재원문제에서 특별회계에 잠들어 있는 돈을 끌어올 것인가하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조세를 만드는 것보다요.

<질문>

녹생당에서도 농민기본소득을 말하고 있는데 진보신당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재원은 생태세가 될 수도 있고 FTA로 이득을 보는 쪽에 세금을 걷어서 농민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듯한데, 여하간 그 생태세의 쓰임에 선택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답변 / 강남훈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특별회계는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농민기본소득은 옵션 중의 하나입니다. 넉넉하게 줄 수 있겠죠. 허나 도시사람들이 동의하겠냐는 정치적인 문제가 있고요. 우리가 WTO를 원래대로 해석하면 특정한 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FTA 하에서는 무조건 걸릴 겁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에게 주는 것은 괜찮습니다. 정치적으로 보나 국제협약상으로 보나 농민기본소득은 다른 옵션에 비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 권정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이번 기본소득 국제 대회의 큰 주제가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인데, 그것을 통해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것인데, 강남훈 선생님이 생태세를 말씀하셔서 금융과세 문제와 연결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토지세의 경우에도 생태세의 범주에 넣고 싶은데요. 그에 대한 종합적인 답변을 듣고 싶었습니다.

<질문>

생태세의 경우 우파의 이슈에 비해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생태기본소득도 그런 위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답변 / 강남훈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재원마련 방안에서 불로소득 환수에 대한 얘기를 못한 것 같네요. 생태 문제가 우파와 각을 세울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선,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우파가 받고는 있지요. 이번 선거가 그런 위험이 있고, 생태 문제가 그런 조건에서 각이 서겠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핵 마피아도 그렇고 대기업도 그렇고 생태세가 도입되면 사회가 망한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야당이 말해야 하는 것은 복지가 아니라 생태세 문제, 핵발전소 문제라는 거지요. 물론 이건 제 사견이고,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핵 발전소 문제에 있어 (매우 극단적인 예시지만) 기존 반핵운동가 분들께서 덜 지적하시는 부분이 바로 테러와 전쟁의 위험입니다. 지금 한국의 연료보관소에 핵무기가 아닌 보통 미사일만 떨어뜨려도 멈출 수 없는 방사능 누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용후 핵 연료도 공냉식인데 그 위험은 더욱 심화되겠죠.

<질문>

하시모토가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것이 당황스러웠는데, 좌우파 기본소득에 있어 우파가 기본소득을 말하는 것에 대한 총론을 듣고 싶네요.

<답변 / 강남훈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정적이 제 이야기를 받아들였을 경우, 일반적으로 두 가지 태도가 있지요.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고, 착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너는 이게 다르다. 저는 후자의 방법에 가깝겠죠. 모든 트로이의 목마는 상호적인 것입니다. 모든 스파이는 이중첩자가 아니고는 일을 수행할 수 없지요.

후쿠시마의 경우 만년동안 냉각수가 따로 돌게 되어있었는데, 지금은 그 장치가 뚫려있고 바닷물이 직접 누출되고 있지요.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거지요. 그것을 막으려면 역시 생태세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마무리하겠습니다. 최근 복지논쟁에 있어 새누리당의 복지를 더욱 압박해서 더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좌파는 좌파 나름대로의 정당한 기본소득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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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Occupy, 프레카리아트>

<사회 / 이광일: 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3부는 실현시킬 주체의 문제입니다. 즉, 프레카리아트의 범주 문제, 주체 형성, 기존 운동과 상이한 내용과 형식에 대해서, 결국 정치의 문제죠. 유리 칸토르 씨가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발표 / Yuri Cantor 유리 칸토르: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자 / 순차통역: 이상>

오늘은 점령 운동과 프레카리아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제 17일이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6개월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래서 3시간 정도 전에 주커티 공원을 재점령했는데, 경찰이 또 쫓아냈습니다. 1시간 정도 전에 생방송으로 봤습니다.

점령 운동은 각종 행동을 통해 프레카리아트를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리 시위에서 지속가능한 운동조직으로 끌고가려고 하고요. 이는 미국에서 빚이 많고, 교육비 부담이 심하고, 의료보험이 없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을 프레카리아트의 일원으로 만들고 있고 점령 운동은 프레카리아트의 운동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프레카리아트라 생각하지 않는데, 전체 인구의 일부가 프레카리아트라고 해도 지금 점령 운동을 하는 이들은 프레카리아트가 대부분입니다. 지금 점령 운동이 뉴욕에서 다른 지역들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메이데이 총파업 홍보는 구 소련 이미지를 사용하는 등의 문제 때문에 프로파간다(선전)에 취약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은 모든 사람을 프레카리아트라고 생각해야 하죠. 노동자의 8%만이 노동조합 조합원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약합니다. 노동자들이 점령 운동에 참가하는 힘 역시 약합니다. 높은 빚과 부족한 보조금은 누구라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택소유자도, 직장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불안정성을 노동자 계급 속에 속하는 계급이 아니라 자본주의 정책, 그리고 경영 방식을 봐야합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운동입니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대학교육을 받은 중산층이 마주치는 불안정성입니다. 불안정성은 젊은 세대에게 불가피하고 장기적인 방식으로 떠넘겨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약속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높은 등록금은 손에서 벗어나고 있고 거대한 도박입니다. 좋은 직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급조직과 무급조직의 차이가 있는데, 유급조직은 다른 사람을 대변해주죠.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전쟁에 참여해서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 전쟁에 반대하는데, 지금은 바뀌었죠. 지금은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던 현상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으로 옮겨갔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여기에 참여하기 전에 여러 친구들에게 자기 각자 지역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그 이유는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들의 공통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로스앤젤레스와 연락이 닿았는데, 그 사람들의 응답은 거의 똑같았습니다. 프레카리아트가 어떻게 참여를 하고 있고, 그들을 어떻게 끌어들이고 있냐는 질문에, 우리 대부분이 프레카리아트이며 그리고 주류에 합류하는 시민권의 언어보다 더 포괄적인 인권의 문제로 이행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미국 전역, 여기 서울, 전 세계에 대해서 더 배울수록 우리가 같은 문제와 마주치고 있다는 것이 더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성장하고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 이광일: 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통역해주신 분은 이상 씨입니다. 감사합니다. 유리 칸토르 씨의 말을 듣고 나니 역시 서로 공통적인 부분이 많다는 점을 다시금 알게 되네요. 특히 자기 통치성에 관해선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발표 / 이진경: 수유너머N 회원,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발표문이 길지 않은데, 더 짧게 하겠습니다. 자료집에 실린 제 요약문을 읽겠습니다.

‘20대 80의 사회’나 ‘노동의 종말’이란 말이 어느새 빛이 바랜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오히려 그것이 현재의 얘기가 되었음을 발견한다. 다만 약간 다른 것은 노동의 종말이 노동의 비정규화라는 중간적 점이지대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뿐이다. 과거에는 중간층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분해되는 것을 지칭하던 계급분해가 이제는 노동자계급 자체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해되는 것을 지칭하게 된 것 같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단호한 슬로건을 무색하게 만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만들어지고 있는 이런저런 문턱들은 노동자의 하나-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란 무산자화되고 있는 노동자, 아니 이미 무산자의 지대로 축출된 노동자를 지칭하는 새로운 이름이다. 맑스가 일찍이 이미 계급이기를 중단한 계급, 그래서 ‘비계급’이라고 정의했던 프롤레타리아트는, 그것이 자본에 의해 포섭된 영역 바깥을 지칭하는 한, 지금 시기라면 이들 프레카리아트를 실질적인 내용으로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프레카리아트, 그것은 비정규직이 일반화된 시대, 프롤레타리아트의 다른 이름이다.

알다시피 노동자가 프레카리아트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프레카리아트가 노동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양자는 하나의 경사면의 양끝 같은 것이다. 그 경사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특별한 기회나 동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정규직과 프레카리아트는 비대칭성을 갖는다. 자본가들에게도 유사한 비대칭성이 있다. 비정규직을 쓰는 데 맛을 들인 자본가가 정규직을 굳이 고용하려고 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더구나 요즘처럼 생산의 유연성이 일반화된 시기에 비정규직이 제공하는 고용의 유연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글로벌한 차원으로 확대되고 정보통신망의 발전에 따라 심화된 경쟁조건은 이러한 비대칭성에 또 하나의 자물쇠를 채운다.

기술적인 이유에서 추구되는 ‘노동의 종말'이나 계급적 이유에서 진행되는 비정규직화와 더불어 이런 요인들을 생각해 보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는 이미 지금의 자본주의에서 피하기 어려운 하나의 경향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노동자를 ‘과잉인구’로 만드는 ‘자본축적의 일반적 법칙’(마르크스)에 따라, 노동자를 더욱더 무산자화하는 하나의 ‘역사적 경향’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노동자의 비정규직화가 기술적인 면에서나 계급적인 면에서 거스르기 힘든 역사적 경향이라면, 비정규직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도,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모두 그런 역사적 경향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역사적 경향 속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본다는 것, 그것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이라는 ‘정상상태’에서 벗어난 일시적 ‘예외상태’가 아니라 점차 확대될 ‘정상상태’로 보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함으로써 사라질 존재로서 보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인 채 살아가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운동이나 조직을 모델로 비정규직 노동운동이나 조직을 다루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의 존재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운동과 조직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고, 역으로 정규직의 운동과 조직조차 그런 비정규직의 운동과 조직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대개는 그 비참함을 보고 고통에 공감하던 ‘무산’의 상태에서 역으로 “잃을 것이라곤 족쇄밖에 없다”며 그 강점을, 혁명성을 보게 해주었던 것처럼, 비정규직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서, 그 속에서도 새로운 강점을 찾아내고 그러한 존재방식 자체를 긍정할 수 있게 될 때, 비정규직이나 프레카리아트에 대해 혁명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비정규노동자라는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선, 비정규노동이 ‘정상상태’임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인 채로, 비노동자가 비노동자인 채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고용여부에 의해 생존의 최소조건마저 흔들리고 와해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은 고용여부와 무관하게 생존의 최소비용을 ‘기본소득’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이 점차 사라져가는 세계, 혹은 노동이 점차 비정규화되고 불안정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모든 인민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돈에 상관하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그런 활동은 지식이든 예술이든, 기술이든 놀이든, 혹은 사회운동이든 ‘봉사활동’이든 수많은 영역에서 새로운 창조적 성과들을 산출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비정규직, 프레카리아트란 이름이 노동이 사라져가는 세계의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노동으로 벗어난 세계를 예견하고 준비하며 그것을 긍정하게 하는 창조적 존재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현 자본주의에 의해 고용없이 착취되는 모든 활동에 대한 잠재적 임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자본가들은 외부불경제로 얻은 이득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는데 기본소득은 그것을 바로잡는 요구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 / 이광일: 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여하간 기본소득은 불안정상태가 비상상태가 아닌 ‘정상상태’로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다음은 장석준 씨가 발표하겠습니다.

<발표 /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원래 맡은 역할은 토론이긴 한데요. 발표라기보다 보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진경 선생님 글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데요. 그러면서 저도 정리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여러분과 제 생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현재 노동운동이 상당히 궁지에 몰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은 자본이 잠식하고 있고 노동은 특수한 경우로 취급되고 있죠. 자본의 입장에서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하는 게 좋은데, 어쨌든 모든 노동조건을 동일화하려고 합니다. 악한 평등이죠.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궁지에 몰려있는데, 여기서 좌파진영이 정규직의 보편화를 이야기하는게, 사이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정규직은 역사의 특수한 산물이니까요.

기본소득은 역시 노동시간 단축과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존 정규직 노동에 대한 생각을 깨버릴 정도로, 자본의 악한 보편을 깨버릴 수 있는 그런 새로움 말이지요. 노동자라고 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지요. 시민이라고 할까요.

점령 운동과 관련해서는 진행 중인 운동이기 때문에 섣불리 중간평가하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3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2008년 이후에 일어난 일은, 신자유주의가 끝난 게 아니라 동의의 체제로서의 신자유주의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는 분명 동의의 체제였지요. 중산층이 붕괴하는 상황에서 가장 쉬운 방향은 극우세력의 발흥인데, 역사의 희망이 있는지, 점령 운동이 촉발되었지요. 월스트리트에 취직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못하니까 데모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있는데, 맞는 말이지요. 그 길이 닫혔다는 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68혁명 이후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핵심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교류거든요. 다만, 한 가지 고리가 빠져있어서 2011년은 미완성으로 끝났다고 보는데, 그것은 중국과 인도의 노동자들이 빠져있다는 것. 아직 어떻게 발전될지는 모르지만 중국, 인도 노동자의 투쟁이 촉발된다면 과거 68혁명보다 더 생생한 투쟁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점령이라는 단어가 제대로 된 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전술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을 점령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보고요. 여러 담론 중에서도 미국의 리처드 울프가 기업 점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인상깊은데요. 평의회 운동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 방식은 과거의 노동자를 전제했던 것인데, 프레카리아트는 생산현장과 유리되어 있지요. 그걸 어떻게 연결해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해 이론 진영과 실천 진영이 끊임 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단편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겠습니다.

<사회 / 이광일: 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기본소득과 노동시간 단축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정규직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신자유주의가 동의의 체제가 끝났다고 말씀하셨고, 그 과정에서 극우 반동이 있을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점령 운동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셨고, 물론 이는 점령 운동의 결과가 또 반영되겠지요. 그리고 중국의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끝내기 위한 맥락을 제공하셨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질문을 여유롭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프레카리아트가 대체 뭐냐고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질문 / 조병훈: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대변인>

서울점령자들이란 이름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프레카리아트를 정당으로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작업장에서의 주체로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을 호명하고 모여들게 하는 건 작업장이 아니라 광장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유리 칸토르 씨에게 총파업에 대해 이런 지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답변 / Yuri Cantor 유리 칸토르: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자>

메이데이 총파업은 노동조합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라 점령 운동에 참여하는 프레카리아트가 제시한 의견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자체적으로 조직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점령 운동이 당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고 현존하는 체제의 일부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질문 / 김주원>

신자유주의가 동의의 체제라고 말씀하셨는데,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고, 부족하다면 어떤 보완이 필요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답변 /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제가 이해하고 있는 기본소득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마술보따리가 아닙니다. 21세기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서 반드시 필요한 구성요소라고 생각하는데요. 노동해방적 성격을 가진 노동시간 단축을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지요. 신자유주의적인 권력의 출발점인 기업을 점령하는 행위도 그런 측면이고요. 공진화(共進化: 여러 개의 종(種)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여 가는 일) 개념이란 게 있잖아요? 과제가 여러 가지고, 이 과제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극복된다고 했을 때 기본소득은 그 패키지 안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답변 / 이진경: 수유너머N 회원,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생산과 기업의 점령에 대해 저는 다른 측면을 보완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공장 점령과 거리 점령은 아주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공장 점거는 정규직의 이야기이고 공장을 멈추는 것이지요. 프레카리아트의 공간은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에 나앉은, 거리의 계급, 점령 운동이 거리로 진행되는 것을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점거하는 것은 기존에도 있었지요. 하지만 기존의 운동은 지구전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었고 국지화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거리전의 경우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특이점 형식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장은 구심점, 거리는 원심점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잘못 이야기되는 걸 경계하고 싶습니다. 역시 거리의 운동은 공장의 운동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그런 것, 정규직 노동운동 형태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그럴 공산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륭전자의 경우는 다행히도 이겼지만, 그것은 결국 싸우려면 7년 이상 버티며 싸워야 한다는 다짐을 미리 해야한다는 역설이 생겼지요. 정규직이 비정규직적인 운동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비정규직이 정규직적인 운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옳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노동운동 중심의 구좌파와 비노동자, 이를테면 신좌파의 분열이 우리의 진보운동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68혁명의 프레임에 너무 갇혀 있다는 문제의식이 프레카리아트의 급진성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좌파든 구좌파든 적ㆍ녹ㆍ보가 굳이 하나가 아니더라도 공진화하면서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고 거기에 기본소득이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젊은 세대의 급진화에 대해 어떤 좌파의 혁신이 필요한지 듣고 싶습니다.

<사회 / 이광일: 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우파가 강한 게 아니라 좌파가 약한 거라는 측면에 대해서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공장이냐 거리냐는 문제도 중요합니다. 그 공장조차도 조직노동자들이 점거할 수 없다는 현상, 즉 희망버스같은 운동 형태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과거의 공장 점거운동을 이야기했던 것은 그곳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점령 운동의 시각으로 예전의 운동들을 점령 운동으로 재해석하자는 측면이 큽니다. 재접속의 시각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업 안팎의 점령 운동이 가능할까에 대해서 과거식의 공장 점거는 한계가 있지요. 이런 것들이 이론 및 실천 진영의 주된 고민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근 지젝의 글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것이 공산주의에 대한 것이었는데, 프롤레타리아, 프레카리아트, 이주노동자가 있다고 할 때, 공산주의를 위해서 이 세 계급이 연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계급이 연대하는 것이 공산주의라는 말이었습니다. 점령 운동으로 인해 정치의 기본 형식이 어떤 식으로 될 것인지에 대해선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의정치는 일단 부족하지요. 점령 운동이 너무나 뛰어납니다. 문제는 여기에 대한 답이 없습니다. 고민이 필요합니다.

<답변 / 이진경: 수유너머N 회원,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작년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에 중요한 변화가 있다는 것. 작년의 주요 투쟁을 보면 희망버스, 두리반, 강정 등. 안정적인 조직운동은 전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갖지 못했고, ‘어중이떠중이’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었지요. 희망버스는 물론 조직운동이 시작했지만 2차 넘어가면서 전혀 다른 쪽이 가지고 갔습니다. 조직화된 사람들이 조직화된 사람을 동원하는 시대가 갔고, 자연발생적인 소집단 위주로 운동이 주도되고 있다는 개인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몇 년 간 그런 경향이 강화되었다는 것. 역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토대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언급하자면, 대학생의 경우 50% 이상이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시간을 피해서 강의를 신청합니다. 거꾸로 된 것이지요. 이들을 학생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프레카리아트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사람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지금 거리 점거 투쟁의 형태에서 정규직이 잘못하면, 즉 총파업을 고집하면, 안 됩니다. 이제 누구도 그걸 믿지 않지요.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총파업 말고는 싸움의 형태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범답안이 정해져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전술이 국한되어 있지요. 자본가들이 바보도 아니고 200년 넘게 똑같은 전술을 쓰면 통하겠습니까? 총파업해서 이긴 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총파업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총파업이 자연발생적인 소집단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버린다면 그것을 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제가 걱정하고 있는 지점은 최근 국회에서 구걸행위 금지법이 통과되었잖아요. 상대방에 의해 전유되거나 불안정의 징후들을 마녀를 만들어서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점령 운동의 극우적 경향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고요. 구걸행위금지법은 당연히 반대하지만 점령 운동과 연관해서 이야기하려면 역시 성찰이 필요합니다.

<답변 / 이진경: 수유너머N 회원,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구걸행위금지법을 보며 참 우리가 이렇게까지 떨어졌냐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동냥이라는 말을 살펴봐야 하는데, 동냥이라는 말은 구걸과 다릅니다. 근대 이전에는 공동체가 굶는 일이 있어도 구성원 혼자 굶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동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는 아주 중요합니다. 자본주의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공동체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빼앗았고, 그 결과 동냥이 구걸로 바뀌었는데, 여하간 구걸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급하다는 걸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동냥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을 기본‘동냥’이라 불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웃음).

<답변 / Yuri Cantor 유리 칸토르: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자>

미국에서는 반노숙법 같은 것이 통과되고 있습니다. 점령 운동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점령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무서운 단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처음에는 군대 이미지 때문에 점령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 취지가 확산되자 점령이라는 단어가 연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점령 운동 안에서도 남성우위 상황이 일어나곤 하는데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문제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의견>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 점령이라는 단어가 매우 무서운 것입니다. 여하간 그런 문제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점령 운동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준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는데 기본소득이 그들의 삶을 구성하는데 있어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합니다. 제너럴 스트라이크(총파업)의 경우에도 말 그대로 ‘제너럴’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사회 / 이광일: 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이만 마치겠습니다. 3일간 치러진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행사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첨부파일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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