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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열며

2014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4.09.27|조회수1,295 목록 댓글 23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코헬렛 11,9ㅡ12,8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복음 루카 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지난 번 예비신학교 모임에 갔다가 어느 교실에 떨어진 모의고사 수학 시험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수학을 워낙 좋아했었기에 ‘한 번 좀 볼까?’라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펼쳐 보았습니다. 단 한 문제도 풀 수가 없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수학을 잘 한다고 학교 대표로 수학경시대회도 나간 경험도 있는 저였지만, 25년 동안 수학과는 담 쌓고 살다보니 공식 하나 생각나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더군요.

그렇다면 모의고사 수학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한 0점인데 과연 사는데 문제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신부로 살고 있는 저에게 있어서 수능 수학은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0점을 맞아도 누가 혼내지도 않고, 바보라고 놀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초등학교 때의 산수 실력, 즉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기 정도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문득 학교 공부에 목숨을 걸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떠올려 집니다. 사실 모든 학생들이 1등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배운 공부를 가지고 평생 자신의 일을 꾸려가지도 않습니다. 굳이 학교 공부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시험을 망쳤다면서 심지어 자신의 생을 마감 지으려는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일등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곳입니다. 세상은 경쟁자들로만 가득한 곳이 아니라, 협조자들과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데 이 점을 잊어버리고 혼자서 끙끙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려는 생각 때문에 협조자가 아닌 경쟁자로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해 줍니다. 즉, 당신의 수난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요. 그런데 이에 대한 제자들의 모습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묻지 않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말하지요.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듣고 싶어 했던 제자들이었기에, 자기들 곁을 떠날 수 있는 수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협조자로 받아들여 당신의 수난을 이야기했는데, 제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진정한 협조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것만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의 모습을 꼼꼼하게 살펴보십시오. 내 뜻을 펼치기 보다는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랑의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라 로슈 푸코).



콤플렉스 벗어나기.

콤플렉스에 쌓여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하긴 저 역시 이런 콤플렉스에 시달릴 때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과연 내 강의가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일까? 왜 나는 이 정도밖에 하지 못할까? 라는 생각을 강의를 하면서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일 쓰고 있는 새벽 묵상 글도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수려하게 글을 쓰는 사람, 깊은 감동을 주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에 비해 저는 너무나 무능해보고 그래서 불안할 뿐입니다.

이 세상에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소위 하늘로부터 재능을 받았다고 평가되는 모차르트, 미켈란젤로 역시 당대에 콤플렉스로 인해 무척 힘들었다고 전해지지요.

중요한 것은 교만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콤플렉스에 휩싸여서 힘들게 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며 힘들어하는 콤플렉스로 인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안고 살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콤플렉스로 얼굴 부끄러워하고 있는데,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을 부러워하는 그 누군가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언젠가 묵상 글을 통해서 그냥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봤었다고 적었지요. 사실 이제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우기에는 제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배울 시간도 많으며, 이를 활용할 시간도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배움을 포기해서는 안 되지요. 내 자신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로 버리고 싶은 나의 콤플렉스도 조금씩 털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더 자라고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현재의 나를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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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마음지기 | 작성시간 14.09.27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필리 4,13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watercolour | 작성시간 14.09.27 주님 제 믿음이 나날이 자라도록 은총 주소서 아멘
  • 작성자Daumyang | 작성시간 14.09.27 늘 항상 배우도록 할게요...
  • 작성자무등산 | 작성시간 14.09.30 참예수님!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평화를 빕니다.
  • 작성자율리안 | 작성시간 14.10.01 신부님 감사합니다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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