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2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러시아 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운 좋게 마술램프를 발견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램프를 문지르자, 램프 속에서 ‘지니’가 나타나서 자기를 이 램프에서 구해줬으니, 농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농부는 말했습니다.
“옆집에 젖소가 있는데 온 가족을 다 먹이고도 남을 만큼 우유를 생산했어요. 옆집 사람들은 남은 우유를 팔아 큰 부자가 되었죠.”
농부 이야기를 듣던 ‘지니’가 “그러면 우유가 잘 나오는 젖소를 구해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농부는 어떻게 말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옆집 젖소를 죽여주세요.”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따라서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부러워하고 그래서 그 사람처럼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자기 능력의 부족으로 그 사람처럼 되지 못하면, 앞의 이야기에 나오는 농부처럼 그 사람이 망하길 바랍니다.
질투와 시기는 모두가 망하는 길입니다. 상대의 망함을 떠나 나부터 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 사람처럼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의 고유함을 간직하면서 사는 노력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 고유함을 간직하는 사람은 질투와 시기에서 벗어나, 자기 안에서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진정한 겸손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듯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기에, 많은 이가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사제인 즈카르야의 아들로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야로 향했고, 그곳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 꿀을 먹으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라는 사람의 질문에 “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해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의 위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실 주님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면서 겸손의 모습을 보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삶이 아닌, 자신의 고유함이라 할 수 있는 주님을 높이는 삶을 철저하게 살아갑니다.
세례자 요한이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고유함인 주님 높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보였던 겸손을 본받아, 자기보다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사는데 자기 고유함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인정받는 것이 아닌 주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특별한 기회를 기다리지 말라. 평범한 기회를 붙잡아 특별하게 만들어라(오리슨 스웨트 마든).
사진설명: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치릴 로 작성시간 24.12.12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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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캐슬린 작성시간 24.12.12 자기를 높이는 삶이 아닌
세례자 요한이 보였던 겸손을 본받아
자기보다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사는데 자기 고유함을 발휘할 때
세상에 인정받는 것이 아닌 주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
작성자mods 작성시간 24.12.12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감사합니다...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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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누스 작성시간 24.12.1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sdhhope 작성시간 24.12.13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