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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열며

2024년 12월 19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4.12.18|조회수1,584 목록 댓글 44

2024년 12월 19일

 

 

상대의 이야기를 자신의 스토리로 바꾸는 식의 대화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몸이 안 좋은데?”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도 안 좋아.”라고 말합니다. “새 옷 하나 사야겠는데?”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도 사야 하는데….”라고 받아칩니다.

 

몸이 안 좋다는 친구에게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나도 안 좋아.”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나의 아픔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하게 되고, 나의 아픔을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에서 서운함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어디가 안 좋아?”라고 물으면서 그의 아픈 마음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사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자기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했는가는 전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이 기분에 맞춰서 말과 행동을 유추해서 조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굳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 상대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하는가에 집중하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듣다’를 뜻하는 영어 ‘hear’와 같은 발음을 가진 ‘here’는 ‘여기’라는 뜻입니다. 이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공감하려면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들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지 않으면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또한 여기에 있으면서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면, 진짜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상대에게 좋은 기분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사제인 즈카르야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해 말해주지요. 하느님의 뜻이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해준 것입니다. 하지만 즈카르야는 천사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 1,18)

 

자기만을 바라보는 부족한 믿음은 ‘여기서’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듣지 않으니,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만을 바라보면서 말하지 말고,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자기 뜻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과연 주님께 어떤 기분을 전달할 것 같습니까? 주님 뜻에 맞춰있다면 주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뜻에만 맞춰있다면 주님께서는 내게 크게 실망하고 서운해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은 끊임없이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안주하지도, 안일하지도 않으면서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사진설명: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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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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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큰누나 | 작성시간 24.12.19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 작성자dudal027 | 작성시간 24.12.19 고맙습니다
  • 작성자캐슬린 | 작성시간 24.12.19 지금 여기에서 침묵 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야누스 | 작성시간 24.12.1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mods | 작성시간 24.12.20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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