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3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스마트폰이 고장 나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알아서 고쳐질까요? 아니면 누가 알아서 고쳐줄까요? 그럴 일이 절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은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만약 도움 청하는 것이 힘든 분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거나,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마트폰 서비스 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자기 삶의 문제, 특히 자기 마음의 문제는 어떻게 풀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해결될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내 마음을 보고서 알아서 풀어줄까요? 지극히 비이성적인 해결 방법입니다. 하느님께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어떻습니까? 객관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지 않습니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노력의 과정에서 기도하며 하느님의 지혜와 힘을 청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성실히 노력할 때, 하느님의 응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비이성적인 사람은 어떤 응답이 이루어졌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에는 모세 오경을 바탕으로 한 613개의 율법이 있었습니다. 율법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수많은 계명 중 어떤 것이 더 무겁고 가벼운지, 또 모든 율법을 관통하는 하나의 대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아주 치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율법 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스스로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세부 사항을 열심히 지키는 것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부 사항에 갇혀서 정작 하느님의 뜻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핵심을 두 가지로 나눠 이야기해 주십니다.
첫째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입니다. 마음, 목숨, 정신, 힘은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을 뜻하는 것으로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향한 수직적 사랑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이웃을 향한 수평적 사랑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삶은 사랑의 삶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중심으로 사는 삶이고, 이로써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먼저 먼지를 일으키고도 볼 수 없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조지 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