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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열며

2026년 3월 28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6.03.27|조회수1,075 목록 댓글 38

2026년 3월 28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선사시대에 한 시기를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크로마뇽인이 현재 인류의 기원을 이루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귀 달린 바늘’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둘이 공존하고 있을 때 빙하기가 찾아왔습니다. 빙하기의 맹추위에서 크로마뇽인은 동물 뼈를 이용해 털가죽을 꿰맨 옷을 만들어 입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은 훨씬 덩치도 크고 힘도 강했지만, 그 추위를 이겨낼 어떤 방법도 없어서 멸종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크더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문명을 유지했던 마야 문명도 무분별한 개발로 산림이 훼손되었고, 이것이 오랜 시간의 가뭄을 가져와 그 화려한 문명을 파괴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함께 사는 길을 쫓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편하고 쉬운 길만을 찾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변화되어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 그래서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 뜻에 따라 변화되어야 합니다. 특히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으로 함께 사는 길을 용감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은 라자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목격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반대로 예수님을 고발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말합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요한 11,47)

 

신학적 진리 탐구가 아닌 철저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민중 봉기가 일어나면, 자신들이 누리던 기득권과 로마의 평화가 깨질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그들은 썩어 없어질 권력과 체제 유지만을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는 말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낫다.”(요한 11,50)

 

자기들 다수를 위해 소수인 예수님을 희생시키자는 폭력의 정당화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정당화시킬 때가 많습니다. 자기 삶의 기득권이나 편안함을 위해 주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자기만 사는 길이 아닌, 함께 사는 길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망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당신은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단,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지그 지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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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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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6.03.28 new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별초롱 | 작성시간 26.03.28 new 아멘!
    신부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작성자초록마녀 | 작성시간 26.03.28 new 아멘
  • 작성자인슬빈 | 작성시간 26.03.28 new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mods | 작성시간 00:19 new 감사합니다...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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