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6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자마자 보게 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입니다. 사실 처음에 이 작품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비판이 많았다고 합니다. 피에타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성모님의 모습만 도드라지고 그 품에 안긴 예수님은 옆 모습만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모님이 주인공 아니냐며 항의했던 것입니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조각은 하느님께 바친 것이니, 감히 인간의 시선으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성모님이 주인공이었을까요? 신기한 것은 실제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품의 중심에 예수님의 섬세하고 신비로운 얼굴이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중심이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피에타만 그럴까요? 세상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하느님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시선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시선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느님 안에 머무를 수 없으며, 하느님의 뜻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참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명백하게 정의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부르신 것은 당신만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참된 생명을 주는 유일한 구원한 통로임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아버지는 이 포도밭을 정성껏 돌보시는 농부이시며,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고 오직 이 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은 단순한 소속감이나 회원 자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액이 나무에서 가지로 끊임없이 흘러야 살 수 있듯이, 하느님으로부터 생명, 성령, 은총 등을 끊임없이 흘러나와야 가지인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즉, 진정한 결합을 이루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무능함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현실입니다. 가지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한 알의 포도도 맺을 수 없듯이, 우리의 모든 결과물은 주님과 연결되어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존재 목적을 잃고 결국 메말라 불에 던져질 뿐이라는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힘으로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인간의 시선에만 머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단단히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시선입니다. 사랑으로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붙어만 있으면 됩니다. 열매를 맺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에는 두 가지 삶이 있다. 죽음을 망각하며 사는 삶과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삶. 전자는 동물에 가깝고, 후자는 신에 가깝다(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