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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일 강론] 동굴에서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작성자구유|작성시간20.08.08|조회수153 목록 댓글 0

1열왕 9-13; 로마 9,1-5; 마태 14,22-33

연중 제19주일; 2020.8.9.; 이기우 신부


⒈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였던 유경환 클레멘스가 쓴 신앙의 시 ‘바람 속의 주’에

생활성가 가수 김정식 로제리오가 노래로 만든 곡이 ‘바람 속의 주’입니다. 



그 못자리 스친 곳에 스며 있는 향기를 그 발자국 패인 곳에 굳어 있는 믿음을 

바람부는 돌밭 속에서 가득 안은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헤매지 않으리 바람 속의 내 주여

그 뒷모습 혼자이나 어디에나 계시고 그 목소리 아득하나 바람처럼 가득해 

간절하게 올린 기도로 만나 뵈온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외롭지 않으리 바람 속의 내 주여


아마도 이 생활성가 곡의 모티브는 엘리야가 호렙산의 동굴 입구에서 주님을 만난 체험인 것 같습니다.

그는 강한 바람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없었고, 지진이나 뜨거운 불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 뵈옵지

못했습니다.

그는 의외로 느끼기도 힘들 정도로 미약하고 고요한 미풍 속에서만 만나 뵈올 수 있었습니다.

이 노랫말을 지은 시인도 미약하고 고요한 미풍 속에서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었나 봅니다.

사실 그 당시 엘리야에게는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안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알 신의 예언자 4백 5십 명과 피말리는 대결을 하고 가까스로 승리를 하기는 했으나,

독기가 오른 이세벨 여왕 군대의 추격을 혼신의 힘으로 따돌리고 겨우 이 호렙산으로 피신해 온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그가 미약하고 고요한 미풍 속에서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었던 것도,

또 강한 바람이나 불 속 그리고 지진 속에서는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있는 동굴에 이르렀을 때 먼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동굴에서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⒊ 자연현상이라 하더라도 주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주도권에 순종한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하느님의 징표가 될 수 있음을 엘리야는 보여 주었습니다.

주님의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 눈이 없었던 제자들이 두렵고 놀라야 했던 일을 전해 줍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상황은 물 위를 예수님께서 걸어오신 기적인데, 그 배경이 된 상황은 빵의 기적 사건이었습니다.

만여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빵의 기적을 겪은 군중은, 예수님을 두고

“이 분이야말로 오시기로 되어 있는 예언자시다.” 하면서 억지로라도 임금으로 모시려고 쫓아왔습니다.

이 군중에게는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빵이 많아진 것만 보였을 뿐, 그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께서 생명까지도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이시라는 신성의 표지는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⒋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를 태워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신 다음 군중도 돌려 보내셨습니다.

자고로 무언가에 환장한 사람들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인지라,

예수님께서도 군중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떼어 놓고 산에 올라 한가롭게 하느님과 기도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밤을 새워 기도하시다가 뒤늦게 새벽녘이 되어서야 배를 타고 간 제자들이 위험에 처했음을 감지

하셨습니다. 

 

⒌ 본시 드넓은 갈릴래아 호수에는 북쪽 헤르몬산과

서쪽 지중해 또는 동쪽 아라비아 사막에서 수시로 바람이 불어옵니다.

무동력으로만 배를 움직이던 그 시절에, 상반된 방향에서 오는

맞바람 속에 배가 갇혀버리면 사람의 힘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밤새 맞바람에 시달려 고생하던 제자들은 새벽녘 어스름이라

또렷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물 위를 걸어서 배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이 자신들을 구하러 오시는 스승이시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령’이라고 소리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며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 스승이심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안심시키셨고,

곧 이어 바람과 파도도 고요하게 가라 앉히셨습니다.

엘리야에 이어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고요함 속에서 주님을 만난 셈입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엘리야에게 있어서 강한 바람과 지진과 뜨거운 불 같은

혼란을 겪은 후에 나타난 표징이었듯이,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맞바람과 높은 파도,

유령과도 같은 존재의 출현으로 인한 두려움 같은 혼란을 겪은 후에 나타난 표징이었습니다. 


⒍ 그런데 물 위를 걸어 오시는 스승을 본 베드로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엉겁결에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베드로는

드디어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는데, 참으로 신기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의심이 들었습니다.

이러다 빠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을테지요. 그 순간 그의 발은 물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그를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구해 주시며 한 말씀 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을

품었느냐?”

이러고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도 아직 주님의 눈으로 보는 은총은 내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⒎ 그런가 하면 한때 열성적인 바리사이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민족적 열정이

남달랐던 바오로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어 일생을 바치고 나서 만년에 이르러서는

젊은 날의 민족주의적 정서가 발동해서 모처럼 속내를 드러내놓고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알려진 세상의 총 본산이었습니다. 각 나라 사람들이 다 모여 들어 살고 있는 국제 도시였습니다.

물론 유다인들도 이들과 섞여서 살아가고 있었고, 사도 바오로는

이 유다인들을 기반으로 해서 온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복음을 전할 참이기는 했지만,

정작 유다인들이 그 구원 대상에서 제외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이었고 끊임없는 아픔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래 유다인들은 태어나자마자 할례를 받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이 주어졌고,

그것은 미개한 다른 민족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이스라엘만의 영광이었습니다.

이러한 선민의식으로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위한 하느님이 되어주시라는 계약을 믿고,

그 계약으로부터 나오는 율법을 성실하게 지켜 왔습니다.

안식일마다 꼬박꼬박 주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려온 것도 바로 그 계약 때문이었습니다.

하다 못해 예수님께서도 인성으로는 유다인이 아니시냐? 하는 심정을

바오로는 여과없이 로마에 사는 이방 신자들의 공동체에 드러내 보입니다. 


⒏ 사도 바오로가 표명한 이 통한의 진실과 달리,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이천 년이 다 되도록 흐른 아직까지도 교회의 역사와 별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까지도 편협한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인류의 구세주로

알아보지 못하기는 이천 년 전 그들의 조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민족의 주체성이 교회의 보편성과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의 이 진정성 가득한 소망은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지난

이천 년 동안 하느님께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셨던 역사성을 존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의 신자들의 기도 부분에서 ‘유다인들을 위한 기도’를 빼놓지 않고 바치면서,

“우리 주 하느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먼저 말씀하셨으니 유다인들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계약을 충실히 지키도록 기도하는 것”이 그 사례입니다.  

적어도 사도 바오로의 이 진정성 있는 청원은 우리 한국 교회와 민족에게 반면교사로 작용합니다.

즉, 민족이 주체적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섬기는 올바른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인다면, 민족의 주체성은

교회의 보편성에 힘입어 얼마든지 찬란하게 꽃을 필 수 있을 것이며 열매도 맺을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⒐ 엘리야가 아주 약한 바람 속에서 주님을 만나뵈온 것은

바알 신의 예언자 4백 5십 명과 목숨을 건 결투를 치루고 나서 가능했던 섭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심을 말씀하시기 위해서도 만여 명도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후야

가능했고, 호수 물 위를 걸어서라도 제자들을 구하시러 오셨던 일도 그 제자들이 빵의 기적을 함께 목격했으며

그 후에도 예수님의 복음선포를 계승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던 협력자요 계승자라는 사실에서 연유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도 바오로가 동족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비현실적인 그러나 매우 절박한 심정을 토로한 것 역시 이방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 복음을 선포한 후였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고백이었습니다. 


⒑ 요컨대, 엘리야나 예수님이나 또 사도 바오로나 나름대로 절박하고 타당한 맥락에서

그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그런 연후에라야 바람 속의 주님을 뵈옵거나 물 위를 걷거나

동족의 복음화를 염원하는 심정적 토로가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바람 속의 주님을 만나 뵈옵기를 원한다면 우상과 싸우는 치열한 상황을 마다하지 않거나,

빵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 억지로라도 임금으로 모시겠다고 쫓아오는 군중을 돌려보내고 나서

홀로 기도해야 했던 상황에서 제자들의 위급함을 겪게 되었거나,

또는 누구보다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던 처지이면서도 이방인의 사도로서 일생을 불사른

사도 바오로이기에 동족의 회개와 복음화를 간절히 염원한 것처럼,

무언가 절실하고 진정성 있는 투신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있는 동굴에 이르렀을 때

“동굴에서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하고 먼저 말씀하시는 상황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광복절과 성모 몽소 승천 대축일을 앞두고 과연 우리 민족과 우리 한국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주님을 만나 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 못자리 스친 곳에 스며 있는 향기를 그 발자국 패인 곳에 굳어 있는 믿음을 

바람부는 뻘밭 속에서 가득 안은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헤매지 않으리 바람 속의 내 주여

그 뒷모습 혼자이나 어디에나 계시고 그 목소리 아득하나 바람처럼 가득해 

간절하게 올린 기도로 만나 뵈온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외롭지 않으리 바람 속의 내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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