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료실

손이 오그라든 사람, 마음이 오그라든 바리사이들

작성자구유|작성시간20.09.07|조회수205 목록 댓글 0

- 진실과 인정에 눈먼 반사회적 괴물(Psychopath), 바리사이들

1코린 5,1-8; 루카 6ㅡ6-11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2020.9.7.;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려던 예수님 앞에

바리사이들이 데려다 놓은 듯한 장애자가 등장합니다.

오른손이 오그라든 장애자인데, 손이 오그라드는 병은

손바닥에서 손가락으로 이어지는 힘줄과 근육이 굳으면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손을 많이 쓰는 50, 60대 남성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이 질환은 당뇨나 음주 등이 발병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네 번째와 새끼 손가락이 함께 굽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일상생활이 불편해집니다.

이를 처음 발견한 의사의 이름을 따서 듀피트렌 구축(Dupuytren's contracture)이라고도 부릅니다.

 

  일전에 처음으로 안식일 논쟁이 벌어졌던 발단은 제자들이 밀밭을

지나가다가 밀이삭을 뜯어서 비벼 먹은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에게는 직접적인 혐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바리사이들이 덫을 놓았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참석하시기로 되어 있던 회당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데려다 놓은 것입니다.

당시 바리사이 율법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부 규정에 의하면,

안식일에 쉬어야 하는 생업 중에는 의술행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시면 십계명의 제3계인 안식일 계명을 어긴 것이 되고,

고쳐주지 않고 외면하시면 평소에 강조하던 자비를 어긴 것이 되어 그분을 중상하는 험담을 퍼뜨리기에

아주 좋은 양면의 날과도 같은 함정이었습니다.

회당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리신 예수님께서 몹시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그들의 잘못된 안식일 관행을 깨부수기로 작정하시고 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안식일에는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해꽂이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만드는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주일을 거룩히 지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로서는 좋은 가르침을 얻은 셈입니다.

주일에는 미사를 봉헌하는 일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미사를 봉헌하는 행위를 통해서

얻은 그리스도의 기운으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를 돕는 연대 활동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사이들은 율법에 대한 열성과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 열성과 지식이 쓰여져야 할 사랑의 마음이 메마른 탓에 마음이 오그라들어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안식일 예배를 드리고 나면 의무를 다 했다는 듯이 마땅히 도와야 할 사람을 만나도 안식일 규정을 내세워 돕지 않았습니다.

연대를 거절하는 반사회적 행위를 사이코패시(Psychopathy)라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주일미사 참례가 어려워지거나 제한되는

작금의 상황에서도 주일에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계명은 어김없이 지켜져야 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주일미사를 거르거나,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경우에도 미사 봉헌만으로 때우는

우리네 주일미사 풍토에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실천은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줍니다.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들은 주일이 되면 공소에 모여 예절을 지냈습니다.

사제가 태부족하던 시절이라 미사는 일 년에 한 두 번 할까 말까 한 실정에서

교우촌의 으뜸가는 일꾼은 공소회장이었습니다.

공소회장의 직분은 주일에 공소예절을 주관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교리를 가르치는 일,

혼배와 장례 등 준성사도 주관하고, 교우들 집안의 대소사에도 자문을 해 주며,

공동으로 경작하거나 제작하는 공동 노동에도 지도해야 했습니다.

주간 평일에는 각자 자기 일과 자기 집안일에 몰두하지만 주일이야말로 공소회장이

주관하여 마을의 공동선을 위한 모임도 하고 결정도 내리며

성영회의 활동을 통해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말 그대로 주님의 날이면서 또한 공동체의 날이었습니다.

공소예절에서 공소회장이 행하는 강론의 초점도 여기에 맞추어 작성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기 위한 사도직 활동이 다양하게 조직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지역 사회에서 공동선을 위한 지향으로 활동하고 있는 풀뿌리 모임과도 연대할 필요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특히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약자들은 누구인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에 행해지는 애덕활동에는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그 의미와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전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열심한데 그 자녀들이 냉담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 대부분은 이런 주일 애덕실천 활동을 함께 하지 않고 미사만으로 때우거나

그것도 각자 따로 미사에 참석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박해시대 교우촌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개인주의적 일탈행위입니다.

 

  요즘에는 하도 우리네 신앙이 개인주의화, 사사화되어 버려서

이런 공동체적인 애덕 실천 활동 자체를 보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당의 주일미사 강론은 주일에 행하기 위한

애덕실천 활동을 반드시 포함시켜 행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본당의 사도직 조직활동 역시 신자 가정들이 공동으로 이런 애덕 실천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해야 할

입니다.

제대로된 신자 가정이라면 가장 정성을 들여서 행해야 할 일이 주일날의 애덕 실천이요,

그 다음이 평일의 가정 기도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