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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작성자구유|작성시간21.01.19|조회수130 목록 댓글 1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히브 5,10-20; 마르 2,23-28 / 연중 제2주간 화요일; 2021.1.19.; 이기우 신부

 

오는 바오로의 회심 축일(1.25)을 앞두고 그의 신앙과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는 이즈음에 오늘 말씀에 비추어 부각되는 주제는 희망과 계약이고,

그 내용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현장선교입니다.

 

독서에는 히브리인들의 전통을 상기시키며 마치 닻과 같아서 안전하고 견고한 희망을

간직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 본보기로 제시된 인물은 그들의 으뜸가는 조상인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처음에 살던 고향 땅은 수메르 문명권으로서 아직 하느님을 모른 채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기에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고향 땅을 떠나서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처음으로 들려온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일흔 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느님께서는,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히브 6,14)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그의 후손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 하늘의 별들이나 바다의 모래처럼

많이 불어나게 해 주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끈기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백 살이었고, 약속된 실현의 실상은 외아들 이사악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축복의 내용이 빈약하고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같이 보입니다만,

그 다음 대인 야곱에 이르러 열두 아들을 얻었고 그들이 이집트로 내려가서는

4백여 년만에 60여 만명에 이르는 큰 인구를 가진 민족으로 불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시켜서 그 이집트 땅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지요.

이러한 과정 전체가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실현이었고,

그 열매는 하느님과 히브리인들과 맺으신 시나이 계약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계약을 맺게 된 연유는 하느님께서 부르셨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억울하게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시고 공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7-10).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갈릴래아 지방의 여러 고을들을 다니시면서 아프고 마귀 들려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들의 고난에 함께 하셨고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어 주셨으며,

할 수 있는 한 기적을 일으켜서라도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옛날 모세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셨던 일처럼, 고난받고 울부짖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해방시켜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가고자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그 해방의 과업을 멈출 수는 없었고,

오히려 해방의 과업을 기억하자고 제정된 안식일에는 더욱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이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네들은 무조건 안식일에는 그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답답해지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타이르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7-28).

고달프게 살아가면서 고통당하고 때로 하느님께 울부짖는 사람들의 현실은 외면한 채로

율법 조문에만 매달리고 있었던 백면서생(白面書生)들에게

안식일 계명이 포함된 십계명의 정수에 대해서 한 수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은 속박이 아니라 해방의 길잡이라는 시나이 계약을 상기시켜 주신 겁니다.

 

히브리 서간의 저자도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히브 6,10-12).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벼락치는 소리 속에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 크게 회심하게 된

바오로도 14년 동안이나 구약의 율법에 대해 숙고한 끝에 다시 선교사의 길로 나서면서,

소아시아와 그리스 일대에 이르기까지 그 멀고 먼 길로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앉아서 율법 책을 뒤적이기보다 사람들이 고난받는 삶의 현장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이 ‘찾아가는 선교’는 그의 활동을 바리사이들과 구분짓는 특징이었습니다.

20여 년에 걸친 세 번의 선교여행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라는 데도 없었고 가야할 곳이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었지만,

사도 바오로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사람들이 사는 현장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 찾아가는 선교로써 사도 바오로가 보여준 신앙의 모범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실제로

사람들의 고난받는 삶과 일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찾아서 신앙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하도록 재촉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는 일이요, 우리의 인내와 희망이 밝혀주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복음환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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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요셉-막내165 | 작성시간 21.01.20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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