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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만세!”에 담긴 뜻과 파장

작성자구유|작성시간21.02.28|조회수161 목록 댓글 1

 

 

“대한독립만세!”에 담긴 뜻과 파장

 

다니 9,4-10; 루카 6,36-38 / 사순 제2주간 월요일; 2021.3.1.; 이기우 신부

 

사순 제2주간 월요일인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1905년에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후 1910년에 강제합방(强制合邦)으로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고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민족 전체가 노예가 되자 이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 합방

조약의 무효와 나라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을 3·1 만세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1919년 이 날에 발표된 독립선언서에는 나라의 기원을 기원전 2333년에 이 땅에 처음으로 세워진

고조선으로 잡아 단기(檀紀)를 서기(西紀)와 함께 공표함으로써 이 나라의 역사가 오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음을 밝혔으며, 새로이 세울 나라의 정체성으로서 고조선 이래 고구려·신라·백제, 고려와

조선을 이어오며 이 땅에 대대로 살아온 한(韓) 민족의 사상을 담았습니다.

 

본시 이 사건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일제에 의해 독살되어 숨졌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 장례일이었던 3월 3일을 앞두고 3월 1일에 한반도 전역에서 한 해 내내 봉기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특히 3월부터 5월까지 석 달 동안에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전국 230개의 군(郡)에서 2백만 명 이상이 천 5백여 회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평화 시위를 일제는 총칼을 앞세우고

폭력으로 진압하자 무장투쟁으로 변해갔습니다.

그 결과 공식집계로도 7천 5백여 명이 살해되고 4만 6천여 명이 체포되었으며, 만 6천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그리고 체포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잔학한 고문과 태형으로 옥사(獄死)했습니다.

당시 인구가 2천만 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만 해도 인구의 1/10 정도이니까 이들을 돕거나 간접적으로 참가한 이들까지 하면

극소수 친일파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 민족이 참여하여 대규모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지식인과 소수 지도자로 시작된 움직임이 대중의 참여로 명실상부한

민족운동으로 전환되면서,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의 각성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민족 성원 대부분의 각성이 이루어진 것은 아마 한 민족 오천 년 역사상 초유의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3·1 독립만세 운동을 계기로 그 다음 달인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국호로 하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이는 국운이 기울어가던 1897년에 세워지고 1910년에 한일 강제합방으로

멸망한 ‘대한제국’(大韓帝國)에 대해서 ‘한국’(韓國)이라는 국호는 계승을 하지만 이제는

군주에게 맡기는 대신에 백성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민중의 각성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제국’(帝國)이 아니라 ‘민국’(民國)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1948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3·1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함을 천명하였습니다.

나라의 정체는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라는 삼권분립(三權分立)의 원칙과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을 헌번 제1조에 담았습니다.

1919년 3월에 민중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만세시위운동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민주주의의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진전이었습니다.

 

한 민족의 ‘한’을 한자로는 성씨로도 쓰고 나라 이름으로도 쓰는 ‘韓’으로 표기합니다만,

이는 그 음을 빌려와서 썼던 것이고 본래는 크다는 뜻의 우리 말 한을 아래 아(ㆍ)를 써서 써 왔었습니다.

백 년 전 독립선언서에 담겼던 그 사상은 바로 한 민족이 본래 품어 왔고 실현해 왔던 그 뜻,

즉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라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독립선언서에 담겼던 그 “하늘의 뜻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독립하려던 바는

일제의 강점에서 풀려난 지 70년이 지나가는 지금에서야 실현되어 가는 듯합니다.

일제로부터 풀려나서도 강대국들에 의해서 분단과 전쟁,

빈곤과 독재의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방역을 비롯하여

산업과 문화와 정치와 국방 등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 세계의 호응을 받고 있는 한류를 보면,

“원래부터 풍부하다고 자부해온 독창성이 발휘된 우수한 문화”의 결과라고 보입니다.

국난이 닥칠 때마다 단결하여 보란 듯이 극복해 낸 그 길에 “양심과 진리가 빛을 비추어주고” 있다고

여겨질 뿐만 아니라, “수천 년 전 조상의 영혼이 안에서 도와줄 것이고,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지켜줄 것”

이라던 그 희망대로 앞으로 우리 한 민족은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은 주변 민족들을 야만적인 오랑캐로 보는 나머지 세상의 중심이 되겠다고 자부하지도 않았고,

다른 민족들을 힘으로 억눌러서는 노예로 삼아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이토록 도덕적으로 선한 이념과 사상을 그 오랜 세월 동안 지녀온 민족은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저 양심과 진리에 따라서 더불어 평화로이 살고자 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렇듯 정신적 토양이 비옥했기 때문에 역시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복음 진리를 스스로 찾아 들여오는 오묘한 섭리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와 부활을 핵심으로 하는 그리스도 신앙에 있어서 준비된 정신적 토양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신앙 열기가 식어가고 있고, 동양에서도 다른 나라들에서는 불투명한 가운데,

우리 한 민족의 선교적 전망이 밝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민족 구성원들에게 입교 세례를 권면하기에 앞서서,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이 먼저 민족의 고난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서 다 함께 희망을 찾으려는

토착화 노력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천주교 신자들은 백 년 전 삼일 만세운동에서

천도교인, 개신교인, 불교인들에 뒤처졌던 바를 보속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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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요셉-막내165 | 작성시간 21.02.28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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