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빛이신 메시아
이사 49,1-6; 요한 13,21-38 / 2021.3.30.; 성주간 화요일; 이기우 신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
이 말씀은 ‘주님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이사야가 전한 메시아 예언 중 둘째 노래의 결론입니다.
이에 따르면 메시아께서 장차 오시면 세 가지 역할을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의 삶에서 실현된 바를 확인해 보면 이러합니다.
첫째는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는 일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서,
과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제자들을 불러 모으심으로써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지파별 혈통으로가 아니라 당신께 대한 신앙으로,
그리고 열두 지파의 숫자만큼 열두 명으로 제자단을 채우셨습니다.
둘째는 그 열두 제자를 주춧돌로 하여 ‘이스라엘의 생존자들’,
다시 말하면 우상숭배에 물들어 메시아도 알아보지 못한 유다인들을
제외시키고 하느님 신앙에 충실한 아나빔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어(마르 6,7-13) 또 불러 모으신
예순 제자들까지 해서 일흔두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루카 10,1-12).
이 일흔두 제자들 말고도 니코데모, 아리마태아의 요셉, 라자로 등을
비롯한 토박이 제자들까지 합하여 도합 백 스무 명이 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스카리옷 유다가 떠나간 자리에 마티아를 뽑아서 사도단의 규모를
예수님께서 애초에 선택하신 대로 열둘로 채우고자 모인 이들입니다(사도 1,15).
그런데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었고, 수산나, 요안나, 막달라 마리아, 라자로의 두 동생인 마르타와
마리아 등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도 들던 여인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으뜸이 바로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이들까지가 모세 시절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선택된 백성의 혈통 중에서 예수님 곁에 남은 자들입니다.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이들만 이렇고,
익명으로 존재했으나 실질적으로 활약했던 아나빔들은 초대교회에서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남은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은 것이 셋째 역할인데, 애초에 열두 제자 중 하나로 부름을 받았던
이스카리옷 유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스승을 팔아넘기는 배신을 저질렀고,
열두 제자 중 수제자로 임명을 받았던 베드로는 믿음이 약해져서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배신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뭇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빛을 전하는
이 세 번째 과정은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2천 년 동안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이미 전해진 지금,
어느 민족에게서나 실현되어야 할 이 과정이 우리 민족에게서는 어떻게 실현되어야 할까요?
우리 민족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현실에 비추어 세 가지가 두드러집니다.
첫째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제천의식(祭天儀式)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온 하느님 신앙의 전통을 인식하고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는 한민족이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천손의식(天孫意識)의 발로였는데,
아담처럼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빌고 노아처럼 감사를 드리는 한편,
축복을 바라는 제사의 전통을 계승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미사 중 성찬례로 거행되는 천주교의 제사도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조상제사 문제로 끔찍한 박해까지 받았던 한국 천주교인들한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전통입니다.
제사는 하느님께만 드리는 것이고 조상께 대해서는 차례(茶禮)상을 차려서 공경을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주일미사 참례의 의무는 지켜져야 합니다.
둘째는 공동체적인 문화를 이룩해온 역사를 계승해야 합니다.
한국어에는 ‘우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복수 1인칭 소유격으로서의 ‘우리’라는 표현은 어느 나라말이나 있기 마련이지만,
단수 소유격 대명사로도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은 한민족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와 ‘우리 겨레’를 비롯해서, ‘우리 집’,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 ‘우리 아들’, ‘우리 딸’ 등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용례가 그러합니다.
사실 이는 성경에서부터 유래된 공동체적 언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직 성자와 성령의 존재와 역할이
명시적으로 드러나기 전인데도, ‘우리’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삼위로서 일체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표현인 ‘우리’인 것입니다.
개인의 존엄성이 짓밟히지 않고 존중되면서도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선의 문화를 꽃피워야 합니다.
셋째는 신기하게도 그 옛날부터 하느님께서 삼신(三神)이심을
알아온 우리 민족에게 삼위일체의 계시를 전해주는 일입니다.
우리 민족의 찬란했던 옛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나 민족 종교에심취한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환인과 환웅과 단군을 신으로 모십니다. 하느님께 대해 무지한 소행입니다.
그들은 삼신이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로서 공경의 대상일 뿐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십니다. 이에 대해서는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성령의 이끄심을 체험시켜 주는 길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요컨대, 우리 민족이 뭇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빛을 전하자면,
이러한 최고선의 가치를 엄정하게 확립한 바탕 위에 공동선을 추구해야만 현재 상승세를 타고 있는
국운도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류가 매력을 발산하고 국격이 높아지는 일은 그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