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연애를 하면서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상대방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어떤 옷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곳을 싫어하는지, 또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시시콜콜 묻겠지요. 그리고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데도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한 두 시간이 금방 흘렀을 것입니다. 이것도 부족해서 전화나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결혼하고 1년만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더 이상 서로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연애를 하면서 사랑을 많이 느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상대방을 알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되어서는 상대방을 알려는 노력이 줄어들고 그래서 사랑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오랜 세월을 같이 밥을 가장 많이 먹었지만 왜 그렇게 싸우고 또 싸웠던 걸까요? 계속해서 전쟁을 치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이것을 좋아할 거야,’, ‘이래야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야.’ 등등의 혼자만의 생각을 내밀었기에 전쟁을 계속해서 치룰 수밖에 없던 것이지요. 사랑은 상대방을 알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잘 아는 것 같아도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알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의 마음도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가르쳐주십니다. 비유로 이야기해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들이 보다 더 쉽게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사랑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쉽게 이해하라고 말씀하신 비유를 또 다시 쉽게 제자들에게 설명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더불어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도 알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주님의 사랑을 알려고도 또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기만을, 그래서 편하고 쉽게 사는 것이 커다란 행복인 양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과연 주님께 대한 사랑이 나올 수 있을까요?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말이지요. 이제는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인생을 아는 자는 고난 또한 기회라는 것을 안다(노만 빈센트 필). 오상의 비오 신부님이십니다. 가장 작고 가벼운 짐(‘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중에서) 언제나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사나이가 있었다. 사나이는 자신을 늘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마음 사람들이 다 모여서 멀리 있는 곳으로 짐을 옮기게 되었다. 사나이도 다른 사람들처럼 짐을 짊어지고 나섰다. 한참 가다보니 사나이는 다른 이들보다 자신의 짐이 더 무겁고 커 보여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난 역시 재수가 없어!” 그는 갑자기 힘이 빠져 가장 뒤쳐져 걸었다. 길이 너무 멀어 마을 사람들은 중간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게 되었다. 이때다 싶어, 사나이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몰래 일어나 짐을 쌓아둔 곳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사나이는 어둠 속에서 짐을 하나하나 들어 보았다. 그리고는 그 중 가장 작고 가벼운 짐에다 자기만 아는 표시를 해두었다. 날이 밝자 그는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젯밤에 몰래 표시해 둔 짐을 찾았다. 그런데 그 짐은 바로 어제 온종일 자신이 불평하고 지고 온 그 짐이었다. 내 짐이 가장 무거운 것처럼 생각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가벼운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입장이 아닌, 주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피에트렐치나의 십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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