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주 신학교에서 강의를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일이 있어서 평소보다 약간 늦게 성지에서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걱정할 것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지에서 신학교까지 넉넉하게 2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차가 갑작스럽게 제 앞으로 끼어든 것입니다. 사고가 날 뻔 했지요. 그래도 ‘이 분도 바쁜가보다.’라는 생각에 그렇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뒤에 생겼습니다. 글쎄 끼어든 차가 속도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시속 60Km 구간인데 거의 40Km 속도로 운전을 하십니다. 더군다나 운전해서 가는 길이 좁아서 추월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차를 쫓아가면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결국 신학교 강의에 늦고 말았습니다. 강의를 위해 노트북과 프로젝트 설치도 해야 하기 때문에, 강의를 더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지요. 한 번도 강의에 늦은 적이 없었던 저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분도 안 좋고, 화도 났습니다. 강의 전에 시작기도를 하는데 문득 이렇게 화를 안고서 강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 앞의 차 때문에 늦었다고 분노를 갖고 있어봐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요. 분노를 갖고 있으면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차서 모든 것이 좋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이날 신학생들의 좋지 않은 모습들이 눈에 보이더군요. 그래서 이러한 말로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제 앞으로 끼어든 차 때문에 강의가 조금 늦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명강의는 5분 늦게 시작하고 5분 빨리 끝내는 것이라면서요? 그래서 5분 늦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고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인 세네카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분노를 즐거움으로 승화하라. 분노의 대상은 분노를 극복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신일 뿐이다.’ 세상은 자신이 손해를 볼 때 분노를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고 바보 같다는 식의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에 속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즉,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취하면 세상 사람들의 비판과 반대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속한 사람은 세상의 원칙과 거리를 두면서 주님 뜻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십니까? 내 편, 네 편을 나눠서 사랑을 실천하는 세상의 원칙이 아니라, 모두를 사랑하셨던 주님을 따르는 주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라. 상처가 기적을 선물할 때까지(이희숙). 베트남의 라방 성모님. 공유 경제(‘좋은 생각’ 중에서)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 창립자 ‘브라이언 체스키’에게 물었다. “공유 경제가 왜 필요한가요?” 그가 답했다. “전동 드릴은 미국에 8,000만 개나 있지만 사용 시간은 평균 13분입니다. 그런데 모두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세상의 원칙은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원칙은 많은 것을 나눠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모습을 쫓고 있었을까요? ![]()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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