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복음에 따라 살아가고자 우리는 ‘순명’(順命, oboedientia)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리 2,8)하셨기에,
그 삶을 본받아 순명의 삶을 살아가라고 교회는 권고합니다.
사제로서 그 삶은 선택이 아닌 의무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순명의 마음을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주교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내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도 있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지만,
저에게 그 일을 명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반대되는 것을 명령하시고, 원하지 않는 것도 명하십니다.
쉬운 길이 있는데 어렵게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령을 따릅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의지를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명령을
따르는 것이 순명’이지만, 가끔은 그 안에 희생과
의무만 있고 기쁨은 사라져 버릴 때도 있는 듯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미나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평생을 주인 곁에서 심부름만 하던 종들에게, 주인이 나누어
준 돈으로 벌이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막막하기도 하고, 주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잘못해서 돈을 잃으면 벌이 기다리고 있음에 두렵기도 했겠지요.
어떤 종은 주인이 이 과제를 주며 명령한
이유와 주인의 생각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행동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도와는 다르다고 비판하고
짜증 내고 불평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그 과제 안에서 자신의 이유를 찾으려 고민합니다.
그러나 어떤 종은 불평과 불만, 두려움과 나태함으로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고 그냥 “예.”라고 대답만 할 뿐입니다.
순명의 가치는 같은 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을 위에서 내려다볼 때와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모습은 다르지만 분명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이해하려 고민하고, 행동하려 고민하고,
같은 것을 같은 모습으로 바라보며 고민하는 흔적이
순명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순명의 길을 오늘도 나섭니다.
- 최종훈 토마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