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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 신부 강론

[스크랩] 2026년 3월 12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하느님께로 돌아와 사랑하는 회개>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10:41|조회수36 목록 댓글 0

2026년 3월 12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호세 14,2-10; 마르 12,28ㄱㄷ-34

 

제1독서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순 3주 금요일  

 

 

하느님께로 돌아와 사랑하는 회개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14,2) 하고 외칩니다. 감정적으로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완전히 돌이키라(שׁוּב)는 요청입니다. 또한 “황소가 아니라 입술을 바친다"는 것은 제물 대신 진실한 고백의 말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희생 제물보다 마음의 회개를 바라십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무력 분쟁과 난민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회개의 요청은 무관심과 과도한 소비, 그리고 약자와 피조물을 희생시키는 생활 방식을 실제로 바꾸라는 구체적인 부르심입니다.

 

예언자는 또한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14,4)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구원은 전인적인 해방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겠다”(14,5)라고 약속하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의 마음이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는 불안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기술과 경제가 발전했음에도 불안과 고독이 심화되고 있음은, 현대의 ‘군마’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참된 발전이 인간 존엄과 연대를 포함하는 전인적 발전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는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12,28)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쉐마(שְׁמַע), 곧 “들어라”를 인용하시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말하듯 이 사랑은 부분적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회적 양극화와 온라인 공간의 혐오 표현이 확산되는 현실 속에서, 이웃 사랑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언어를 절제하고 진실을 확인하며, 반대자까지도 존엄하게 대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합니다.

 

율법 학자는 이러한 사랑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12,33)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12,34)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통치가 실제 삶에서 이루어지는 상태에 다가섰다는 뜻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나병 환자를 껴안았던 사건은, 사랑이 의식보다 우선함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오늘날 심화되는 경제적 격차와 환경 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책임 있는 소비, 연대의 실천, 평화와 창조 질서의 보전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전례는 호세아의 회개 요청과 마르코 복음의 가장 큰 계명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주님께 돌아서는 회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간 사용, 재정 관리, 사회적 선택 안에서 하느님만이 참된 주님이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형제임을 인식할 때, 상처 입은 세상 안에서도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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