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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 신부 강론

[스크랩] 2026년 6월 12일 금요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그리스도의 성심, 지친 세상을 위한 안식>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6.13|조회수78 목록 댓글 1

2026년 6월 12일 금요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신명 7,6-11; 1요한 4,7-16; 마태 11,25-30

 

제1독서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를 선택하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7,6-11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6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시어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7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8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셔서,
종살이하던 집,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참하느님이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10 또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를 멸망시키시어
직접 갚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 없이 직접 갚으신다.
11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예수성심 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심, 지친 세상을 위한 안식

 

예수 성심은 인간이 멀어질 때에도 먼저 다가오시고 끝까지 충실하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셨다”(신명 7,7-8 참조)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랑하다”(אָהַב)는 계약과 충실함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강하거나 수가 많아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 안에 있었기에 선택되었습니다. 경쟁과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며 지쳐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심은 인간의 존엄이 성취가 아니라 하느님께 먼저 사랑받았다는 사실에서 시작됨을 일깨워줍니다.

 

요한 1서는 이 신비를 더욱 깊이 보여줍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4,8). 그 사랑(ἀγάπη)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무상의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깊은 외로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관계는 많지만 참된 친교는 드물고, 타인의 고통 곁에 머무르는 힘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른다”(4,16)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흔들림 없는 충실함과 내적인 거처에 머물게 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나병 환자를 끌어안으며 이를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의 고통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고 하십니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존재 깊은 곳의 쉼과 회복(ἀναπαύω)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노동과 경쟁, 관계와 불안 속에서 영혼까지 지쳐 있습니다. 때로는 신앙조차 의무와 부담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억압의 종교가 아니라 당신 성심 안에서의 친교를 주십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11,29)라고 하십니다. “온유함”(πραΰς)은 나약함이 아니라 화해된 힘이며, “겸손”(ταπεινός)은 자신을 낮추는 비하가 아니라 하느님 앞의 진실함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권력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과 형제가 됨으로써 이 복음을 살아냈습니다.

 

예수 성심 신심은 단순한 감상적 신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방식을 배우라는 초대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분열과 혐오, 냉혹한 말과 무관심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가족은 갈라지고, 젊은이들은 불안 속에 흔들리며, 가난한 이들과 이주민은 숫자처럼 취급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심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린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상처 입은 이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할 교회를 드러냅니다. 교회가 자비와 따뜻함을 잃을 때, 더 이상 주님의 성심을 비추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을 형제로 바라보았던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오늘 더욱 절실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상처 입은 이를 품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있는지, 아니면 두려움과 조급함 속에 굳어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창한 업적보다 당신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초대하십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가족 안에서 먼저 화해를 청하는 일, 침묵 안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회복하는 일, 가난하고 잊힌 이들에게 다시 다가가는 일에서부터 성심의 삶은 시작됩니다. 세상은 거대한 말보다 그리스도의 성심을 닮은 마음들을 통해 변화됩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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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6.06.13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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