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수요일
2열왕 2,1. 6-14; 마태 6,1-6. 16-18
제1독서
<갑자기 불 병거가 나타나더니,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2,1.6-14
1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들어 올리실 때였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길갈을 떠나 걷다가, 예리코에 도착하자
6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너는 여기 남아 있어라. 주님께서 나를 요르단 강으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고 스승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저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함께 떠났다.
7 예언자들의 무리 가운데 쉰 명이 그들을 따라갔다.
두 사람이 요르단 강 가에 멈추어 서자, 그들도 멀찍이 떨어져 멈추어 섰다.
8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9 강을 건넌 다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너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을 청하여라.”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
10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어려운 청을 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11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12 엘리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자기 옷을 움켜쥐고 두 조각으로 찢었다.
13 엘리사는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집어 들고 되돌아와 요르단 강 가에 섰다.
14 그는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잡고 강물을 치면서,
“주 엘리야의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하고 말하였다.
엘리사가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이렇게 엘리사가 강을 건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11주 수요일
영의 두 몫과 마음의 은밀함
열왕기 하권의 말씀은 엘리야가 하늘로 들려 올라가고 엘리사가 그의 겉옷을 물려받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엘리사는 권력이나 명예를 청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승님 영의 두 몫”을 청합니다(2,9). 생명의 힘과 사명을 지탱해 주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현존을 청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자기 힘만으로는 예언자의 길을 이어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이가 치열하게 일하고 성과를 내며 겉으로는 신앙인의 모습을 유지하지만, 내면은 지쳐 있고 공허합니다.
모든 것을 성과와 드러남으로 평가하는 사회에서 신앙인은 하느님의 “겉옷”은 잃어버린 채 신앙의 외형만 붙들고 살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아버지, 나의 아버지!”(2,12)라고 외칩니다. 참된 유산은 물건이 아니라, 겸손히 받아들이는 영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 진리를 더욱 깊게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보이다”(θεαθῆναι)라는 말은 공연이나 구경거리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이 무대가 되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유혹은 여전합니다.
사회관계망 안에서는 자선과 영성마저도 과시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선행을 공개하고 도덕적 인정을 바라며, 심지어 기도마저 자기 이미지를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6,4)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숨은 곳”은 어둠이나 위선의 은폐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의 박수를 위해 행동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 앞에 머무는 마음의 자리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참된 영성이 태어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바로 이러한 마음의 가난을 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성인으로 보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허물어진 성당을 고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이가 그를 실패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허영을 벗어버린 삶 안에서만 복음이 선포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작은 형제”로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쁨은 인정받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드러내야 하는 오늘의 문화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증언은 매우 예언적입니다. 참된 제자는 자신의 중요함을 계속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께 자리를 내어드리면 충분합니다.
엘리사가 조용히 엘리야의 겉옷을 집어 들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날마다 겸손과 침묵 안에서 복음을 다시 받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라는 세 가지 구체적인 실천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없애려 하시지 않고 정화하십니다.
자선은 도덕적 선전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구체적인 연민이 되어야 합니다. 단식은 고행의 과시가 아니라 소비에 대한 내적 자유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가장 깊은 굶주림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이가 외로움과 불안, 삶의 의미 상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식은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잠시 끄는 것일 수도 있고, 즉각적인 인정 욕구를 내려놓는 것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시간을 마련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골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흩어진 마음이 다시 하느님 안에서 쉼을 얻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결국 우리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의 의도를 돌아보라고 초대합니다.
엘리야는 겉옷을 남겨두고 떠났고, 예수님께서는 가면을 벗어놓으라고 요청하십니다. 두 본문 모두 우리를 겉모습에서 마음의 진실로 이끌어 갑니다.
성덕은 특별한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눈길 아래에서 평범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인정 욕구, 영적 피로가 깊어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내면의 침묵을 지키고, 드러나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며, 진실하게 하느님의 영을 찾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혁명적인 행동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을 행하고, 과시하지 않고 기도하며,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자유롭고 가난하며 단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