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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 신부 강론

[스크랩] 연중 제18주일

작성자마태오의제자|작성시간15.08.03|조회수121 목록 댓글 1

<연중 제18주일>(2015. 8. 2.)(요한 6,24-35)


<생명의 빵>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한 6,27)."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예수님께서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양식이 글자 그대로 '썩어서 없어질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썩어서 없어지게 될 허무한 것만 추구하는 사람의 인생은

허무하게 끝나버리게 될 것입니다.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즉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라는 말씀과

"내가 생명의 빵이다." 라는 말씀은

"내가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 라는 약속이고,

"나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다." 라는 선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만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경제 활동을 부정하시는 말씀도 아니고,

지상에서의 인생을 부정하시는 말씀도 아닙니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 노동을 하는 것은 선(善)입니다.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신자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고생하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또 지상에서 인간들이 하고 있는 일들,

학문, 예술, 스포츠 등... 그런 일들도 다 선(善)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들을 모두 부정하고 하늘나라만 강조하신 분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이라는 말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라는 말은

이 세상을 모두 부정하는 허무주의나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입니다.

또 인간의 노동과 학문과 예술 등은 허무한 일이 아닙니다.)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사탄을 쫓아내실 때 하신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이 말씀은, '빵'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빵으로' 라고 표현하지 않으시고,

'빵만으로' 라고 표현하신 것은 빵도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빵으로 유지하는 '생명'은 지상에서 끝나는 '유한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

이 말씀의 '온 세상'이라는 말을 '온 세상의 빵'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온 세상의 빵을 혼자서 독점한다면

평생 배고픔과 굶주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합니다.)


지금 말하는 내용과 잘 연결되는 비유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입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았고,

라자로는 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루카 16,19-21).

두 사람의 처지는 죽은 다음에 저 세상에서 완전히 반대가 됩니다(루카 16,22-23).

부자가 지상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살았던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썩어 없어질 양식'만 얻으려고 힘쓴 사람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지금 라자로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고,

지금 그 부자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살지 마라." 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나중에 자기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고

지금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

영혼은 생각하지 않고 육체의 쾌락만 찾는 것,

옆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고

자기만 즐거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기의 욕망만 채우는 것,

그런 것은 모두 '죄'입니다.


사실 지상에서 라자로처럼 사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닙니다.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는 것은, 또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고,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혼자 힘으로는 안 될 때가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에 비유 속의 부자가 라자로에게 사랑을 제대로 실천했다면,

두 사람은 이승에서도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고,

저승에서도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썩어 없어질 양식'은 혼자서만 배불리 먹는 '이기심'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모두가 함께 배불리 먹는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


'지금 여기에서'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만이

'나중에 저쪽에 갔을 때' 함께 행복하게 사는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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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nee | 작성시간 15.08.03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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