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찾을 수 있는 운동>
자기를 대면할 수 있는 좋은 장치는 바로 운동이다.
인간은 운동을 해야 한다.
숨이 목까지 차올라 옅은 피 냄새가 올라올 정도까지
죽어라 달려 봐야 한다.
그러면서 자기 코를 통해서 나오는 자기 땀냄새를 맡아야 한다.
이때 자신의 영혼에는 온통 자신으로만 가득 찬다.
이때 자기를 느낀다. 운동은 자기를 찾는 일이다.
한계 속에서 자기를 만난다.
머리를 굴리고 혀를 놀려서 뱉어 내는 말들로는
근육에 맺히는 땀으로 배운 것을 절대로 당해 낼 수 없다.
책 속에는 책을 쓴 그 사람이 생각한 길이 있을 뿐이지,
그것이 나의 길은 아니다.
몸을 움직여서 한계를 경험할 때라야, 자기를 극한의 경계선에
서 보게 할 때라야, 자기의 의식 속으로 오히려 자기 자신이 성큼 드러난다.
자기가 자기를 꽉 채우는 이 경험, 오로지 자기 자신이 자신으로만
남는 일이다. 자기를 몸으로 느낄 때가 자신에게는 가장 현실적이다.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대면하는 가장 극적인 장치이다.
헐떡러리는 숨소리, 자기 몸에서 분비되어 자기 코로 다시 돌아오는
땀 냄새, 심장을 터지게 할 것 같은 박동,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자기에게 보여주는 극적인 증거들이다. 운동하면서 보이는
자기보다 더 극적인 자기가 있을까?
독립적 주체가 되는 일은 육체성을 확인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육체를 통해서만 인간은 타인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구별된다.
글쓰기,운동을 주체의 자각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방식으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글쓰기를 하고 자주 시간을 내어 노래를 흥얼거리며 항상 운동으로
자신을 단련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듣기만 해도
얼마나 윤기 나는 사람인가?
(최진석의 "인간의 그리는 무늬"에서)
신영복 교수는 세상을 바꾸는 데는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이,
따뜻한 가슴보다는 실천하는 발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 세상을,나를 바꾸기 위해선 숱한 좋은 말보다는
'발'로 뛰는,실천하는 한해를 보내야겠다
정훈희의 스잔나https://youtu.be/Y9ZJYdjj8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