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기 아가다(1789-1839)는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나 미신을 숭상하는 남자에게 출가하여
오랫동안 남편의 본을 받아 미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교우이던 언니가 그에게
우상의 헛됨과 그것에 드리는 제사의
무익함을 늘 설명하여, "그 귀신들은 모두 헛된
물건이니 믿지 말라"고 자주 일러 주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시고,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다"고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전서 1장 27절에서 말씀하셨듯이,
천주께서는 가끔 세상의 약자를 선택하셔서
속세의 강자를 타도하시는 일을 하신다.
이와 같은 기이한 사실을 우리는
김아기 아가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아기는 사람들이 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우둔한 정신을 타고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언니의 말을 듣고, 김아기는
남편의 책망도 상관하지 않고 집에 꾸며
놓았던 우상과 그림을 불에 던져 버렸다.
신덕과 열심이 지극하여,
김아기의 언니는 그를 영세시키려고
문답과 경문을 가르치려 무진 애를 썼으나,
어떻게 머리가 둔한지 경문 한마디를 가지고
하루종일 가르쳐도 우이독경이었다.
결국 몇 해를 가도 "예수 마리아"
두 마디밖에 외우지 못하였다.
1836년 10월에 체포되어 포청에 끌려갈 때까지,
교리를 배운 것이 없으므로 영세를 못하였다.
이때 김아기는 한아기와 같이 김업이 막달레나의
집에서 잡혔다고 하나 분명하지가 않다.
포청에 끌려가 포장이 "너 같은 숙맥이
성교(聖敎)의 도리를 알아듣겠느냐?"
"나같은 여편네는 예수 마리아밖에 모릅니다."
"만약 너를 형벌하여 죽이기까지 하여도
예수 마리아를 배반하지 않겠느냐?"
"차라리 죽을지언정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
문초와 형벌 중에서도 <예수 마리아>만 부르면서,
초인적인 용맹과 굳셈을 드러내어 주위
사람들이 다 놀랐다고 한다. 이리하여 혹형을
당하였으나 그의 대답은 여전하였으므로,
포장은 그를 형조로 이송하였다.
김아기 감옥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감방에 갇혀있는 교우들이 환성으로
김아기를 맞이하고 웃으며 말하기를,
"예수 마리아밖에 모르는
김아기가 들어온다" 하였다.
교우들이 그의 용감함을 칭찬하고, 중요한
교리를 가르친 후, 옥중에서 대세를 주었다.
대세의 은혜로 더욱 힘을 입어
세 차례의 문초와 형벌도,
전과 같이 대담과 용기로 극복하였다.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옥고생활 4년만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다른 8명과 함께 참수치명하니,
그때 그의 나이 50세였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로마10,17)라는 말씀대로
김아기는 첫번째로 자신의 언니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접하고,
미신과 결별하는 단순성과 용감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큰 줄기에서 하느님을
알아 듣고, <예수 마리아>라는 호칭을
자주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
그 당시 천주교인들의 생활 속에 묻어 있는
기도 습관과 주님을 늘 의식하며 사는
태도는 몸에 배여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머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진리를 깨닫는 능력인 지성과
교리를 잘 알아듣는 이해력은
성령께서 밝혀 주셔야 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알아 들었어도 암기력은
타고나야 되는데, 그렇지 못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단순 노동과 육신으로
봉사하는 일은 좋아하고 잘하지만,
이론적으로 교리를 가르치거나
조금은 딱딱한 강론 시간에는
무조건 눈을 감고 주무시는 분들이 있다.
그쪽 머리가 열리지 않았거나
그걸 알아 들을려고 하는 자세와 태도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김아기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론적으로는 교리가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되었어도, 주님을 알아듣고 고백하는
신앙은 확실히 주어졌고,
그러기에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다.
적어도 김아기가 세례(수세; 水洗)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혈세(血洗)인 순교를 지향하고 간절히 열망하며
고문을 견뎌내고 신앙을 증거하는 것은
그녀 안에 이미
성령께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마태10,32)
이렇게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복음의 진리와 사상을 잘 알아 듣지 못해도,
박해와 핍박과 고문 가운데
신앙을 증거하고 체험적 신앙을 삶으로서,
더욱 더 믿음이 깊어지고,
진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혀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 마리아>밖에 모르는 김아기는
감옥에서 동료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서
또 한 단계 믿음의 성장을 도모하며,
옥중에서 더 깊은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치명(致命)을 통해 주님을 증거하고,
천국가는 길이 바로 순교(殉敎)임을 자각하고 있는
김아기가 부른 <예수 마리아>는
일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며 부르는
<예수 마리아>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안에 자신의 실존과 목숨과 구원을
담고 있는 호칭이었다.
드디어 그는 옥중에서 더 많은 교리를 배우고,
위의 귀하고 소중한 그림처럼 물로 대세를 받고,
김아기 아가다가 되었다.
9월 순교자 성월에 감옥에서 대세받은
김아기 아가다 성녀를 소개하는 것은
<친언니의 소개와 가르침-박해-증거-
옥중 가르침-대세-순교>라는 단계를 거쳐
주님께 합일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싶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며,
지금 자신의 십자가와 고통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보다도
더 힘든 고난의 극한적 상황에서도
신앙을 증거하는 성녀의 모습 속에서
영적 자극을 받기를 바래서이다.
그러나 교리적으로는,
현실적으로 임종 전 비상세례를 받은 사람,
물로만 세례받은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났을 경우는
반드시 다시 교리를 배워야 하고,
세례 예식 중에 빠진 부분인
기름 바르는 예식등을 통해 세례를 보충하는
보례(補禮)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사제가 고해성사를 통해 주시는
보속으로 묵주기도 정도는 할 수 있기 위해서
사도신경,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은 외워서
암기하도록 노력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죽었다 살아나서 매일 TV는 보면서도,
성호경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할머니를
보면서 너무나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알 수 있는 것을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것은 무지(無知)의 죄이다.
김아기 아가다 성녀의 세례의 여정,
순교의 여정을 보면서,
루카 복음 24장 32절의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주님이 마음을 열어 주실 때까지, 적어도
진리를 갈망하며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8,3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