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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곡 성석린 선생께 문인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문암 역사작가의 보금자리-2024-10-01]

작성자문암|작성시간24.10.01|조회수35 목록 댓글 0

" 送門生金海敎授官吳一德 "

위의 글은 며칠전, 독곡 성석린 선생의 문집을 보다가 발견한 시의

제목이다.

해석하면 김해교수로 떠나는 문생(門生) 오일덕을 전송하는

내용으로 이해되었다.

특히 '문생'이란 단어가 시선을 끌었는데 문암은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제자를 일컫는 '문인(門人)'과 같은 의미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한학에 조예가 깊은 지인에게 '문생'과 '문인'이

같은 의미인지 문의한 결과 문생이 제자와 같은 의미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를 통해 독곡 선생 문하에 그 규모가 어느정도였는지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공식적인 문인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위의 시에 등장하는 오일덕공은 자료를 조사한 결과 1390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추가로 확인한 두명의 인물이 있는데 좀더 고증할 대목이 있어서

일단 문인이라는 것을 보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감찰공 박여해

선조와 평도공 박은 선조이다.

감찰공 같은 경우 독곡 선생이 감찰공의 장인되시는 운암 김윤남공의

만시(輓詩)를 지으신 점과 감찰공의 선친 판서공 박상진 선조가 독곡

선생보다 1세 연하라는 점과 함께 백부가 되시는 문정공 박상충 선조가

독곡 선생의 친구였다는 점을 주목한다.

또한 평도공이 6세에 선친 문정공이 별세하신 이후 외숙이신 목은 이색

선생과 함께 독곡 선생도 평도공에게 큰 힘이 되셨을 것으로 본다.

덧붙이면 독곡 선생이 평도공을 아들같이 생각하였고 평도공 또한 독곡

선생을 아버님 같이 따르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내용이 독곡

선생께 올린 시에 잘나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을 분석해 볼 때 아직 확신 단계는 아니나 감찰공과

평도공도 독곡 선생의 문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바야흐로 10월 9일이면 감찰공을 연구한지 5개월이 되는 순간인데 그동안

조사한 결과 감찰공 자체적인 기록으론 그 생애를 복원하는 것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특히 독곡 선생과의 연관성을 추적하여 현재 결정적인

단서가 포착되지 않고 있는 감찰공의 흔적을 밝혀 낼 것이다.

2024년 10월 1일(화) 문 암 올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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