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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신부가 되는 길은 매우 까다로웠다. 수련기간 2년과 철학공부 2년, 실습기간 1~2년 및 신학공부 4년 등 10년 가까운 양성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기간동안 그는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생각을 더욱 심화시켰고, 1987년 드디어 신부 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예수회에 입회한지 10년만의 일이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펼치다 구속된 이영찬 신부 이야기다. 그는 10월 24일 연행, 26일 구속된 이후 20여일째 영어(囹圄)의 몸이다. 제주해군기지와 관련 가톨릭 사제가 구속된 것은 지난 3월 김정욱 신부에 이어 두번째다.
이영찬 신부가 '옥중 편지'를 썼다. 어찌하다 보니 제주도 경찰서 유치장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는 그는 "일년 전 제주여행을 왔다가 강정을 보고 '시대의 아픔'으로 여겨서 투신(投身)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곤 "물리적으로 옥에 갇혀 있지만 '마음의 옥(獄)'이 더 문제다"라고 토로했다.
이 신부는 제주해군기지를 '평화 논리와 힘의 논리의 각축장'이라고 보았다. 요약하면 "제주해군기지는 우리나라 안보용이 아니며 단지 미국이 중국을 제압하기 위한 미사일기지로서의 무기경쟁을 가속화시키는 단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제주해군기지는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 기준으로 설계가 되었고 군항(軍港) 위주의 설계임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국무총리실의 크루즈 선박 입출항 검증위원회에서도 민항(民港)이 아님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민군복합형 약속'은 이미 깨졌다. 그러기에 강정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이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것은 '정당한 항의'라는 것이다.
제주해군기지와 관련 그동안 지역주민 등 300여명이 재판을 받거나 전과자로 전락(轉落)했다. 현재도 이영찬 신부를 비롯해 6명이 제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국책 사업임을 빌미로 한 무분별한 공권력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또 있다. 파렴치범까지 인권(人權)을 내세워 불구속 재판을 강조하면서 유독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도 없는, 그것도 예순이 넘은 신부를 여태 가둬 놓은 당국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와 관련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달 30일 논평을 내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자신을 던지고, 고통받는 이웃의 손을 잡고 동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며 이영찬 신부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다. 예수회 한국관구도 "구속된 이 신부를 지지하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행동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영찬 신부는 옥중 서신 말미에 "제주도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아니라 고래 싸움을 말리고 생명(生命)과 평화(平和)가 충만한 섬이 되길 기원한다"고 썼다. 그리고 천주교제주교구는 12일 저녁 강우일 주교의 집전 하에 '예수회 이영찬 신부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시국미사'를 개최했다.
지금 제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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