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한다. SNS나 광고 혹은 영화 속 로맨틱한 장면을 통해서도 성탄 소식이 전해진다. 쇼윈도에 비치는 화려한 전선 위에서, 그리고 거룩한 성당 제대 앞 소품에서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도래한다.
전원을 켜고 끄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기분 좋게 해주는 ‘이미지’와 ‘소리’를 통해 성탄의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성탄이 고급스러운 선물과 화려한 장식과 상업적 광고에서 소비되는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성탄이 상업 브랜드 같은 존재가 되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감정소비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우리는 ‘접속’의 ‘잇는 관계’에 많이 익숙하다. 가볍게 손가락만 움직여도 많은 것과 연결되는 접속의 경험에서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한다. 전자카드를 주고받고 성탄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다양한 문화 상품을 소비하면서 성탄 시즌을 보낸다.
그런데 접속이란 것은 일방적인 기대감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방식이기에 언제 끊어질지 몰라 불안하다. 그래서 자꾸 확인한다. 하염없이 손가락을 눌러대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어 집착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감정의 깊이나 경험의 공유는 제한적이다.
반면 ‘접촉’은 ‘닿는 관계’다. 함께 다가가 손을 뻗으면 몸도 움직인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닿는’ 경험은 지문처럼 굳건해서 떨어져 있어도 온기가 느껴지고 보지 않아도 보인다. 접촉의 경험은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기억 속에 남아 오래도록 추억하면서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접속’으로 간편하게 자주 경험하면서 ‘접촉’으로 내면의 변화를 주는 다양한 경험을 잃어가고 있다. 스크린 속 슈퍼스타의 화려함에 취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으로 오시는 예수님과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어쩌면 불편할 수 있고 낯설기도 한 육화의 사건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접촉’은 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영적 차원에서 ‘닿는 관계’다. 타인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고 감정과 정서를 공유한다. 타인이 나의 공간과 시간 속에 들어와야 하고 나 역시 타인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간편한 접속에 익숙한 우리가 몸과 정신을 움직여 접촉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성탄은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받고 즐기고 축하를 전하는 ‘접속’만은 아닐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직접 내려오신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접촉’의 사건이다. 담 너머 구경하듯 스크린 속 디지털 아기 예수님을 구경하는 성탄이 성탄일 수가 없다. 디지털 자동화 시대를 살면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연례 행사처럼 접속으로 잇는 이벤트 소비가 아니길 바란다.
그저 손가락을 좌우로 위아래로 스크롤 하면서 보기만 하는 구경꾼이 아니길. 누군가의 생일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화려한 장식과 선물에만 도취해 즐기지 않기를. 남에게 베푼 봉사나 자선활동을 소셜미디어를 장식하는데 이용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보잘 것 없는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이 나의 가장 연약한 마음에서 태어나기를. 나를 변화시키는 거룩한 탄생이 내 안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탄은 다름 아닌 지금 내 안에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는 구원의 날이다. 행사나 관습이 아닌 ‘내 안에 예수님이 태어나 숨 쉬게 하는’(갈라 2,20 참조) 구체적인 노력이 성탄의 진정한 완성이 아닐까 싶다. 세상과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서로의 시간과 공간에 들어가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고 감동적인 육화의 신비가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작은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알아보아야겠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빛은 늘 그 자리에서 어둠인 우리를 비춘다. 우린 그 빛으로 인해 세상을 만지고 보고 경험하며 걸어간다. 그런데 화려한 디지털 인공 빛으로 인해 내 앞을 안내해주던 주님의 빛을 알아보지 못한다. 작은 별빛처럼 찾아와 내 영혼을 안내해준 말씀이 사랑으로 태어난 성탄이다. 하늘과 땅과의 사랑의 대화가 시작되는 아름답고도 참으로 복된 우리 모두의 성탄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만약 지금 대한민국에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다면,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혹시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서 실시간 방송을 통해 화려한 무대 위에서 모습을 드러낼까요? 마리아와 요셉은 수많은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나눌까요?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종교인 그리고 연예인까지 선물을 들고 구름떼처럼 몰려들까요?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접속해 아기 예수님 탄생을 기뻐할까요? 그렇다면 우리는요?
성탄입니다! 성탄이 성탄이 되기 위해 진짜 아기 예수님이 우리 안에 탄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이미 탄생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바빠서 혹은 무심해서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지만 우리는 결국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는지도”(요한 1,9-10 참조) 모르겠습니다. 잠시 깨어 알아채기만 해도 보이는 우리 마음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꼭 만날 수 있는 성탄이길 바랍니다.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