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
강동진 신부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피를 나눈 가족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 그래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존재로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혈연관계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더 가깝게 여기지는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있어 가까운 사람의 기준은 ‘누가 나와 피를 나누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있는가’였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기준이 이러하다보니 예수님께는 가족의 개념도 달랐습니다.
우리는 피를 나눈 부모 형제가 가족이지만 예수님께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가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가족의 개념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것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지만
내가 더 가깝고 소중하게 여겨야 할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혈연보다는 영적인 유대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전제는 내가 먼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 전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유대로 맺어진 가족이 체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 전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나에게 영적 유대로 결합된 가족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강동진 신부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피를 나눈 가족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 그래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존재로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혈연관계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더 가깝게 여기지는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있어 가까운 사람의 기준은 ‘누가 나와 피를 나누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있는가’였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기준이 이러하다보니 예수님께는 가족의 개념도 달랐습니다.
우리는 피를 나눈 부모 형제가 가족이지만 예수님께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가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가족의 개념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것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지만
내가 더 가깝고 소중하게 여겨야 할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혈연보다는 영적인 유대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전제는 내가 먼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 전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유대로 맺어진 가족이 체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 전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나에게 영적 유대로 결합된 가족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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