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되찾은 가출
김정일 신부
사춘기가 한창일 무렵 부모님과 세상에 대한 반감은 기성세대들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와 간섭으로 느껴졌습니다. 자유를 보장받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자유’ 란 내가 하는 일에 ‘상관하지 말라’ 는 일종의 ‘관계의 차단’ 이었습니다.
그걸 그때는 ‘독립’ 이라 불렀습니다.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를 꿈꿨습니다.
‘이놈의 집구석 내가 나간다, 나가!’ 하던 차에 그날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부모님의 잔소리에
급기야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냐’ 고 소리 지르며 뛰쳐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딱히 갈 곳도 마땅찮고 돈도 없던 터라 배는 고프지 잠은 자야겠지, 저는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간섭을 차단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초단기 ‘가출’ 사건이었습니다.
때때로 예수님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따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이 내 행동을 통제하는 제약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무관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집’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분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깨닫는 순간, 그분이 나와 맺는 관계는 통제가 아니라 전제가 됩니다.
그분이 계시기에 저도 있기 때문입니다.
* 한 발 떠나보면 비로소 보이는 관계가 있습니다.
김정일 신부
사춘기가 한창일 무렵 부모님과 세상에 대한 반감은 기성세대들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와 간섭으로 느껴졌습니다. 자유를 보장받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자유’ 란 내가 하는 일에 ‘상관하지 말라’ 는 일종의 ‘관계의 차단’ 이었습니다.
그걸 그때는 ‘독립’ 이라 불렀습니다.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를 꿈꿨습니다.
‘이놈의 집구석 내가 나간다, 나가!’ 하던 차에 그날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부모님의 잔소리에
급기야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냐’ 고 소리 지르며 뛰쳐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딱히 갈 곳도 마땅찮고 돈도 없던 터라 배는 고프지 잠은 자야겠지, 저는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간섭을 차단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초단기 ‘가출’ 사건이었습니다.
때때로 예수님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따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이 내 행동을 통제하는 제약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무관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집’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분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깨닫는 순간, 그분이 나와 맺는 관계는 통제가 아니라 전제가 됩니다.
그분이 계시기에 저도 있기 때문입니다.
* 한 발 떠나보면 비로소 보이는 관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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