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자리
김우중 신부
사제 서품이나 종신서원을 앞둔 수도자들과 성직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각은 자신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한가 하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그 물음 앞에서 부족하고 결함이 많은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며 자격 없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 첫 서원을 앞두고 수련장 신부님께 서원을 보류하고 싶다는 청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지금은 사제가 되어 있는 저 자신을 보면서 그때 지녔던 첫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수도회 입회 초기에는 노력하면 자격을 갖출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삶이니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약함을 인식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의 이 복음 말씀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가 착각 속에 살아왔음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자격이 있거나 그럴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그저 저를 사랑하시기에 불러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성소는 사랑의 자리입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불러주셨고, 당신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불러주신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격 요건은 단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만큼 사랑하는 것.
그 외에는 모두 부차적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사랑만이 부르심의 시작이며 마침입니다.
*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사랑의 자리는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