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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축일

G307)환자 간호하다가 페스트에 전염되어 23세에 선종한 청소년의 수호 聖人 알로이시오 곤자가(6.21)修士 傳記 & 전구(轉求)기도

작성자베드로 문|작성시간24.06.21|조회수16 목록 댓글 1

 

오늘의 성인(6.21) 중 알로이시오 곤자가 修士 傳記

 
기본정보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은 1568년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군인이 될 처지였던 그는, 귀족 사회의 폭력과 방종에 실망하고
선교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다.
 
그는 17세 때 재산 상속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채 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성인은 로마 전역에 흑사병이 번지자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다가 감염되어,
1591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신학생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며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알로이시오 곤자가 (Aloysius Gonzaga)
6월 21일
성인
수사신학생
1568-1591년
공사가, 루도비꼬, 루도비코, 루도비쿠스, 루이, 루이스, 루이지, 알로이시우스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Brescia)와
만토바(Mantova) 사이에 있는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성(城)의 후작 페란테(Ferrante de
Gonzaga)와 마르타 타나(Marta Tana di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했지만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사랑으로 성 알로이시우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성 알로이시우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했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의 가정 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esco del Turco)는
성 알로이시우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성 알로이시우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 궁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

그리고 2년 후인 1579년에 성 알로이시우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만토바(Mantova)의
공작에게 보냈다. 여기서 사제직의 꿈을 키우던 성 알로이시우스는 1580년 7월 여행 도중 들른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추기경을 만나
그에게 직접 첫영성체를 받았다. 1581년 오스트리아 황후 마리아가 마드리드(Madrid)로
돌아갈 때 곤자가 가문도 함께 갔고, 성 알로이시우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성 알로이시우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했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그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5일 로마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우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
예수회 로마 학원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를 가르치던 교수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가 있었으며,
훗날 성인이 된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9월 17일)가
성 알로이시우스의 영성지도 신부였다.


성 알로이시우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로마 전역에 페스트가 퍼졌다.
그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보살피고 그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병자들을 간호하던 성 알로이시우스는 이듬해 3월 초
자신도 페스트에 전염되어 같은 해 6월 21일 23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했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Ignatius) 예수회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했던 그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서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 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실천했다.


성 알로이시우스의 시성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는 160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 후 성 알로이시우스는 젊은이와 신학생들, 특별히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주위에 백합화나 해골 등과 함께 그려지곤 한다.

백합은 정결을 상징하는 꽃으로 특별히 성 알로이시우스가 받은 정결의 은사를 상징하고,
해골은 회개와 보속의 삶을 의미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루이지 곤자가(Luigi Gonzaga)로 불린다.

 

┼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이 세상에서 '
알로이시오 곤자가'를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시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꽃 피우게 하셨으니

당신의 충실한 종, 聖 '알로이시오 곤자가'修士의 轉求를 들으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우리 모두가 복음을 따라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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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베드로 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1

    + 慈悲와 사랑의 우리主 하느님 아버지 ,

    오늘 이 세상에서 '알로이시오 곤자가'를
    당신의 從으로 선택하시어 信仰을 꽃피우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모범을 받들어 언제나 福音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충실한 당신의 종,聖'알로이시오 곤자가'修士의 轉求를 들으셔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 정다니엘과 '문베드로'와 모든 患友들이
    완전히 病魔에서 벗어나는 주님의 慈悲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恩寵을 베풀어 주소서.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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