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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축일

G321)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한국의 대표 聖人 순교자 김대건 안드레아(7.5)한국 최초의 司祭 傳記 & 전구(轉求)기도

작성자베드로 문|작성시간24.07.05|조회수32 목록 댓글 1

오늘(7월5일)의 聖人 中 순교자  김대건 안드레아  한국 최초의 司祭 傳記                       

 

 

기본정보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솔뫼에서 태어났다. 양반 가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집안이 몰락하였다.


김대건은 열여섯 살인 1836년 사제가 되고자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길을 떠났다. 1844년 부제품을 받은 그는 선교 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845년 8월 17일 상하이의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고국에 돌아온 김대건 신부는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 사제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려다가 1846년 6월에 체포되어 여러 차례 문초를 받고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 5월 6일 서울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시성하면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정하상 바오로와 함께 
한국의 대표 성인으로 삼았다.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김대건 안드레아 (金大建 Andrew)
7월 5일
성인
신부순교자
한국(Korea)
1821-1846년
김 안드레아, 김안드레아,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성 김대건 안드레아(Andreas)는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대건의 아명은 재복(再福)이고 이름은 지식(芝植)이라고 하는데, 그의 집안은 열심한
구교 집안이다.
김대건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Pius)와 아버지는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다.
신앙 깊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성장한 김대건은 굳센 기질과 열심한 신덕으로 충실히
생활하던 중, 16세 때인 1836년에 모방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 프란치스코는 병사하였으므로, 남은 두 신학생만이
훌륭히 학업과 성덕을 닦았으나 나이가 25세에 이르지 못하여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무렵 파리 외방 선교회가 조선 교구를 담당하여 주교와 신부를 조선에 입국시켜
전교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조선이 외국과 수호조약을 맺지 않아 종교자유가 없었음으로
프랑스 루이 필립 왕이 파견한 함대의 세실 제독이 그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나섰다.

김대건은 세실 제독의 통역관이 되어 조선이 들어갈 메스트르 이 신부와 함께 에리곤 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세실 제독이 갑자기 조선 항해를 중지하게 되어
김대건은 혼자 육로로 본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변문에 이르러 조선 사절단의 일원인 김 프란치스코를 만나 본국 소식을 자세히 듣게 되었는데,
성직자를 비롯하여 아버지와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국을 서둘러 그해 12월 29일 혼자 의주 변문을 거쳐 입국하였으나
중도에서 본색이 탄로날 위험이 생겨 다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김대건은 백가점(白家店)과 소팔가자(小八家子)에 머물며 메스트르 신부로부터
신학을 배우고,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고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다시 입국을 시도하여 고 주교와 함께 변문으로 왔으나 김 부제 혼자만 1월 15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1845년 4월 주교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상해에 갔다가
그 해 8월 17일 그곳의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 고 주교 집전으로 사제품을 받아
조선교회의 첫 사제가 되었다.

이어 8월 24일 상해에서 30리 떨어진 횡당(橫堂) 신학교 성당에서
다블뤼 안 신부의 보좌를 받으며 첫 미사를 집전하였다.


같은 달 31일 고 주교와 다블뤼 안 신부를 모시고 라파엘호라 명명한 작은 목선을 타고
상해를 출발하여 1845년 10월 12일에 충청도 나바위라는 조그마한 교우촌에 상륙하였다.

김 신부는 선교활동에 힘쓰는 한편 만주에서 기다리는 메스트르 이 신부를 입국시키려고
애썼으나, 의주 방면의 경비가 엄해서 고 주교는 바닷길을 알아보라고 지시함으로,
백령도 부근으로 갔다가 순위도에서 1846년 6월 5일 밤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김 신부가 황해 감사 김정집의 심문에서 자신은 조선에서 출생하여 마카오에서
공부했음을 토로하자 황해도 감사는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이 사건의 중대성을 인식하여 중신회의를 열고 서울 포청으로 압송케 하였다.
일부 대신들은 김 신부의 박학한 지식과 외국어 실력에 탄복하여 배교시켜 나라의 일꾼으로
쓰자고 하는 의견도 있고 해서 배교를 강요했으나, 김 신부는 도리어 관리들을 교화시키려고 하자
사학의 괴수라는 죄목을 붙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는 사제생활 1년 1개월만인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김 신부의 나이는 26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사진/그림

 

┼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신,
이 세상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시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꽃 피우게 하셨으니

당신의 충실한 종,순교자 聖'김대건 안드레아'司祭의 轉求를 들으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우리 모두가 복음을 따라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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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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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베드로 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05

    + 慈悲와 사랑의 우리主 하느님 아버지 ,

    오늘 이 세상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를
    당신의 從으로 선택하시어 信仰을 꽃피우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모범을 받들어 언제나 福音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충실한 당신의 종, 聖'김대건 안드레아'司祭의 轉求를 들으셔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 정다니엘과 '문베드로'와 모든 患友들이
    완전히 病魔에서 벗어나는 주님의 慈悲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恩寵을 베풀어 주소서.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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