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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축일

G351)본당신부 42년 봉직 매일 18시간 고해성사 준 본당 신부의 수호聖人 요한 마리아 비안네(8.4)司祭 傳記 & 전구(轉求)기도

작성자베드로 문|작성시간24.08.04|조회수49 목록 댓글 1

오늘(8월4일)의 聖人 中 요한 마리아 비안네 司祭 傳記                

 

기본정보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1786년 프랑스 리옹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1815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시골 마을 아르스의 본당 사제로 활동하면서 겸손하고 충실한 목자로 존경받았다.

 

그의 고행과 성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는

정성을 다하여 영적 가르침과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평생을 아르스에서 겸손하고 가난한 삶을 산 그에게 해마다 2만여 명이 고해성사를 받고자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1859년 선종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시성하고,

4년 뒤에는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요한 마리아 비안네 (John Mary Vianney)
8월 4일
성인
신부
아르스(Ars)
1786-1859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는 1786년 5월 8일 프랑스 리옹(Lyon) 근교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 농부인 마태오와 마리 블루즈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비안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5세 때에는 파리(Paris)에서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추방되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비안네는 어린 시절을
주로 부친의 농장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다.

정규 교육은 몇 개월밖에 받지 않았지만,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비밀리에 첫 고해(1794년)와
첫영성체(1796년)를 받았다.


18세 때 부친의 허락을 받고 에퀼리(Ecully) 본당 발레(Balley)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개인적으로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기초 교육이 부족하고 수학 능력도 많이 떨어졌다.
특히 라틴어 공부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신학생이었던 비안네는 1809년에 징집을 당해
갖은 고통을 겪었다.

1811년에 베리에르의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과정을 공부하고
1813년에는 리옹의 대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라틴어 성적이 좋지 않아
1년 만에 퇴학당한 비안네는 학과 성적은 부족하였지만 발레 신부의 도움으로
신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신심과 성품을 인정받아 1815년 8월 13일
그르노블(Grenoble)에서 시몽(Simon)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 서품 후 발레 신부가 있는 에퀼리 성당에서 2년 동안 보좌 신부로 생활한 비안네 신부는
1818년에 230여 명의 주민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42년 동안이나 봉직하면서 주민들에게 열렬한 신심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비안네 신부의 노력으로 아르스의 종교적인 분위기는 일신되었고,
그 또한 설교자와 고해신부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1827년부터 수천 명의 고해자들이 그에게 성사를 받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
아르스로 찾아올 정도였다. 매년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비안네 신부를 찾아왔기 때문에,
그는 오전 11시에 설교를 하고 성무일도와 식사, 특별한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약 18시간 정도 고해성사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사제들은 그를 잘못 판단하고, 그를 무식하고 지나치게 열성적이며
허풍선이라고 비난하곤 하였다. 이에 대해 그의 주교는
“저 신부만큼이나 모두 미쳤으면 좋겠다.”고 하며 그를 옹호하였다.


이렇게 열심한 그 역시 가끔씩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성품은 지극히 단순하였고, 충고는 간단명료하였으나 신심이 차고 넘쳤으며
직선적인 설교를 하였다.

순례자들의 소란, 끊임없는 고해성사 요구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단지 세 번 아르스를 떠났는데,
그것은 모두 수도원에 잠시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비안네 신부는 열심한 성무에 지친 나머지 1859년 8월 4일 73세의 나이로 아르스에서 사망하였다.
1905년 1월 8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가 된 비안네 신부는,
1925년 5월 3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시성되었으며,
1929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본당 신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사진/그림

+ 찬미 예수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님,
이 세상에서'
요한 마리아 비안네'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시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꽃 피우게 하셨으니

당신의 충실한 종,聖'요한 마리아 비안네'司祭의 轉求를 들으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우리 모두가 복음을 따라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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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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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베드로 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04

    + 慈悲와 사랑의 우리主 하느님 아버지 ,

    오늘 이 세상에서 '요한 마리아 비안네 '를
    당신의 從으로 선택하시어 信仰을 꽃피우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모범을 받들어 언제나 福音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충실한 당신의 종, 聖'요한 마리아 비안네'司祭의 轉求를 들으셔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 정다니엘과 '문베드로'와 모든 患友들이
    완전히 病魔에서 벗어나는 주님의 慈悲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恩寵을 베풀어 주소서.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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