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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축일

H002)신학자이며 '마지막 교부'인 교회학자 꿀처럼 단 박사 양봉업자의 수호聖人 베르나르도(8.20)修道院長 傳記 & 전구(轉求)기도

작성자베드로 문|작성시간24.08.20|조회수19 목록 댓글 1

오늘(8월20일)의 聖人 中 베르나르도 修道院長 傳記



기본 정보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베르나르도 (Bernard)
8월 20일
성인
수도원장교회학자신학자
클레르보(Clairvaux)
1090-1153년
버나드, 베르나르두스

테셸랭 소렐(Tescelin Sorrel)과 몽바르(Montbard) 영주의 딸인 복녀 알레타(Aletha, 4월 4일)의
아들인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는 부르고뉴(Bourgogne) 디종(Dijon)
근교의 가족 성(城)인 퐁텐(Fontaine)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샤티용(Chatillon)에 가서 공부하면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1107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수도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원래 시토회의 설립자 3명 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지만
흔히들 그를 시토회의 설립자로 부른다.

그가 새로운 수도회인 시토회에 입회한 해는 1112년 4월인데, 그 때 그는 자기 형제 4명을
비롯하여 모두 30명의 친척, 친구들과 함께 베네딕토회 규칙의 엄격한 해석을 따르기 위하여
1098년에 설립된 시토회에 들어갔다.

그들은 원장이던 성 스테파누스 하딩(Stephanus Harding, 4월 17일)으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1115년에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 스테파누스 하딩의 지시에 따라 12명의 수도자와 함께
부르고뉴와 샹파뉴(Champagne)의 경계지역에 있는 클레르보라는 고립된 계곡에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파견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엄격한 규율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그의 높은 성덕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때 그 수도원의 이름을 발레 답신트에서 클레르보로 바꾸었고,
당시 68개의 시토회 수도원의 모원으로 만들었다.


그 후 성 베르나르두스는 자신의 학덕과 지덕을 활용하여 수도원의 외부 일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의 하나가 되어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립교황인 아나클레투스 2세의 요구에 대항하여 1130년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
(Innocentius II) 선출의 합법성을 지지하였다.

또한 그는 로테르 2세를 황제로 인정하도록 롬바르디아(Lombardia)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140년부터 그는 공적으로 설교하는 일을 시작하여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1145년에는 전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수도자였던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는 교황직의 의무에 대한 글을 교황 앞으로 보내어 로마(Roma) 교황청의
남용을 자제하고, 교황이 항상 목전에 두어야 할 종교적 신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교황 에우게니우스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랑그도크(Languedoc)에
파견하여 알비파(Albigenses) 이단을 대항하여 설교토록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제2차 십자군 원정의 열기를 북돋우는 특사로 임명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서한과 "아마(Armagh)의 성 말라키아의 생애" 그리고 "신애론"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자신의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은 "아가"로 묶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성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이유를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아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그는 다양한 기질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lifluus)란 칭호를 얻었다.

1153년 8월 20일 클레르보에서 선종한 그는 1170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교황 비오 8세(Pius VIII)는 1830년에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는 스콜라 학파 이전의 신학자이며, 때로는 '마지막 교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이다.



  • 사진/그림

┼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이 세상에서'
베르나르도'를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시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꽃 피우게 하셨으니

당신의 충실한 종,聖'베르나르도'修道院長의 轉求를 들으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우리 모두가 복음을 따라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 멘!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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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문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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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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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베드로 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20

    + 慈悲와 사랑의 우리主 하느님 아버지 ,

    오늘 이 세상에서 '베르나르도 '를
    당신의 從으로 선택하시어 信仰을 꽃피우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모범을 받들어 언제나 福音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충실한 당신의 종, 聖 '베르나르도 '수도원장의 轉求를 들으셔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 정다니엘과 '문베드로'와 모든 患友들이
    완전히 病魔에서 벗어나는 주님의 慈悲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恩寵을 베풀어 주소서.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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